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Giant Pin Oct 31. 2020

제가 먼저 손 좀 잡겠습니다!

시월의 어느 멋진 날 제주에서

10월의 제주는 눈이 부시다.

초록빛이 성글성글하던 청귤이 제 색을 찾아가고 총 368개나 있다는 오름마다 억새들이 물결마냥 하얗게 일렁인다.

묵직한 가을 햇살에 비친 바다는 투명한 여름의 그것과는 다른 아름다움이 묻어다.

자주 와서 새로울 것은 없지만 새삼스럽게도 올 때마다 아름다움에 놀라는 곳.

하릴없이 고만 있어도 마음이 어루만져지는 이 곳 제주에 나의 영혼의 여행 메이트 엄마 그리고 딸아이와 함께 떠나왔다.





작년부터 보고 싶었던 빛의 벙커의 반 고흐전을 보고 나오는 길.

전시관 바로 앞 감귤 밭 길가에는 농장 주인 즘으로

보이는 부부가 한창 영글어가는 귤을 봉지마다 한가득 담아 좌판에 내어 놓고 팔고 있었다.

내가 차를 세우고 한 봉지를 사들고 와 하나를 까서 입에 넣으며 엄마에게 조잘거린다.

" 엄마 역시 귤은 제주도 귤이 맛있어!! 그렇지? 껍질도 얇고 너무 시지도 않고 달기만 하지도 않고 말이야~ 진짜 너무 맛있다~"

" 우리나라 귤이 다 제주산이지. 다른 곳에서도 재배하니?"

듣고 보니 맞는 말인 것 같아 순간 머쓱해진 나는 살짝 실성한 사람처럼 허공에 헛웃음을 날려댔다. (물론 우리 엄마는 화난 것이 절대 아니다.ㅎㅎ)

엄마는 나와 참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성향, 식성, 가치관 등은 참 비슷한데 딱 하나 다른 그것. 그건 바로 감정을 표현하는 온도의 차이다.

나는 좋은 일에나 싫은 일에나 아주 크게 반응한다. 멋진 말로 포장하면 감수성이 예민하고 솔직하자면 변덕이 심하다는 이야기이다.

반면 엄마는 모든 일에 한결같다. 좋을 때도 싫을 때도 그 안에서 일렁이는 수만 가지의 감정들이 조금이라도 밖으로 세어나갈세라 그 작은 마음에 한가득 담아놓고 동여맨 듯하다. 그래서 엄마를 모르는 이가 보면 딱 깍쟁이 같기도 하고 차갑기도 할 테다.


좀 전에 감귤밭에서 산 아직은 시쿰한 귤을 열심히 까먹으며 구불진 산길을 30여분 즘 운전하고 있는데 뒷자리에 앉아 지루해진 아이가 엄마에게 투덜댄다.

"할머니~ 나 멀미할 것 같아. 오늘 많이 걷고 차도 많이 타서 지금 너무 힘들어."

칭얼대는 아이의 얼굴을 어루만지며 엄마가 부드러운 음성으로 타이르듯 이야기한다.

"재인아 지금 젤 힘든 사람은 엄마잖아. 운전하는 게 얼마나 힘든데.... 엄마가 힘나게 재인이가 조금만 참자. 거의 다 왔어~"

후웃.. 역시 우리 엄마다.

좀 전까지만 해도 귤의 원산지를 놓고 타박을 주던 엄마였지만 어느새 세상 누구보다도 날 생각하는 사람으로 둔갑해 있었다.

엄마의 단단해진 마음은 실은 무심한 세월이 그녀에게 흩뿌린 흔적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난 엄마의 화려하지는 않아도 정도있고 투박한 그 사랑의 방식을 존중한다.


수 십 년 된 호텔의 아름다운 산책로를 따라 엄마와 내가 아이의 양손을 나눠 잡고 산책을 하고 있는데 아이가 대뜸 우리를 번갈아 보며 이야기한다.

" 엄마랑 할머니는 왜 내 손만 잡고 있어? 둘이도 친하게 손잡고 걸어요."

순간 살짝 당황한 엄마가 멋쩍게 웃으며 아이에게 말한다.

" 엄마랑 할머니랑 얼마나 친한데..."

엄마의 귀여운 변명이 반쯤 왔 때 내가 먼저 손을 뻗어 진작에 내 손보다 작아진 엄마의 손을 꼭 잡았다. 그러자 그것이 마냥 싫지 않은 듯 내 손을 맞잡은 엄마 손에도 힘이 들어갔다.

내가 아이에게 이야기한다.

" 재인아 엄마랑 할머니 사진도 좀 예쁘게 찍어줘 봐! 네 사진만 찍느라 엄마랑 할머니 사진이 하나도 없네."

" 응 알겠어. 엄마~ 할머니랑 포즈 취해봐!!"


매번 여행이 끝난 후 공항에 도착해서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순간은 마치 신데렐라가 12시가 되면 원래 모습으로 돌아가야 하는 것처럼 엄마의 딸에서 다시 누군가의 엄마로 돌아가는 묘한 느낌이 들어 청승맞게도 서글프다.

공항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울리는 핸드폰을 확인해 보니 엄마의 짧은 문자가 도착해있다.

" 인애 수고했어. 집에 가서 푹 쉬어. "

즐거웠다는 말 대신 수고했다니.. 하하 

난 오늘도 우리 엄마만의 낯 간지럽지 않고 진심이 묻어나는 그 사랑 방식이 참 맘에 든다.




작가의 이전글 아이 핑계는 대기 싫어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