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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현정 Nov 22. 2024

불완전함과 완전함의 경계. 정신의 일체(一切)

길고 긴 깊은 꿈속을 헤맨다.

꿈속의 나는 먹고, 자고, 웃으며

편안하고 고요한 일대(代)를 보내며 

꿈에서 깨었다.


모든 것이 아름답고, 조화로웠던 일대에서

내가 가져본 평온함,

불완전하지만 완전했던 순간들이 생생하다.


성숙했던 자아를 가졌던

꿈속의 나는 지혜로웠다.


꿈에서 깨어난 나의 현실은 

한낱 변변치 못한 미물에 불과했다.


불완전한 나를 받아들이며,

나의 굴곡을 인정해야 하는 잔인함에 힘겨워하는

미숙하고 어린 미물


이상적인 꿈속을 헤매어도 괜찮은가

불완전한 현실을 버티는 것이 괜찮은가


모든 것에 질문을 던질 때쯤-


이대로 꿈속과 현실을 넘나들어도

나의 삶은 괜찮지 아니하던가.




  사람에게는 욕구가 있다. 그들 중에 단연 깊게 자리하고 있는 것은 '완전함'에 대한 욕구, 욕망일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스스로가 안다. 스스로가, 또는 타인이 자신의 삶이 완벽하다고 인정하더라도, 인간은 완벽해지기가 힘들고, 완벽해지려고 노력을 할 뿐, 그 끝에 도달하기란 쉽지도 않고, 불가하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불완전한 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안타까워할 일도 아니다. 그저 동경하는 그 무언가이다. 내면의 온전함. 완전함. 이상을 쫓아가며 발전해 나가는 나를 발견하면서 불완전한 나를 견디며 희열을 느끼고 보다 나은 삶은 영위한다.

 꿈은 완전하다. 하지만 현실은 완전하지 않다. 그렇기에 사람들은 꿈과 현실을 오가면서 괴리감에 빠져들기도 하고 외면하기도 하고, 포기하기도 한다. 우리에게 꿈은 무엇인가, 좌절하기 위해 주는 시련이던가, 나를 보다 끌어주기 위한 희망이던가. 둘 다이던가. 정해진 답은 없이 흘러가는 우리의 시간 속에서, 이 두 세계의 간극은 우습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다.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꿈속에서 내가 완전할 수 있었다면, 온전할 수 있었다면, 잠시 꿈속을 헤매다 취했을 때쯤, 다시 차디차게 잔인한 현실을 마주하며 깨어났다가를 반복해도 되지 않을까. 현실을 직시하면서 괴롭게 살기만 하면 얼마나 괴로운가. 완충할 만한 잠시나마의 낭만적인 꿈을 꾸면서 나의 내면을 다지는 것은 나쁘지 아니하다. 

 현실 속의 나에게 매정할지라도, 꿈속의 나에게 관대해지는 순간을 간직한다. 꿈과 현실의 간극에서 나를 지키는 방법일 것이다. 현실은 냉철할지라도 꿈에서는 따뜻해지자. 현실을 살아가는 것도, 꿈을 꾸는 것도 타인이 아닌 내가 하는 것이고, 내가 살아가는 세계이다. 

 나의 세계를. 나의 세상을. 나의 일대를 위하여. 오늘도 꿈과 현실 속을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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