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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천 Sep 09. 2021

당신의 '워라벨'은 잘못되었다.

타인의 일과 나의 일을 병행하는 것, 내가 깨달은 워라밸

돈은 많이 안 받아도 되니깐 저녁이 있는 삶을 살고 싶어요.


 취업을 열심히 준비하던 대학교 4학년의 내가 했던 말이다.

 취준생들은 각자마다의 회사 선택 기준이 있는데, 연봉/근무지/복지/커리어패스/워라밸/연봉인상률/네임벨류 등이 그것들이다. 노동만으로도 먹고살만한 10년 전, 20년 전이었다면 단연 '연봉'과 '네임벨류'가 1순위였을 것이다. 그러나 MZ세대로 접어들면서 연봉만으로는 먹고 살기 힘들어졌다.

 애초에 지금도 힘들고, 나중에도 힘들 것이라면, 지금 당장 소소하면서도 확실한 행복을 느끼자는 풍조가 돌기 시작했다. 일명 '소확행'. 그렇게 회사 선택 1순위는 '소확행'을 꿈꾸는 자들이 만들어낸 '워라밸'로 새롭게 떠올랐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당장 돈을 더 많이 주는 회사는 얼마든지 있었다. 특히, 교대근무를 도는 반도체 회사의 경우, 신입 입사자가 받을 수 있는 최대 연봉은 무려 8,000만 원이었다. 웬만한 다른 회사들의 과장급 혹은 그 이상의 연봉이다. 이전에는 이렇게 많은 돈을 받으면 행복할 것 같았다.

 그러나 자신의 삶이 없고, 10년 뒤에는 몸과 마음이 망가져서 번 돈 이상이 치료비로 나간다는 말을 들었다. 이건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다. 연봉을 많이 받진 않더라도, 내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돈도 벌고, 저녁에는 친구들과 맥주 한 잔 할 수 있는 그런 삶을 살고 싶었다. 이것이 내가 생각한 워라밸이었다.



번 만큼 쓸 수 있으니, 이것이 워라밸이로구나!


 내가 바라 왔던 대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반도체 회로설계)을 하면서도 워라밸을 누릴 수 있는 회사에 정착했다. 최대 연봉도 7,000만 원 이상으로  적지 않은 편이라 더욱 행복했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도 돈도 많이 벌 수 있다니, 이대로만 가면 내가 가장 행복할 것이라고 믿었다.



 회사가 끝나면 고등학교 친구들, 대학교 친구들, 직장 동료들을 불러다가 술을 마셨다. 또한 운동도 꾸준히 할 수 있었다. 헬스도 끊고, PT도 받으며 심신이 단련되가는 것을 느꼈다. 그밖에도 내가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을 시청하고, 요즘 핫하다는 넷플릭스를 플렉스하고, 다른 사람들의 페이스북/인스타 계정을 봤다.

 돈을 번 만큼 그것을 쓸 수 있는 시간까지 있다니, 이것이 진정한 워라밸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내가 회사에서 특별히 잘못하지 않는다면 영원히 누릴 수 있을 것만 같았다.




파이어족, 너는 뭔데 내 가치관을 흔들어 놓니?

그러던 어느 날, 평소에 대화를 잘 못 나누던 회사 선배 한 명과 술을 먹게 되었다. 회사 돌아가는 이야기,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하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그러다 그 선배의 라이프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선배는 본인이 파이어족이라고 했다. 파이어족이란, 미래를 위해서 (노후를 위해서) 현재를 불태워 갈아 넣는 (투자하는) 사람들로, 최근에 많이 보인다고 했다. 선배는 지금 먹고 있는 고기 조차 가성비 있는 것들로 구성하여 돈을 아꼈다. 그렇게 아낀 돈으로 주식, 부동산에 투자를 한다고 했다. 정작 본인에게는 본인을 위한 옷, 신발, 시계, 비싼 차를 사지 않았다.


 

이 말은 나에게 좀 충격적이었다. 나랑 같은 회사를 다니고 있으면서 왜 이 선배는 스스로 워라밸을 포기한 걸까? 워라밸을 누릴 충분한 조건 속에서 왜 지금을 희생하는 것일까? 정말 궁금했다. 그래서 물어봤다.

"선배에게 있어서 워라밸이란 뭐예요?"

선배의 워라밸은 내가 생각하는 것과 크게 달랐다.

