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석 - 전 루이쌍끄 오너 셰프, 현 유면가 대표
이유석
전 루이쌍끄 오너 셰프, 현 유면가 대표
Editor's Note
9년간 압구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던 프렌치 가스트로 펍 '루이쌍끄'의 오너 셰프였던 이유석 님을 만났다. 압구정을 떠나 성수동에 면이 있는 집, '유면가'를 운영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이유석 셰프가 '가능하다면 오래 머물고 싶다'는 고즈넉한 성수동의 매력에 대해 묻기 위해 유면가를 찾았다.
손님들과의 공간이자 나만의 공간, '유면가'
Q) 공간 전체를 사무실처럼 쓰고 계시네요?
A) 네, 올해 12월까지 영업을 중단하고 메뉴 개발에 힘쓰고 있어요. 일상의 가장 많은 시간을 여기서 보내요. 메뉴 개발을 하다가 시간이 너무 늦어지면 잠시 잠을 자기도 하고요. 그러다 눈 뜨면 아침인 날도 있어요.
Q) 일에 굉장히 몰두하고 계신 것 같네요.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계시나요?
A) 여러 F&B 기업들의 메뉴 개발을 책임지고 있어요. 개발하고 있는 메뉴도 다양해요. 피자, 족발, 라면, 탕수육(웃음). 제가 프렌치 요리 전공인데 탕수육까지 개발하게 될 줄은 몰랐어요. '유면가'에 오신 손님께서 막국수를 드시다가 갑자기 커피 한 잔을 하자고 하시더니, 본인이 중국집을 하는데 메뉴 개발을 해줄 수 있냐고 하시더라고요.
코로나로 인해 요식업계가 전반적으로 많이 힘든 시기인데, 시야를 넓게 하니 기회가 생기는 것 같아요. 어려운 시기에 살아남으려고 여러 도전을 해보고 있죠. 좋은 결과물을 만들어내야 하니 새벽까지 일을 할 때가 많고요. 올해 40살인데, 40년 동안 이렇게 열심히 살아본 적이 없는 것 같아요(웃음).
Q) '유면가'는 손님들이 오시는 식당인 동시에 개인 작업실 느낌이 강하군요?
A) 하나의 플랫폼 같은 곳이죠. 이제는 할 수 있는 일의 스펙트럼이 중요한 시대라고 생각해요. 미슐랭 가이드에 오르는 식당을 만들 거냐, TV에 나오는 스타 셰프가 될 거냐, 방향성은 다양하게 가질 수 있지만 저는 지금 방식을 선택했어요. 제가 요식업 내에서 할 수 있는 콘텐츠를 넓히는 데 욕심이 있거든요. "이유석의 이유식"이라는 이유식 책을 내기도 했어요. 제 별명이 이유식이기도 해서요(웃음). 이라크에 수출하는 할랄 푸드 전투식량을 개발한 적도 있고요. 다양한 비즈니스를 전개하며 새롭게 경험하고 배우는 점이 참 많아요.
Q) 왜 많고 많은 메뉴 중 면을 선택하셨나요?
A) '루이쌍끄'를 운영하며 1년 정도 일본을 오가며 면을 공부했어요. 면이 너무 좋아서요. 일요일 아침 비행기로 일본에 가서 월요일 저녁 비행기로 돌아오는 일정으로 매달 한 번씩 출장을 다녔는데, 한번 가면 택시 타고 이동하는 시간에도 면을 먹을 정도로 바빴어요. 뭐가 됐든 면 집은 미치도록 하고 싶더라고요. 면을 하면 제가 대한민국에서 탑이 될 줄 알았어요 사실(웃음). 그런데 쉽지 않더라고요. 제가 자만한 거죠.
마음의 여유를 가질 수 있게 해주는 성수동
Q) 2019년 1월까지 9년간 운영하신 '루이쌍끄'는 압구정에 있었잖아요. '유면가'는 성수동에 자리를 잡은 이유가 있을까요?
