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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희 Sep 11. 2022

그들의 서울행

아빠의 암 투병 일기 두번째 이야기

병원투어 (1)


 나도 이곳은 처음인지라




 서울에서 수술을 받고 싶어했던 아빠의 염원을 들어주기 위해 우리는 대장암으로 유명한 서울의 모든 병원에 전화를 걸었다. 그렇게 하루가, 이틀이 흘렀으며 어느새 첫번째 병원을 방문할 시간이 다가왔다. 당시 시간을 온전히 낼 수 있었던 사람은 가족 중에 나뿐이었다. 언니는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었고 엄마 역시 휴가를 낼 수 없었다. 그래서 아빠와 일종의 병원 투어를 함께할 사람이 나라는 것은 이미 기정된 사실이었다.  


 서울로 떠나기 며칠 전 갑작스레 엄마가 우리를 따르겠다는 선언을 했다. 회사에 양해를 구해 남편의 수술 상담을 받을 수 있는 휴가를 받아온 것이었다. 그렇게 병원 투어 인원은 둘에서 셋이 됐다. 그렇게 셋이 서울로 떠나게 됐지만 항상 일은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다. 나 혼자 급하게 서울에 올라오게 된 것이다.





그날 밤 연락을 받고 긴급히 올라와 그들을 만난다. 그리고 다시 이모집으로 향한다. 밤을 꼬박 샜지만 잠은 오지 않았다. 엄마와 아빠는 어떻게 서울로 올라올까. 기차는 잘 탈까. 길은 잘 알고 있을까? 용산역으로 몇시까지 가야 할까. 수많은 물음표들이 머릿속에서 생겨난다 깨진다. 그때 우선 자취방부터 치워놔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자취방부터 치워놔야겠다고? 무슨 말이냐고?


사실 첫번째로 예약된 병원은 자취방에서 10분 거리내에 있던 병원이었다. 참 우습기도 하지. 가장 사랑하던 나의 공간은 순식간에 낯선 공간으로 변해 나에게 달려든다. 이모집에서 자취방으로 향하던 그 순간, 역에서 내릴 때 나도 모르게 헛구역질을 하고 만다. 이곳은 더이상 나의 공간, 내가 사랑하던 혜화가 아니다. 내일 당장 엄마와 아빠가 올 텐데. 나의 자취방을 보러 오는 게 아닌, 병원을 위해 혜화로 온다니. 혜화. 스무살 서울에 올라와 가장 먼저 마음을 준 공간. 외롭고 지칠 때면 혜화로 향했다. 혜화의 거리, 혜화의 낙산, 소나무길 혜화의 모든 것들에 어린 내가 내뱉던 숨결이 뭍어 있었다. 혜화와 연고도 없던 나는 그렇게 혜화에서 첫 자취를 시작했다.


 이 혜화가 이렇게 무서운 공간이 될 줄이야. 무섭다, 무섭다는 단어 말고는 이 감정을 정의내릴 길이 없다. 하지만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들의 서울행에 더이상의 감정을 섞게 만들 수는 없었다.


대학 입학 후 수년 간 타향살이를 해온 나완 다르게 그들의 '서울행'은 조금은 특별한 것이었다. 아빠의 서울은 수년 전 언니가 대학에 입학을 했을 때가 마지막이었으며 엄마의 서울행 또한 언니의 자취방 이사를 도울 때가 마지막이었다. 그들에게 '서울'은 자식들이 새롭게 뿌리를 내리고 자라나는 곳임 동시에 특별한 '사건'이 있지 않는 한 오지 않는 낯선 도시였던 것이다.





 다음날, 종로역으로 가 아빠의 자료가 담긴 자료들을 프린트한다. 수십 장의 종이를 품에 안은 채 용산역으로 택시를 탄다. 왜 용산역으로 가세요. 택시 기사가 묻는다. 부모님 모시러요. 부모님 모시러 가요? 효녀네요 뭐하러 가세요. 나는 아무 대답도 할 수 없다. 단지 빨리 용산에 도착하길 바랄 뿐이다. 택시에 내려 정신없이 역으로 뛰어간다. 그리고 역 안에 검은 옷을 맞춰 입은, 이 낯선 공간 속에서 나만을 기다리며 가만히 앉아있는, 나의 그들을 발견한다.


아빠는 창 밖을 바라보며 말했다. 이렇게 서울에 오게 되다니. 그러게. 이런 이유로도 서울에 오게 되구나. 엄마와 아빠는 창 밖 건물들을 바라보며 계속 나에게 묻는다. 이게 경복궁이니 저게 청와대니. 의사가 갑자기 수술하라고 하면 어떡하지.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아빠는 정말 암이 맞는 걸까? 지민아 여기가 경복궁 근처가 맞는 거야? 엄마가 다시 묻는다.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우리 가족은 어떻게 되는 거지? 오늘 병원에서 도대체 무슨 말을 듣게 되는 거지?


지민아!


엄마, 저도 모르겠어요. 나의 대답에 기사는 경복궁이 맞다고 알려준다. 너는 서울에서 몇년을 살았는데도 여기를 모르니. 그러게나 말이다. 어떡하지 어떡하지 어떡하지?




병원에 도착해 정신없이 서류 접수를 한다. 다른 것보다 애를 먹은 것이 바로 영상 시디를 전송하는 것이었는데 시디를 전송하는 과정이 복잡했다.  병동 로비에서 가장 어려보이는 사람은 바로 나였다. 수많은 중장년층들이 시디를 전송하기 위해 줄을  있었다. 이들은 모두 누구의 암을 알리러  걸까. 자기 자신일까 아니다 그들의 부모일 수도. 아니다 그들의 자식일 수도. 어쨌든 모두가 누군가의 암을 알리러 이곳에  것은 같지 않는가. 차례가 되자 아빠의 시디를 전송한다. 수많은 접수를 마친  지하 2층으로 향한다. 교수와 만나기  다른 교수와의 간단한 검사가 이어진다. 하지 않아도  이야기까지 아빠 덕분에 엄마와 나는 황당해한다. 무슨 그런 말까지 . 부끄럽게 정말.


그리고 우리 차례가 왔다. 제발, 암이 아니다, 라는 그 한 문장을 듣기 위해 이곳까지 왔다.


아빠의 다리가 후들거린다.




암이 맞는 것 같네요


정확한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 교수의 말 뒤로 바로 아빠의 탄식이 이어졌으며 수술 전 검사들을 하고 가라는 교수의 말이 다시 이어진다. 그리고 다시 탄식이었던 같다. 지시와 탄식 그리고 다시 지시. 교수와의 시간은 15분이 채 되지 않았다. 왜 그렇게 그 교수가 차가워보였던 걸까.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서 그에게는 일상이 된 걸까? 탄식만을 내뱉는 우리 아빠를 안심시켜줄 수는 없었던 걸까? 의문밖에 남지 않는다. 그 다음 환자도 암 환자일테지. 그에게도 같은 태도인 걸까? 아니 사실 그 교수는 차갑지 않았는데 나만 그런 태도로 기억하는 걸까?


병실에서 나와 수많은 검사들이 적힌 종이를 받는다. 간호사의 설명을 들으며 수술 날짜를 가늠해본다. 아빠가 암이라는 것은 확정된 사실이 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수술하고 치료하는 것 뿐이다. 좋은 병원을 찾아. 이들을 안심시키자. 안심시키자. 안심시키자. 지키지 못할 주문을 외운다.




* 아빠의 암 투병일기- 두 번째 이야기

딸이 쓰는 아빠의 암 투병일기. 우리 가족은 오늘도 이겨내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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