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을 운영하는 데 있어, 가장 무서운 게 무엇일까? 적어도 식품안전 정책에선 과학적 실험과 그 결과치를 기반한 솔직함이 가장 무섭지 않을까.
2019년도에서 2020년도로 넘어가며. EU 농약 잔류성 조사 결과 공개 시 내용이 바뀌었다. 2019년 전엔 EU 회원국을 대상으로 농산물에 농약이 많이 잔류된(남아 있는) 국가와 낮은 나라를 차례대로 줄 세웠었다. 그리고 농약잔류가 높게 나온 농산물과 그렇지 않은 농산물도 줄을 세웠다. 그 내용은 EU에 사는 사람뿐 아니라, 관심 있는 한국인도 알 수 있게 홈페이지에 공개까지 했다.
아마도 농산물에 잔류된 농약의 정도가 높게 나온 나라는 국민도 창피했을 것이다. `건강식일 줄 알았던 *** 음식이 사실은 농약이 잔뜩 묻은 농산물로 조리한 거래요.` 이 말 한마디면 누가 그 음식을 사 먹을까.
`** 간에 농약이 그리 많이 들었다고요?` 명명백백하게 그런 결과가 공개되었을 때, 식품 산업 어느 한 귀퉁이에서 큰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 거위 간을 쳐다보지도 않는 이유는 EU 농약잔류성 보고서 덕이다.
이렇듯 까놓고 농약 잔류가 높은 농산물부터 낮은 농산물까지 줄 세우는 EU의 보고서는 보는 내내 속 시원했고 부러웠다. 그런데 이 보고서가 2020년부터 바뀌었다. 좀 더 해석하기 좀 더 어렵고, 나라마다 줄 세우는 표는 실종되었고, 농산물 중 어느 게 농약 잔류가 더 되었는지 헷갈리게 만들었다.
섣불리 추측한 바, EU 회원국 중 일부 국가가 자국의 농산물에 농약이 많다고 계속 광고하는 보고서가 탐탁지 않아 압력을 넣은 듯싶었다. 식품업계도 마찬가지다. `예전부터 잘 먹고, 잘 살아왔는데. 저 재수 없는 보고서 때문에 망하게 생겼다.`란 불평이 있을 터이고, 이게 지방 명물이었다면.. 지역에서 정치적 압력을 행사하고, 이에 국가가 덩달아서 들고일어 난 게 아닐까. 아마도 EU 식품처에서 견디기 어려웠을 게다. 그래서 이상한 모습으로 보고서가 바뀌었다.라는 식의 생각을 해보았다.
그런데 내용을 찬찬히 읽다보니, 다른 차원에서의 까발림이 보였다. 좀 더 정교하고, 더 과학적이고 근원적인 질문은 덤이었고. 그러니까 이런 식이다. 유아가 농약을 과다하게 섭취하게 하는 게 뭔지 아니? 이렇게 의문을 던지고, 답을 쥐어준다. 그 답은 과학계에서 수시로 사용하는 확률의 용어다. 사과와 바나나일 가능성이 있겠지 아마도?라는 의문은 덤이다.
결과적 볼 때 아주 근원적인 부분까지 건들며 들어가는 보고서가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분야를 점점 넓혀가고 있다. 어느 순간 어느 농산물이고 한 번은 탈탈 털리겠다 싶다. 이 보고서를 보다 유럽은 토마토에 그리 많이 농약을 치는지 처음으로 알았다. 왜냐면 유럽은 우리나라엔 없는 벌레들이 사방에서 우글거리기 때문이다.
이런 솔직한 보고서는 `먹고 죽자!` 하는 사람이야 관심 없겠지만, 건강에 관심 있는 사람은 이를 근거로 조심할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