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는 자식에게 한 가지라도 더 주려고 한다.
나는 이제 하루가 지나면 32살의 나이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가 아직까지 생생하게 기억이 나고 고 3 때 친구들과 야자시간에 농담을 하며 지낸 시간들이 잊히지 않는데 어느덧 벌써 서른두 살이 되어버린 나를 보면 나도 내 나이에 깜짝 놀라고는 한다.
그러고는 생각한다. 내가 올해 몇이었지?
아하 이제 내일이면 서른두 살의 아줌마가 되어가는구나라고 말이다. 그렇다. 나는 아줌마다. 그것도 아이 둘을 키우고 있는 엄마이다.
결혼하기 전에는 결혼 생활에 잘 몰라서 가난한 집안 형편으로 이혼을 하거나 서로 떨어져 살 수밖에 없었던 가정들을 방송 프로그램으로 보면서 이해를 할 수가 없었다. 그런 방송을 볼 때마다 "아무리 그래도 아이랑 같이 살아야지, 어떻게 자기들만 생각을 해" 라던지, "나는 결혼하면 절대 저렇게 안 살아"라는 등의 말을 하며 결혼생활과 육아 생활에 대한 힘든 것들을 전혀 모르고 지냈었다. 그리고 가난한 형편에 아이를 많이 낳는 가정들도 보면 마음속에서 화가 났었다. 그런데 사실, 결혼을 한 부부들에게 아이란 존재는 축복에 가깝다
그 환경이 가난한 집안일지라도 말이다. 결혼하기를 싫어하고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이들에게는 내 이야기가 먹히지 않겠지만 누군가 내게 아이들의 존재가 어떠냐고 물어본다면 난 앞에서 말했던 것처럼 아이들은 내 삶에서 없어서는 안 될 정도라고 내 목숨과 같은 존재들이라고 말하고 싶다. 아이들이 없다면 나도 이 세상에 없을 것이다.
며칠 전에는 크리스마스였고 나는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선물하지 못했다. 꼭 특별한 날에 장난감을 사주라는 법은 없었지만 나는 한 달 생활비가 여유가 있는 달에는 두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사주거나 내가 사주고 싶은 육아용품들을 사주고는 한다. 그런데 워킹맘의 자리도 끝이 나고 집에 가계를 조금 더 풍족하게 할 수 없는 내 형편에서는 이번 크리스마스는 아이들에게 장난감을 사줄 수 없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장난감을 사게 되면 생활비가 턱없이 부족 해질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장난감을 못 사주는 대신에 아이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자라는 생각에 간식거리와 딸기 초콜릿 케이크를 사주었고 아이들은 정말 맛있게 먹어주었다. 하지만 마음속에는 아이들에게 미안함이 가득했다.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아이를 낳기 전까지 그리고 어른이 되기 전까지 부모님의 밑에서 자라왔을 때 어린이 날이라던지, 졸업식이라던지,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같은 일 년에 몇 안 되는 특별한 날에는 내가 갖고 싶어 하는 무언가를 받기를 원했었다.
하지만 나의 기대와는 다르게 돌아오는 것은 내가 가지고 싶었던 선물들이 아니라 그냥 맛있게 한 끼 먹을 수 있는 고기반찬이나 자장면, 치킨 이런 것들이었다.
사실 그런 먹는 것들도 좋긴 했지만 나는 이런 특별한 날에는 이런 음식들은 부가적으로 당연하게 먹는 것들이란 생각을 했고 선물 하나 제대로 사주지 못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라는 것이 원망스러울 때가 있었다.
정말 이런 생각을 하면서 지내왔던 내가 얼마나 철이 없었는지 지금에서야 알 수 있었다.
부모가 되다 보니 특별한 날에 내 자식들에게 뭔가 선물을 못해준다는 것은, 비참함과 미안함 그리고 안쓰러움과 슬픔이었다.
그런데 나는 부모님의 그런 마음도 모르고, 왜 먹을 것만 사주는 건지 라고 건방지고 개념 없는 생각을 했었는데
사실 우리 부모님은 나와 같은 마음이셨으리라 생각한다.
이유는 그렇다.
"특별한 날에 뭔가 해줄 수 있는 형편은 되지 못하니, 그렇다고 그 날은 그냥 흘리듯이 보내는 것보다 이 정도뿐이지만 아이들을 기쁘게 해주자. 아이들에게 아무것도 해주지 못하는 것은 너무 미안하니까 "
그런 특별한 날에는 맛있는 음식으로라도 기분을 내고 내 자식에게 한 가지라도 더 잘해주고 싶은 마음이셨을 거란 생각이 든다.
아마도 결혼하지 않고 출산하지 않았다면 지금도 몰랐을 감정이었을 것이다. 철 없이 굴었던 마음이 30대에 와서도 특별히 달라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직접 경험해보면 남의 경험들을 함부로 이야기할 수 없듯이
부모가 되고 나니 부모님의 모든 말과 행동들을 이해할 수가 있고 때로는 안쓰러울 때도 있다.
자식을 낳아 옷을 마음대로 사입 히지 못하고, 먹고 싶은 것을 사주지 못하고 갖고 싶어 하는 것을 사주지 못하는 부모의 마음이란 이 세상에서 있는 슬픔 중에 아마 그 슬픔이 제일 크지 않을까란 생각이 든다.
우리 부모님도 많이 슬퍼하셨겠지.
엄마 아빠는 아직도 나에게 예전에 잘해주지 못했다며 미안해하신다.
그러니 이제라도 철없이 생각했던 그때의 시절들을 청산하고 부모님의 마음을 더 이상 후벼 파지 않을 것이다. 엄마 아빠의 마음이 어떠하셨을지 이제는 나도 엄마가 되어서 알기 때문에 말 한마디라도 조심하고 되도록이면 상처가 되는 말은 하지 않으려 한다.
그리고 유년시절의 선물을 많이 받지 못했던 나를 불쌍하다고 여기는 것보다, 그러한 특별한 날 없는 형편에 먹을 것이라도 사주셨던 부모님이 계셨음을 감사함을 느낀다.
이제는 특별한 날에는 내가 받기보다는 부모님을 더 챙길 것이다. 어린 시절의 철없는 내가 아닌 나이가 들어가는 부모님에게 선물 같은 존재가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