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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민 Oct 17. 2020

꿈에 대한 편견과 시선.

나는 하나로 국한 될 수 없다.

브런치에 입성했다.

주변 지인에게 알리니 반응들은,

그림도 그리는데 글까지 쓰냐며 하튼 넌 정말 쉼없이 달린다며 이야기 한다.

참 너 같은 아이도 드물다고.

그러면서 친구들은 하나같이 "그래, 임신했을 지금을 즐겨, 애 낳으면 아무것도 못한다" 이다.


여기서 나는 나에게 반문해 본다.

아기를 낳으면 나의 인생, 자신의 인생이 송두리째 멈춰버리는 것인가??????



나는 하나로 규정 될 수 없다.


세상에 나의 꿈을 지지해 주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하고 생각한다.

부모님의 반대에 불구하고 학부와 대학원에서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꾸준히 그림을 그리며 어언 15년 동안 작품 전시를 해나갔다. 호주를 다녀와서 더 공부를 한 뒤 영어교사로 직업을 바꾸고 나서도 내 본분은 놓치지 않기 위해 1년에 한 번이라도 전시를 했다.

그런데 그럴 때마다 사람들은 내게 이야기했다.

"너는 그림도 그리면서 영어도 가르쳐?"


그리고 이후 영어유치원(유아어학원)에서 관리자 제의를 받았을 때, 어느 날 내 상사가 내게 진지하게 물으셨다.

"너는 우선순위가 모야. 그림이야 영어교사야."


그러면서 내게 연이어 말씀하셨다.

"보통 회사에서 잘하는 교사를 내 사람으로 관리직까지 끌어올려 세우고 싶을 때, 이 사람이 온전히 여기에 쏟아붓고 있는지를 보고 싶어 한다고.

그래서 너는 내가 널 키우고 싶어도 여기에만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겠어?"


각 유학길에서 스펙을 자랑하며 나와 함께 일하고 있는 교사들 역시 내 전시 소식을 듣고 묻는다.

"그림도 그리세요? 와, 근데 왜 여기 있어요?? 그림 작가이신데"


나는 이런 질문들에 곰곰이 생각해 본다.

우선순위.

그렇다, 인생의 우선순위는 중요하다.

그에 맞춰 포기할 것은 과감히 내려놓아야 하기도 하고, 내가 진정으로 하고자 하는, 원하는 것은 될 때까지 노력해야만 한다.


그런데 그림작가는 영어 가르치는 일을 하면 안 되고 작업을 같이 병행하면 일은 소홀히 하게 될 것이라는 그러한 편견들은 모두 어디로부터 오는 것일까?


나는 내 결혼식 5일 전까지도 혼자 원에 남아 야근을 했던 사람이다. 내가 스케줄을 정확히 짜지 않으면 18개의 반들이 우왕좌왕하기에 모든 것이 일사천리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럼 나는 그 책임감으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다.

내가 맡은 자리가 있었고 내게 주어진 책임이 있었기에.


그러던 어느 날 오랜만에 그림을 그리는 작가들 모임에 참석했다. 만날 때마다 늘 그들은 이야기한다.

"너는 그림 그리는 아이임을 잊지 말아라. 네 본분은 작가야"


모두가 자신의 직업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고, 그 자부심 또한 매우 높다는 것을 알고 있다.

나 또한 내가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을 사랑한다.

그러나 내게 순위를 자꾸 요구하는 질문들이 쏟아진다면 나는 이제는 당당히 이렇게 이야기하고 싶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이 꿈이 되고, 내가 이루고 싶은 것 역시 꿈이 되었다고.

그렇게 나 자신을 좀 더 풍요롭게 만들어 가고 싶었고, 그러기에 스스로 자기계발을 해야 했다고.


나는 그림 그리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고, 회사에서는 외국인 선생님들과 일하며 가능한 내 영어실력을 꾸준히 쌓아나가고 싶고 그들의 문화와 생각도 함께 소통하며 공감하는 것 역시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아이들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그러기에 내가 할 수 있는 한, 둘 다 열심히 해내고 싶었다.

