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타카 Sep 23. 2024

이상과 현실

지난날들을 되돌아볼 때, 어릴 적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가장 크게 느꼈던 곳이 종교모임이었습니다. 좋은 말씀이 난무하지만, 좋은 행동은 드문 드문였던 게 어린눈엔 심히 불편했습니다.  아무리 기도서를 들여다 보고해도 영 게름 찍했던거죠.  맘이 멀어지면 발길도 멀어지게 되더군요.  커가면서 사람은 본능과 충동, 이기심으로 삶을 전진시키는 생물이다?라는 생각이 조금씩 굳어졌습니다. 그러면서 이상이란 단어는 사람이 달성하기 매우, 매우 어려운 그 무엇을 지칭할 때 쓴다고 봤습니다.


이런 생각을 품고 평범히 삶을 살다 병이 심히 들었습니다. 간신히 죽음의 문턱에서 되돌아온 후. 죽음 이후를 생각하게 됩니다. 사후세계의 두려움일까, 아니면 신에 대해 의지하고 싶어서일까요. 종교생활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신심이 돌아와서일까요. 아니면 사는 게 다 그런 거라서 그런 걸까요. 여하간 그렇게 몇 년을 살다 어제 성직자 두 분과 점심식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어른한테 '깨끗하고 맑다.'란 감정을 느껴보았습니다.  지혜롭다. 라든지, 존경스럽다. 라든지는 간혹 느껴보았는데 말입니다. 실로 오랜만입니다. 아니  맑고 깨끗한 분이 기억에 잘 떠오르지 않는 걸 보니,  어른한테는 느껴본 적이 없는 감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느낌은 WFP에서 일하면서 점점 불편해지는 감정과도 미묘하게 닿아 있습니다. 식사를 끝내고 집에 돌아온 후, 두 달 반 동안 느낀 WFP를 곰곰이 씹어보았습니다. 여기 사람들은 뭐지? 생각이 짧은가. 원래 바보스러운 사람들이 많이 들어오나. 알면서도 돌진하는 똘아이들도 제법 있는 듯싶고.   


배고픈 사람들을 돕는 것은 좋지만, 정치적인 부분도 같이 고려하는 건 당연한 게 아닐까요. 왜 저런 썩을 나라는 도와주지 못해 안달일까요. 일하러 간 직원이 죽을 수도 있는 위험상황인데도. 왜 도와주라고 보내나요.  그런데 더 가관인건 위험한 곳에서 일하라고 하는 말을 들은 직원이, 군말 없이 현장으로 갑니다. 우리나라에선 어림도 없을 것만 같습니다만


사실, 이상적으로 본다면 돕는다는 행위가 원래 무엇을 재거나, 바라는 게 아닐 듯싶습니다. 사심 가득히 돕는 건, 자신의 이익과 이미지 관리를 위한 도움의 현실적인 모습이겠지요. 정치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 국제기구는 이익과 이미지 관리가 중요할 거라 봅니다. 그러니 사심 듬뿍 국제기구가 폼나게 도우면서 이를 선전하는 건 도움의 자연스러운 모습이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이곳에서 드는 순수하다? 란 느낌은 뭐지?


'이상'이 닿기 불가한 높디높은 선반 위에 올려놓은 단어일 수 있다란 것을 깨달기 이전, 그야말로 소싯적부터 이곳에서 일했다면. 이상이 닿는 곳도 있을 거란. 신념으로 살아갈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은 결코 이상에 빠져선 안 되겠지만, 이곳은 빠져도 될 것 같은 기분이 슬며시 듭니다. 조심해야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다른 나라 도와주고 호구되는 Good tips!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