 나는 워라밸을 하루 24시간에서의 Work 시간과 Life 시간으로 구분한 반면, 선배는 일생 전체를 놓고서 Work와 Life를 구분했다. 즉, Work를 인생 초반부에 해두고, 인생 후반부에 Life를 즐기자는 개념이었다. 이것이 왜 충격이었냐면, 내가 생각한 워라밸 대로라면 나는 인생 후반부에도 Work를 절반이나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내가 70살 80살에도 일을 해야 한다니... 정말 최악이었다. 내가 생각한 워라밸의 개념이 잘못된 것 같았다. 그래서 조금 더 나 스스로 그 의미에 대해 되새김질해보았다.





진정한 워라밸이란, 타인의 일과 나의 일을 병행하는 것이다.

워라밸의 진정한 뜻을 찾기 위해 나도 선배처럼 투자를 시작해보았다. 주식을 하면서 실패할 때도 있었지만, 크고 작은 수익을 맛보며 이것이 투자임을 느꼈다.

 그러나 수익을 낸 돈으로 다시 재투자를 하고 있노라니, 행복하진 않았다. 돈이라는 것은 벌 때 즐거운 것이 아니라, 쓸 때 즐거운 것이기 때문에, 소비하지 못하는 돈은 결국 행복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했다. '선배가 말한 파이어족이 과연 인생에서 옳은 선택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틀리진 않은 것 같은데 뭔가 부족해 보였다. 무언가가 더 있을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투자금액을 늘리기 위해 부업을 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재능이 없었던 나는, 문득 내가 취업을 준비하면서 열심히 정리하고 피드백해둔 메모장을 발견했다.

'그래, 이걸로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는 취준생들을 컨설팅해주는 거야!'

소박하지만 유튜브를 하기 시작했다.

 얼굴은 나오지 않는 채로, 취준생들을 위해 내가 모아둔 꿀팁들을 풀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취준생들이 잘 안 모이는 듯하더니, 취업 시즌이 되고 나니 수 백 명이 구독해주기 시작하였다. 취준생들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한 나는, 동업자 친구 한 명을 구해서 오픈 카카오톡 방을 개설했다. 그리고 네이버 카페와 인스타를 만들었다. 많진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는 취준생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슬슬 수익을 낼 수 있음을 직감하고, 우리는 컨설팅을 진행했다. 초기에든 인당 5만 원씩 받았던 금액을 후에는 10만 원으로 올렸다. 우리의 가치를 인정해주는 취준생들은 두 배가 오른 가격에서도 꾸준히 신청을 했다. 그렇게 월 수익 100만 원이라는 파이프라인이 생겨났다.


 

담담하게 이야기하고 있지만, 이것은 모두 퇴근을 하고 했던 활동이다. 심지어 주말 시간도 투자했다. 그러자 주변 사람들이 물어왔다.

'인생을 왜 이렇게 힘들게 살아? 돈도 적당히 벌면 좀 즐기면서 살아!'

이 말을 듣고, 나는 진정한 워라밸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것은 내가 이전에 했던 말 아니던가! 그러나 지금 나는 그 누구보다 행복하고 힘들지 않다.

 회사 일(남 일)이 아닌 나만의 사업(나의 일)을 하다 보니 뇌가 능동적으로 반응하고 모든 것이 새로워 보였다. 모든 사건과 사람 속에서 가치를 창출해내는 눈을 갖게 되었다. 내가 고민한 만큼 고객들이 알아주고 수익이 생기니 자존감이 올라갔다. 아무런 재능이 없었던 나에게 스피칭, 카피라이팅, 편집, 글쓰기의 재능이 조금씩 자라나고 있었다. 이것이다. 바로 이것이 워라밸이다. 즉, 진정한 워라밸이란, 타인의 일(회사)과 나의 일(나만의 사업)을 병행하여 지금도 행복하고, 나중엔 더 큰 행복과 돈을 벌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이다. 행복은 제로썸(Zero-SUM)이 아니다. 행복의 절대 수치를 전 인생에 걸쳐서 올릴 수 있다. 이것이 내가 내린 워라밸의 결론이다.



워라밸에 대한 나의 가치관은 이렇게 3번이나 변했다. 마지막으로 깨달은 워라밸의 의미가 앞으로 또 변할 순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이 정의가 나의 절대 행복 수치를 높여주고 있다는 것이다. 오늘도 나는 진정한 워라밸을 실천하기 위해 이렇게 글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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