내가 할 수 있다면, 나를 꾸준히 성장시키고 싶었다.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다.

살아야 하기 때문에 돈을 벌어야 한다. 현실적인 것은 누구나 부딪히지 않을 수 없는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정말 집에서 받쳐주고 어느 정도 재력이 형성되어 있는 작가들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작가들은 화실을 운영하거나 다른 일들을 병행하며 작업을 연명해 나간다.


나 역시 그들처럼 일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그 길의 색이 그들과 조금 달랐을 뿐.



내가 중국 아트페어에 참여했을 때 일이다.

참석한 작가로서 어느 때보다 뿌듯함을 느꼈던 일화가 있다.

당연히 작품을 관람하러 온 관객들은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었다.


작가는 자신의 작품에 관심을 보이는 관객에게 설명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림은 이미지만으로도 와닿는 것이 첫 번째이지만 작가가 작품에 내재된 의미를 함께 이야기해 줌으로써 작품을 더욱 심도 있게 만들어 주며, 그들의 이해를 돕는데 더할 나위 없이 큰 몫을 한다.

그렇게 공부해서 배운 것이 논문이었고, 내 작가 노트였다. 그리고 영어를 배우고 나서는 어떻게 영어로 바꿔서 표현할 수 있을까를 늘 고민했다.


그런데 마침 영어를 할 줄 아는 중국인 관람객 몇몇과 베이징에서 왔다고 밝히는 컬렉터 한 분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Can you speak English? I am from Beijing.

I am really interested in Korean artist in this exhibition.

Is this your picture?

If you have time, I would like to talk to you about your pictures. Could you explain in detail about your pictures?


중국 샤먼, 국제컨벤션 아트페어 2018.


나는 그때 그의 물음에 내가 표현할 수 있는 한 열심히 내 작품에 대해 영어로 설명했고, 그는 기회를 마련하여 한국 작가들과 베이징에서도 만나고 싶다며 그의 명함을 주고 떠났다.


그때 나는 내가 왜 영어공부를 하고 있는지 한 번 더 깨달았다. 내가 영어공부를 하지 않았다면 과연 나는 이곳 해외에서 내 작품을 영어로 설명할 수 있었을까?


그림은 한국인들과만 소통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유명한 화가의 그림을 교과서나 책에서도 늘  

가까이 접할 수 있듯이, 세계 여러 나라 사람들과도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이다. 

그렇기에 더 영어를 공부해야 했다.

그로 인해 내 직업에 자부심을 더 가졌다.  

원에서 일할 때는 함께 일하는 원어민들과 가깝게 지내며 때론 친구처럼 대화를 많이 했다.

그리고 영어가 점차 늘면서 내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영어를 쓰는 스킬도 늘어갔다.


나 또한 전공을 살려 미술강사로, 벽화 아티스트 등 여러 가지 일을 하며 쉼 없이 달려왔다.

그러나 방향의 전환이 필요했고 나는 내 선택을 믿고 커리어를 다시 쌓아나갔다.

남들처럼 유학길에 오른 것이 아니기에 더 공부해야 했고, 더 노력해야 했으며 발맞춰 경쟁해야 했기에 각종 영어와 관련된 자격증을 따고 시험을 보았다.


그럼 여기서 다시 한번 묻고자 한다.

미술을 한 사람은 꼭 디자인이나 회화 계열을 해야 하고, 교육도 미술 과목을 가르쳐야 하며 관련된 분야에서만 활동해야 할까?

자신이 한 직업을 가졌을 때에 나는 그것에 국한되어 머물러 있어야 할까?


내 답은 철저히 'No'이다.

꿈이 있다면, 어떤 수식어든 그것이 몇 개가 될지라도 당신을 만들어 갈 수 있다.

왜냐하면 그 모든 수식어가 결국 당신을 말해주는 것이기에.


