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교 시절 두 번의 인턴경험을 포함해 현재까지 4개의 회사를 경험해봤다. 회사의 규모를 나열해보자면 ‘스타트업 – 대기업 – 중견기업 – 대기업’ 순이다. 처음 스타트업 기업은 30명 규모의 ‘다른 스타트업 기업을 인큐베이팅’ 하는 독특한 비즈니스 모델을 갖고 있었다. 고객의 아이디어를 기획부터 양산까지 원스톱으로 진행해주면서 계약금을 받는 구조였다. 작은 회사인 만큼 체계적이지 않은 업무 시스템을 예상했고,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특히, 아직 대학교 3학년밖에 되지 않은 내가, 고객이 건네 준 아이디어를 직접 설계한다는 것부터 (나한텐 좋은 경험이었지만…) ‘이게 맞는 건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작은 기업, 신생 기업만 이런 시스템을 갖춘 것인 줄 알았다. 큰 방향을 잡긴 잡지만, 당장의 일들은 주먹구구식으로 풀어가는 그런 느낌…
대기업… 너도?
이후에 중견기업, 대기업 회사를 다니게 되었고, 나는 당연히 체계적이고 틀이 잘 잡혀 있는 업무 시스템을 예상하면서 입사했다. 놀랍게도 대기업 역시 규모만 클 뿐, 일하는 방식이 처음 다녔던 스타트업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장에 보이는 비효율적인 업무처리 방식뿐 아니라 주먹구구식으로 접근하는 것까지, 어떻게 이렇게 해서 큰 회사가 굴러가나 싶었다. 더 재미있는 것은, 다른 대기업을 다닌 동기의 이야기도, 심지어 미국에 그 유명한 A사에서도 직원들이‘이게 돌아간다고?’라는 생각을 한다고 한다.
아, 이게 클루지구나~
이 책을 읽고, 나는 내가 경험한 이 느낌이 클루지임을 단번에 알아차렸다. 클루지란 간단히 표현하자면 인간의 불완전함을 말한다. 좀 더 자세히 말하면, 어떤 생각이나 일처리에 있어 고등동물인 인간이 생각보다 멍청하게, 최적화되지 않은 방식으로 일처리를 한다는 말이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그 와중에 뜻하지 않은 다양한 생각이 인간을 더 발전시킨 원동력이 될 수 있었다. 돌이켜보니 이 말이 진짜였던 것이다. 비효율적인 일처리를 해도 회사가 굴러갈 수 있던 이유인 것이다. 클루지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세 가지 키워드, ‘기억, 맥락, 언어’에 대해서 좀 더 들여다봐야 했다.
기억, 맥락, 그리고 언어
회사 일로 이 키워드를 대응시켜서 이야기해보겠다.
기억
“1년 전, A 프로젝트에서는 어떤 부분을 담당하셨나요?”라고 물으면, 나는 한 번에 기억을 해내지 못한다. 그러나 “A 프로젝트에서 이 부분을 맡으셨는데, 이때 B에 대한 이슈는 어떻게 해결하셨나요?”라고 물으면, 나는 그때의 일을 생생히 기억해낸다. 이렇게 내가 경험한 구체적인 진실마저도 혼동한다. 회사의 모든 사람이 본인이 경험한 사실을 기억하기 힘들어한다면, 과연 효율적인 업무를 할 수 있을까? 이것이 기억의 불완전함이다.
맥락
반면에 “A 프로젝트에서 이 부분을 맡으셨는데, 이때 B에 대한 이슈는 어떻게 해결하셨나요?”라는 질문에 정확히 기억해 낼 수 있었던 이유는, ‘맥락’ 덕분이다. B에 대한 이슈가 전체 맥락에서는 나에게 특이하고 인상적인 기억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평범한 일상생활보다는 인상적인 일들을 맥락을 통해 기억하는 것이다. 그런데 A 프로젝트를 떠올리기 위해 B에 대한 이슈를 먼저 떠올렸다는 것은, 기억에는 우선순위가 있음을 말해준다. 나는 컴퓨터와 다르게 기억 자체를 지울 순 없어서 그 위에 다른 기억을 덧칠할 뿐이다.
언어
그래서 필요한 것이 바로 언어라고 한다. 즉, 내가 A 프로젝트에서 어떤 업무를 맡았고, 어떤 이슈가 있었는지를 보고서 잘 정리하여 남겨둔다면,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시행착오도 줄일 수 있다. 이렇게 인간의 불완전한 기억이 ‘언어’를 통해 그나마 지속될 수 있는 힘을 갖게 된다.
솔직히 이런 거 별로 안 중요하고, ‘이것’만 적용해도 인생이 바뀔 것 같네
그렇다면 이 책을 읽고 나는 어떠한 부분을 내 삶에 적용시킬 수 있을까? 그것은 바로, 내가 어떤 일을 할 때 자연스럽게 발생하는 심리적 오류를 ‘아, 이건 클루지야!’라고 스스로 인식하는 훈련을 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어떤 교육을 받으라고 할 때, 귀찮아서 듣기가 싫어진다. 그 이유는 우리 생각이 생존을 위해 당장 중요한 것들만 신경 쓰게 설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 지금 이 귀찮음은 클루지야!’라고 외치는 순간, 나는 미래에 이 교육이 어떻게 도움이 될 수 있을지를 생각하고, 좀 더 능동적으로 교육에 임할 수 있게 된다. 사람 관계에서도 고과를 잘 받거나 재테크를 잘해서 돈을 많이 번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시기와 질투가 1%라도 생기기 마련이다. 이 때도‘아, 지금 이 질투는 클루지야!’라고 외치는 순간, 나는 이 사람들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는지에 대해 생각하고, 그 사람들과 친해지려고 노력하게 된다. 클루지에 대한 예는 무수히 많기 때문에 다른 일상에서도 찾아보도록 노력하려 한다.
스스로가 스스로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할 때, 비로소 사람은 발전할 수 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클루지를 피해 가는 것에 대한 본질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