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가 들면서 생긴 습관 중에 하나는 집 밖을 별로 나가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새로운 사람과 새로운 관계를 깊게 만들기도 점점 어려워진다. 오래된 것들, 익숙하고 편안한 것들에 더 안심하게 되고 애착하게 된다. 물론 혼자일 때 가장 편안함을 느끼기도 한다. 그러니 어디 버스라도 타고 이동하려고 하면 마치 여행을 가는 기분으로 마음을 굳게 먹어야 한다. 엎어질 듯 코 닿는 거리의 예술의 전당도 그래서 큰 맘을 먹고 스케줄을 잡다가 공연이나 전시를 놓치곤 한다. 귀차니즘과 게으름이 한층 강화되는 겨울은 더 심해서 이번 고흐전도 계속 숙제를 미루는 학생처럼 뒤로 뒤로 미루고 있었다. 요즘 아르바이트도 계속하고 있어서 더 시간이 적어지기도 했다. 다음 주는 내내 아르바이트를 하기고 되어있어서 오늘은 아침 일찍 아이들 등교시키고 바로 예술의 전당으로 갔다. 거기서 드디어 그를 만났다.
그와 나는 이미 20년 전에 만난 적이 있었다. 집의 빚을 모두 갚고 서울로 올라온 후 대출을 받아 유럽배낭여행을 갔을 때 내 일정은 대부분 각 국의 미술관 방문이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에곤 쉴레와 클림트를 만났고 네덜란드와 프랑스 루브루에서 고흐를 만났었다. 그때의 충격과 환희는 떠올리기만 해도 가슴이 찌르르한 감동으로 남아있었다. 고흐 전시는 워낙 관람객들이 많다는 이야기를 들어서 사람 많은 곳을 좋아하지 않는 나로선 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역시나 평일 10시 전부터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지만 무사히 첫 타임에 에 관람이 가능해서 보고 싶은 그림은 여러 번 되돌아가 다시 보기를 수십 번 했다.
반고흐- 석양의 버드나무
가장 많이 봤던 그림은 '석양의 버드나무'이다. 가로 세로 30센티도 안 되는 이 작품은 한쪽 벽을 홀로 감당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존재감이 얼마나 큰지 빈 공간 없이 아니, 오히려 그림의 저물어가는 태양이 힘차게 빛을 내던지며 전시장을 꽉 채우는 느낌마저 들었다. 붓질하나 하나, 나이프로 그은 날카로운 선 하나하나가 공간을 가로질러 뻗어나가고 있었다. 보는 순간 압도되는 감동이 밀려왔다. 그림 앞으로 혼자 몇 번을 다시 돌아가서 한 획, 한 획을 마음에 새겨 넣었다. 그림을 보는 내내 이 그림이 다시 떠오르고 생각나서 전시장 밖을 나서기가 두려웠다. 혼자서 꽁꽁 숨겨두고 보고 싶다는 말도 안 되는 욕심도 부려봤다. 그만큼 너무 좋았다. '역시는 역시'라는 말을 다시 한번 실감하는 오늘이었다. 그리고. 귀한 작품들을 눈과 가슴에 담을 수 있도록 귀차니즘을 이겨낸 나 자신에게 치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