A) 성수동은 저녁 7시쯤 되면 조용해질 만큼 고즈넉한 동네예요. 이 동네 사람들이 정이 많은 점이 좋더라고요. 약간 80년대 감성이 느껴지기도 해요. 토박이 분들도 많고요. 또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데도 소탈한 분들이 분들이 많아요. 90년대 드라마에 나올 것 같은 차를 몰고 다니시는데 알고 보면 건물을 몇 채씩 갖고 있으시더라고요(웃음). 저희 건물주 할아버지께서도 갑질 한번 안 하시고 참 친절하세요.
제가 성수동에 갖고 있는 건물은 없지만, 부동산 투자 면에서 매력 있는 동네이기도 하죠. 트리마제도 있고, 아크로 포레스트도 있고요. 쉽게 말해 땅값이 오를 만한 곳이니 제 사업을 하는 입장에서도 유망한 지역이에요.
Q) 셰프님이 느끼시기에 압구정과 성수동은 어떤 점이 가장 다른가요?
A) 압구정은 보통 젊은 20대, 혹은 10대를 대상으로 사업을 하는 곳이 많아요. 그만큼 변화가 빠른 곳이죠. 어느 한 곳이 입점을 해도 6개월을 넘지 못하고 없어지는 경우도 많고요.
Q) 압구정에서의 '루이쌍끄'를 정리하고 성수동으로 오시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A) '루이쌍끄'를 운영하는 9년 동안 제가 많이 지쳤었거든요. 처음 몇 년 간은 루이쌍끄에 기업가 회장님이나 연예인 같은 유명한 분들이 오시면 좋았어요. 친해지려고 애쓰기도 했고요. 같이 앉아 술도 마시고 하다 보면 우쭐하기도 했죠. 그런데 정신이 많이 피폐해지더라고요. 어느 순간 이대로 가면 50살을 넘기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부질없는 것에 욕심내며 살고 싶지 않아졌어요. 성공의 기준을 돈으로만 생각했다면 압구정에 계속 있었을 거예요. 하지만 그때보다 저는 지금이 더 마음이 편안하고 행복해요. 제가 루이쌍끄 운영을 그만두겠다고 했을 때가 가장 수익도 좋고, 잘 되고 있던 시점이라 다들 의아해했지만, 저는 저의 행복을 위해 다른 길을 선택했던 거죠.
성수동과 함께 꿈꾸는 미래
Q) 성수동에서 좋아하시는 장소가 있나요?
A) 뻔한 대답인데 서울숲 좋아해요. 일하다가 지칠 때 산책하러 가는데, 사람들 구경하고 좋아하는 곤충들도 관찰하고 오면 좀 리프레시가 되거든요. 서울숲 아니면 여기 '유면가'에요(웃음). 지금은 코로나로 인해 잠시 '유면가' 운영을 중단하고 사무실로 사용하고 있어서, 여긴 저만의 공간이거든요. 방해할 사람이 아무도 없어요(웃음). 가끔 혼자 메뉴 개발하다도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다고 느낄 땐 음악 틀어놓고, 뒤쪽 테라스에서 모닥불 피워 두고 술 한잔하며 바베큐 구워 먹고, 영화 보며 시간 보내요. 비 오는 날에 특히 분위기가 더 좋아요. 빗소리 들으면서 와인 한잔 하면 마음이 아주 편안해지죠.
Q) 앞으로 5년, 10년 뒤에는 스스로 어떤 모습을 상상하고 계세요?
A) 저는 여건이 된다면 성수동에 오래 머물고 싶어요. 동네가 조용하고, 다리만 건너면 강남이 금방인 만큼 교통도 좋고, 서울숲이랑 한강도 가깝고요. 제 정신건강에 좋은 동네 같아요(웃음). 성수동이 아니라면 서울 외곽이나 지방에서 가게를 하는 것도 매력적일 것 같네요.
커리어면에서는 지금처럼 저의 영역을 다방면으로 계속 넓혀가고 싶어요. 코로나 이후로 특히 요식업계는 상황이 하루하루 달라지다 보니 목표 하나만을 잡기는 어렵지만, 무엇이든 해볼 수 있도록 다양한 비즈니스를 경험해 보려고요. 요즘 벌여 놓은 일이 많지만, 그만큼 많이 배우면서 재밌게 일하고 있어요.
이유석 셰프처럼 마음 편안해지는 곳을 찾고 있다면, 동네를 방문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