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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릴리 Nov 08. 2021

직장맘의 하루. 긴 터널의 끝엔 항상 빛이 있다.


비꿍이는 6시 20분 통근버스를 탔다.

그 이후 아이들의 케어는 나의 몫이다.

지금보다 훨씬 어렸던 3,5세 까꿍, 나꿍이. 난 그 아이들의 엄마였다. 






6시 20분



먼저 아침밥을 만든다.

밥과 국, 반찬. 7시까지.

아이들이 고맙게도 6시 30분 정도면 일어난다.

요리 도중 중간중간 아이들을 세수시키고, 옷을 입힌다.



7시 20분


7시 20분에는 아침을 먹어야 한다.

7시 20분. 아이들을 다그치며 빨리 먹으라며 밥을 함께 먹는다.

아이들이 밥을 빨리 먹는 것이 나를 가장 도와주는 것인데 아이들이 내 마음대로 되는 날이 거의 없었다. 

아이들을 밥을 먹이며 나도 밥을 먹으면서 중간중간 세수를 하고 옷을 입고, 화장을 한다.

화장이 대충 끝날 때쯤 아이들의 밥그릇을 보면 정신없는 가운데에 아이들도 밥을 거의 다 먹었다. 

대충 개수대에 아침 먹은 그릇들을 담가두고 아이들 양치를 시키고, 옷을 마저 입힌다.

나도 양치한다.






7시 40분



집에서 나가야 한다.

출근 시간은 8시 30분이고, 빠르게 가면 직장은 10분 안팎 걸리는 거리다. 

하지만 아이들은 각각 다른 어린이집에 간다. 아이들을 각각 데려다주고 8시 30분에 간신히 세이프인 하기에도 힘든 시간이다.

첫 번째로 가야 할 어린이집은 8시에 오픈한다. 더 일찍 나갈 수도 없다.

아이들 어린이집 가방 2개를 들고, 출근 가방을 들고 나꿍이를 안고, 까꿍이 손을 잡는다.

집에서 나가 지하주차장에 아이들을 태운다.

아이들은 각각 카시트에 앉아야 하고, 벨트를 내가 직접 채워줘야 한다.

그래도 까꿍이가 걸어 다니니까 고맙다.




7시 55분



첫 번째 어린이집에 도착했다.

나꿍이네 어린이집이다. 

선생님이 아직 도착하지 않으셔서 차에 앉아 잠시 기다렸다.

선생님이 조금이라도 늦게 오시는 날엔 식은땀이 난다.

그깟 지각이 뭐라고.

내 새끼 봐주시는 선생님이 조금 늦으실 수도 있지...

왜 그땐 그 생각을 못 했을까.

나꿍이를 어린이집에 두고 바로 출발한다.






8시 10분



까꿍이 어린이집 도착.

다행히 까꿍이 어린이집은 조금 더 규모가 큰 곳이라 아이를 7시 30분부터 보낼 수 있다.

하지만 까꿍이는 항상 어린이집에서 2~3등 하는 어린이다.

까꿍이에게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바로 차로 달려가서 엑셀레이터를 마구 밟는다.

신호가 하나라도 걸리면 화가 난다.

신호가 걸리면 3분은 늦어진다.






8시 29분


간신히 세이프인.

휴.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태연하게 직장에 걸어들어간다.








퇴근




퇴근길은..?

역순이다.

비꿍이는 회식도 잦았고, 일찍 퇴근해도 7시 

보통은 8시 50분에 집에 왔다.

회식은 일주일 1회 이상.

아이들의 오후 케어도 온전히 내 몫이다.




퇴근시간에 맞춰 차까지 달려간다.

까꿍이는 내가 도착하는 시간에서 3분만 늦어도 어린이집에서 통곡을 했다.

엄마가 오지 않는다며.

까꿍이가 울기 전까지 얼른 도착해야 한다.

까꿍이의 친구들은 어린이집 놀이터에 놀고 있으나 난 나꿍이를 데리러 가야 한다.

까꿍이가 친구들과 놀고 싶다고 해도 놀수 없다.

내 몸이 지치기도 했지만, 나꿍이를 얼른 데리러 가야 한다.




나꿍이는 어린이집에 항상 홀로 엄마를 기다리고 있다.

30분 정도는 항상 홀로 엄마를 기다린다. 

엄마의 미안함도 모른 채 나를 보며 방긋 웃는 나꿍이를 만나 집으로 돌아간다.




아이들이 안 아프면 정말 감사했는데

그땐 아이들이 그렇게도 자주 아팠다.

퇴근길에 병원에도 얼마나 자주 들렀던지.




집에 돌아가면 아이들을 두고 난 저녁밥을 한다.

저녁을 먹이고

아이들을 씻기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도 한다.

미안하게도 아이들과 놀아줄 시간이 거의 없었다.








8시 30분 


난 너무도 지쳤다.

이제서야 아이들과 함께 할 시간이 난다.

책을 읽는 둥 마는 둥.

조금 있으면 비꿍이가 돌아왔다.












일어나자마자 바로 옷을 입고 화장을 하면 시간이 절약되지 않냐는 말을 들었다.

요리를 하면서 출근 복장에 음식 냄새를 풍기며 직장에 가고 싶지는 않았다.








왜 사람을 쓰지 않았냐는 말을 들었다.

아이들의 어린이집은 

까꿍이는 우리집에서 차 타고 7분 거리, 걷는다면 15분 정도, 횡단보도를 3개 건너야 했다. 

나꿍이는 우리집에서 차 타고 15분 거리의 어린이집을 다녔다.

