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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꽁커리어 Nov 28. 2021

나를 제대로 바라보는 사람에겐
이길 수 없다.

늘 사람이 먼저인데 마음은 그러질 못했다.

비즈니스나 영업, 프로젝트 건으로 식사시간을 거르고 퇴근을 생각지 못할 만큼 업무에 치열하게 몰입한다. 경쟁사, 경쟁 부서와 평상심의 인사와 격려를 나누면서도 물밑의 분주한 견제와 정보를 탐하면서 억센 승부 근성에 마음 졸여가며 버티어온다. 

그러다 보니 사람은 항상 그다음이었다.

사람이 신경 쓰였던 것은 그가 이탈 또는 포기, 변수가 생길 때뿐이다.

그들은 당연히 중무장하고 결기 있게 들이대고 성과가 될 만한 결과를 가져와야 할 조직원들이다. 그러지 못하게 된 사람의 변수라도 팩트체크 후 대안에 골몰할 뿐이다.


동료와 후배는 늘 불가근 불가원이다.

상사를 대할 때면 눈을 마주 볼 수가 없다. 그가 하는 말보다는 의미와 저의를 생각해보려 촉수를 세워야 하기 때문이다.

옛 친구의 안부전화에 반가움보다는 생경한 느낌이 자리잡는다.

(노랫말처럼) 바쁠 때 전화해도 그 목소리 그리 반가울 여유도 없는 거 같다.     


공유보다 공감, 숨김보다 교감

사람과의 문제로 마음 써가며 애써 고민해보신 적 있었던가

어떻게 처리하고 대응할지, 사건에 놓인 사람이 아닌 그 사람 자체를 놓고 마음이 쓰이고 미안하고 안타깝고 아님, 답답하고 밉고 못내 서운한 마음이 드는 사람 때문에 잠 뒤척이고 속 끓인 적이 있었던가

기업 조직에서 가장 많이 오르내리는 말이 ‘소통’이다. 서브워딩은 ‘공유’, ‘협력’, ‘리더십’ 정도가 될 것이다. 디지털에 의한 정보공유는 말 그대로 ‘공유’지, 접하는 사람 모두가 느끼는 공통의 ‘인식’이나 ‘공감’과는 다르다. 조직 내에서도 정보나 지침을 함께 받아도 저마다 수용하는 자세와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일 것이다.     


인간관계가 요식화, 도구화된 걸까, 상황과 형편에 따라서 잠시들 제쳐두고 있는 걸까.

혼자의 공간을 중시하지만 여러 사람들과 교류, 연대하고 싶은 마음,

철저히 고독하고 싶지만 공동체 안에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

속 감정을 감추고 싶으면서도 진심을 주고받고 싶은 마음들은 그만큼 간절하다.

업무에 치이는 것도 고달프지만 사람에게 치이는 게 더 고단한 현실에서 어느 누구에게도 이해받지 못하는 

외로움이 더 클 때 머리보다 내 가슴을 토닥거려줄 이가 있었으면 참 좋겠다.

내 존재감과 커리어만큼이나 놓을 수 없는 것은 고단한 직장생활에서 내가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사람이라도 단 한 사람의 소울 메이트가 있을 수는 없을까. 


나를 마음챙김하도록 해 준 후배, 지금도 아련해     

수십 년 전 학과 후배와의 설레는 데이트 약속.

지금으로 보면 조금은 깊게 썸 타는 정도였지 싶다. 학과 동기들의 눈을 피해 신촌로터리의 모 백화점 앞에서 만나기로 했었다. 그때는 약속장소를 특정 공간이나 아지트보다는 어느 건물이나 조형물 앞에서 미팅포인트를 정하기도 했다.

약속시간 6시간 전, 데이트 약속에 앞서 학과 동기의 군입대를 배웅하러 갔는데 예기치 않은 상황이 발생했다. 입대할 친구가 입영소에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결국 입영을 거부하고 도피한 것인데(그 당시 운동권 학생들은 입대를 연기하거나 병역거부가 종종 있었던 때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가족분들과 친구들도 당황스러움과 배신감에 시간은 흐르고 나는 약속 장소로 이동할 시간이 되어도 쉽게 자리를 뜨기 어려운 분위기에 휩싸였다. 

결국 ‘× 마려운 강이지’처럼 불가피한 약속이 있다며 서둘러 빠져나왔다.

그때부터 정신없이 날다시피 뛰었다. 부지런히 길을 재촉했으나, 이미 최소 한 시간 이상은 약속에 늦을 상황. 

당시 핸드폰은 있을 리 없고, 동기를 통해 많이 늦을 거라는 소식조차 전할 수 없는 상황. 그저 있어주기를 바라는 극단의 이기주의와 요행을 바라는 마음만 터질 듯 간절해진다. 야외 공간이라 어디 편하게 앉아 기다릴 곳도 없을 것이다. 편하게 앉아 기다리기는 고사하고 누구를 만나기라도 하면 후배는 또 뭐라 둘러댈까, 그냥 자리를 뜨고 내일 학교에서 보면 냅다 따져 물어도 될 텐데... 퍽이나 기다려주겠는가

그러나 가슴은 ‘제발 그 자리에 있어줬으면..’ 하는 마음이 요동을 치고 있었다. 

가는 내내, 발만 동동, 뭐든 다 들어주고 어떻게든 지루한 기다림을 보상해주고 싶은 절박함뿐이었다.

결국 약속시간보다 2시간 가까이 늦게 신촌 전철역에 도착해서 한걸음에 약속 장소로 날다시피 튀어 올라갔다.  

약속 장소 출구를 올라서자마자 미팅 장소를 보았으나 후배는 보이지 않았다.

‘그럼 그렇지, 2시간이나 지났는데’, ‘내가 하는 일이 그렇지 뭐’

그제야 가쁜 숨을 내쉬며 맥없이 무너지듯 출구 난간에 기대서려는데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어렴풋이 눈에 들어오는 후배, 날 보자마자 배를 움켜쥐며 깔깔거리는 그 후배를 보고, 그제야 땀범벅이 된 얼굴을 

소매로 훔친다.

어찌할까. 숨은 가쁘고 긴장했던 땀들조차 그때서야 연신 흘러내려 지저분해 보일 거 같고, 냉큼 다가가 무슨 말이라도 해야겠는데 그 후배는 마냥 재밌어하는 표정이다.     


부모님 다음으로 다른 사람에게 가장 버거운 고마움을 느끼게 해 준 후배였다.

‘실적’과 ‘관리’에 최적화된 조직형 인간이 회색빛 갑옷을 내려놓고 하늘거리는 티셔츠 차림으로 나를 마음 챙김 하게 해 준다. 


한 가지 더 확실하게 다가오는 의미가 있다. 

그 후로 난 그 후배를 감정적으로 이길 수는 없었다. 

누구든 사람들은 자신만을 바라보는 사람에게는 결코 이길 수 없음을 그때 어설프게나마 알 수 있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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