나는 하나로 국한 되지 않는다.
나의 한계는 규정되어 지지 않는다.
누구도 나를 규정 할 수 없다.

그렇다. 나는 '나'로 태어났다.

그리고 이제 엄마가 되어가는 과정의 길을 마주하고 있다.

그런데 엄마가 되고 나면 본 연체인 내가 사라지는 걸까?





이전에 영어미술 회사에서 일하며 김미경 강사의 강연을 직접 들을 기회가 되었다.

워킹맘을 위한 자리로 강연이 시작되었고, 강연이 끝나기 전 그녀에게 질문 시간이 이어졌다.

그러자 한 여자분이 자신의 고민을 터놓았다.

"저 역시 워킹맘으로 맞벌이 부부에요. 작은 학원을 운영하고 있는데 늘 마음 한쪽에 아이가 걸려요. 일하면서 다른 엄마들보다 많이 챙겨 주지를 못하니 늘 미안한 마음이 들고, 그렇다고 일을 안 할 수는 없고 두 가지를 동시에 해 나가는 게 너무 어려워요"

그러자 그녀가 모두에게 되 물었다"

"일하는 엄마가 죄인인가요??"

그리고 연이어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내가 태어날 때 나는 엄마가 아니었어요. 김미경이란 사람으로 태어났어요. 그래서 본연의 인생을 살고자 노력해요.
나 역시 지금 엄마의 삶도 같이 살고 있죠.
나에게 막내아들이 있는데 초등학교 5학년이에요. 내가 얼마 전에 미싱기계를 사서 스스로 옷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그러자 아들이 묻더라고요.
"엄마, 엄마는 이거 왜 하는 거야??"

그래서 내가 아들한테 이야기했죠.
너도 커서 무언가 되고 싶다는 꿈이 있지??? 엄마도 나이가 50이어도 너처럼 똑같이 꿈이 있어. 여전히 엄마는 꿈이 있어서, 미래의 내가 기대되.
우리 서로의 꿈을 같이 발전시켜 나가자.

아이에게 엄마도 꿈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세요.
그럼 아이도, '우리 엄마도 나처럼 꿈이 있는 사람이구나' 하고 알게 되어요.
그러면서 아이와 함께 서로의 꿈을 응원하며 같이 성장해 나가는 거에요.

자신의 이름을 잊지 말아요.
당신은 엄마이기도 하지만, 그 전에 당신 자체라는 것을.

                                                                                                    내가 기억하는 김미경 강사의 강연 이야기 중..




나는 그녀의 강연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그렇다. 우리 모두 엄마이기 이전에 나로 존재한다.

"아기가 나오면 아무것도 못해"

이 말도 물론 공감하는 바이다.


그러나 그건 평생이 아니다. 어느 한 시기를 말하는 것이다.

결혼해서 서로 다르게 살아 온 내 인생과 남편의 인생이 만나 새로운 인생을 다시 만들어 나가듯, 아이를 출산하고 키운다는 것 또한, 또 다른 새로운 인생의 여정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자신만의 인생 버킷리스트를 꼭 포기하지 말고 꿈꾸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누군가의 시선은, 편견은 내 인생에서 사치일 뿐.

내 길은 내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며, 나라는 사람에게 붙을 많은 수식어 또한 내가 만들어 나가는 것이다.

그렇게 빛나는 나의 수식어를 나 또한 꾸준히 만들어 가고자 한다.

여전히 갈 길이 먼 미생인,

그림 작가이자, 글 작가이자, 영어교사이자, 엄마로.

그리고 여전히 나는 나의 인생 버킷리스트에 하나씩 내용을 채워나간다.

그게 작은 바람이든, 소망이든 나의 꿈이라면.

그게 어떤 수식어이든.

나는 하나로 규정 될 수 없기에.


누구도 역할을 쥐고 태어난 사람은 없다.
그 역할과 이름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렇기에 누구도 나를 규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누구도 처음부터 엄마로 태어난 사람은 없다.

자신이 어떤 세상살이를 살든, 결국 '나' 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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