더구나 사람을 쓰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만 내가 집에 없으니.. 먼 거리의 어린이집 2곳, 아이들의 안전 등을 생각했을 때 

내가 차라리 희생하는 편이 낫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그 선택에 대해서.. 아이들이 홀로 엄마를 기다렸던 시간이 1시간이 채 되지 않는 시간이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는 편이다..(약간의 후회는 있다.)








차가 한번 크게 망가졌었다.

차체를 받치는 스프링이 정말 망가졌다.

정비소 아저씨는 나에게 과속방지턱을 세게 자주 넘지 않았냐고 말했다.

네...

부끄러웠다.

아이의 어린이집들은 아파트 단지 내에 있거나 공원 내에 있어 과속방지턱이 수도 없이 많았다.

항상 시간에 쫓겨 살았기에 과속방지턱은 그냥 다른 길처럼 지나가곤 했었는데, 으쓱이(=내가 타는 차^_^)는 힘들었던 것이다. 나처럼.

브레이크패드가 다른 차에 비해 너무 닳지 않았다는 말도 들었다.

브레이크를 밟기엔 내가 너무 바빴다.






지금도 그때도 친정 부모님과 시부모님의 도움을 받을 수 없는 거리에 우리 가족은 살고 있다.

만약 도움을 받기 시작했다면 난 끝도 없이 기댈 수밖에 없었을 것 같다.




힘들다고 생각할 시간도 없었다.

그냥 내가 처한 상황이었고 내 가족이었고 난 아이들을 길러야 하는 엄마였고 직장인이었다.

가끔씩 친정과 시댁의 도움을 받는 사람들이 부럽기도 했다.

아니, 더욱 가까운 사람. 비꿍이. 자주 회식 가는 비꿍이가 부럽기도 했다. (그래서 화도 많이 냈다.)

나에게는 회식할 여유가 없었고 시간이 없었다.





또..

항상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만 가득했다.

바쁘기만 한 엄마

맨 처음 아이를 맡겨두곤 맨 늦게 나타나는 엄마.

그 죄책감이 나를 더욱 짓눌렀다.






그 순간이 그때는 언제까지고 계속될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런데 말이다.



어느 순간 아이들이 점점 큰다.


어느 순간 아이들은 스스로 안전벨트를 매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아이들은 스스로 옷을 입고, 세수를 했다.

어느 순간 아이들은 스스로 밥을 먹기 시작했다.

어느 순간 아이들은 스스로 어린이집에 도착하면 안전벨트를 풀고 차에 내리게 되었다.




또 어느 순간 다른 보육기관에 갔던 아이들은 같은 기관에 가게 되었다.

난 한 군데에 아이들을 데려다주고, 데리고 오면 되었다.





시간이 또 흘러 아이들은 이제 초등학생이 되었다.






이제 더 이상 카시트를 하지 않는 아이들이 되었고,

우리가 외출하면 왜 가야 하는지 설득해야 하는 아이들이 되었다.

학원 숙제를 스스로 아침에 눈뜨면 하는 아이들이 되었고

엄마의 잔소리가 있긴 하나, 스스로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아이들이 되었다.




다시는 이런 순간이 오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었는데 

내년 복직 후엔 나 혼자 출근할 수 있는 환경이 되었다.










직장맘이면 모두가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나와 같은 하루를 보내고 

나와 같은 아이에 대한 죄책감을 가지고 

그와 동시에 직장 내에서 

내 능력에 대해, 내 상황 때문에 직장 상황에 100% 집중할 수 없는 상황에 답답함을 느낄 것이다.

언제까지 이런 답답한 상황이 계속될 것인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숨이 턱턱 막힐 것이다.

내년을 생각하면 그 답답함이 아직도 몰려오니 영원히 이 답답함을 해결하기는 힘들 것 같다.




하지만 이제껏 아이를 길러오며 직장을 다닌 경험을 살려 얘기해 보자면



그렇게 끝도 없는 긴 터널이 

언젠가는 저~~ 끝에 자그마한 빛이 나타날 것이고

그 빛이 점점 커질 것이라는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또.

아이에 대한 죄책감보다는

허락된 시간에 아이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아이의 눈을 마주치고, 사랑한다고 말해준다면




끝도 없던 그 터널 속에서 나 혼자가 아니라 내 옆에서 얌전히 아이가 손잡고 있을 것이란 점이다.








비꿍이는 아직도 휴직이 많이 남아있는데 굳이 왜 벌써부터 걱정하냐는 얘길 한다.

어쩔 수 없는 엄마라 그런 가보다.



점점 짧아지는 낮의 길이를 보며

비 내리는 것을 보며

방과후 놀이터에서 엄마들과 신나게 놀고 있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학원 다녀올 때 큰 길 건너는 것이 걱정되어 하염없이 아이를 기다리는 나의 모습을 보며

엄마 복직 하지 않으면 안 되냐는 아이들의 물음을 들으며




내년 이맘때엔 아이가 어떻게 하고 있을지 어찌 걱정이 안 될 수가 있냐는 말이다.



걱정한다고 해결되지 않는다고 비꿍이는 아마도 나에게 얘기할 것이다.

물론 나도 그렇게 생각하기에 걱정되는 부분을 어떻게 메꿀 수 있을지 아이들을 훈련(?) 시키기 시작한다. 걱정을 덜어내기 위한 과정이다.

이 훈련이 계속 될수록 나의 걱정도 점점 가벼워지겠지.






아이들이 올곧게 설 수 있게

나는 나대로 바르게 설 수 있게 

오늘도 바르게 살아가기를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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