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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화 Dec 03. 2020

#7 난밍아웃을 아시나요

피임약을 먹으면 불임이 된다는 그녀에게 난밍아웃을 했다.

 난밍아웃은 난임과 커밍아웃(동성애자 및 성적 소수자들이 성적 정체성을 스스로 밝히는 일을 일컫는 말)을 합친 말이다. 커밍아웃의 본래 의미와는 관련이 없지만 자연임신이 어려운 소수자임을 밝힌다는 의미이다.


 나와 남편은 나의 친정 부모님과 시댁 부모님께 난밍아웃을 한 상태이다. 시댁에는 자세히 말씀드리지 않고 시험관 시술을 한다는 것만 알고 계신다. 친정 부모님께도 처음부터 세히 말씀드리지 않았다. 하지만 시험관 10차 시도까지 오는 과정에서 '난임'에 대한 상식이 부족한 그들이 본래 의도하지 않았지만 나에게는 상처가 되는 말들을 하게 되었고, 나는 그 상처를 받기 싫어 그들에게 낱낱이 그 과정을 공개하게 되었다. 한 마디로 '나 이 정도로 아프고 힘드니까 더 이상 상처되는 말 하지 말아요.'란 경고성이었다.


 난임 여성이라는 것을 알게 된지 2년이 되어가는데, 내가 난밍아웃한 지인은 가족을 제외하고 2명이 전부다. 그것조차도 내가 적극적으로 원해서 알리게 된 것은 아니다.

 한 명은 자궁에 근종 수술을 받아야 하는 상황에서 아이를 원하는 *다낭성 여성이었다. 그녀에게 내가 알고 있고 그동안 공부했던 내용을 공유해서 도움을 주고 싶어 내가 그녀와는 결이 다른 난임인 난소 기능 저하라는 것을 밝혔다.


* 다낭성 난소 증후군: 무배란성 월경 이상과 난소에 여러 개의 물혹이 생기는 증상을 동반하는 질환(출처: 두산백과)으로 난소 안에 성숙되지 않은 여러 개의 난포가 존재하기에 보통 AMH가 정상수치보다 월등히 높게 나타난다.


 두 번째로 난밍아웃을 했던 상대는 시어머니와 같은 연배를 가진 분이었다. '결혼하고 나서 살이  쪘다.' '살을 빼야 임신이 된다.' '피임약을 먹으면 불임이 되니 절대 먹지 말라.' '아기를 낳으면 얼마나 좋겠냐.' 등등의 이야기를 약 3년간 계속해 듣다가 견디다 못해 난밍아웃을 했다. 그녀는 30년 전에 자신도 첫째 딸을 가질 때 과배란 유도제인 클로미펜을 먹고 낳았다며 먼저 이야기를 꺼냈기에 내 상황을 조금은 이해하는 듯 보였다.


출처: pixabay


피임약을 먹으면 불임이 된다?



 그녀에게 '피임약을 먹으면 불임이 된다.'는 것은 난소 기능 저하이자 조기폐경인 나에게는 더욱이 잘못된 조언이라고 콕 집어 말했다. 그리고 아무에게나 그 조언을 하지 않기를 당부했다.

 난임 병원에서는 종종 피임약이나 그것과 비슷한 호르몬제를 처방한다. 과배란에 지친 난소를 쉬게 하기 위해서이다. 혹은 나와 같은 조기폐경이자 난저인 여성의 경우는 과배란을 하지 않지만(않는다는 표현보다 못한다는 표현이 더 맞다), 매우 높게 나타나는 *FSH을 낮추기 위해서도 복용한다. 


 내 몸에 난자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안 뒤로, 나는 임신 계획이 없던 결혼 전에 매달 난자를 낭비하지 말고 차라리 피임약을 먹었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한다. 25년간 생리를 하면서 피임약이라곤 수능 전 달 1달뿐이었으니까. 그녀처럼 피임약을 먹으면 무슨 대단한 일이 나는 줄 알았던 나였으니까.


*FSH: 난포자극 호르몬, 40세 이전에 무월경과 함께 FSH가 40IU/L 이상 나온 것이 최소 2회 이상 나왔을 때 조기폐경이라고 진단한다.  (출처 : 환경일보 http://www.hkbs.co.kr/news/articleView.html?idxno=602949)


난밍아웃을 하고 나면 편할까?


 보통 난밍아웃을 하면 원치 않는 잔소리를 덜 듣겠거니 기대하지만 그렇지 못한 난임 부부도 많다. 난임 정보 공유 카페를 보면 난밍아웃 이후로 흑염소, 쑥, 녹용, 한약 등을 계속 권유받거나, 시험관 시술을 하는 병원이나 한의원 선택에 지나친 간섭을 받아 지친 부부의 사례를 여러 번 읽었다.


 다행스럽게도 그녀는 나의 난밍아웃 이후로 "아기를 낳으면 OOO 텐데."를 포함해 그 외의 조언은 더 이상 하지 않았다. 물론 그 과정에 "시험관을 해보지 그러냐?"라는 질문에 내가 "시험관을 이미 여러 번 시도했는데 난소에 자라는 난자가 없어서 시험관 시술을 하고 싶어도 1년에 몇 번 하지 못하고 있다."라고 구체적으로 밝혔기 때문이다.


 시험관을 하고 퉁퉁 부운 나를 보고 "살을 빼야 한다."라고 말했던 그녀가 이제는 속으로 조금의 미안함은 느꼈으면 좋겠다.

 또 바람이 있다. 그녀의 의도가 얼마나 순수했느냐와는 별개로, 결혼한 부부에게 '당연히' 아기를 가질 거라는 가정하에 하는 이런저런 조언이 누군가에게는 관심이 아니라 '상처'가 된 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이 정도는 지나친 바람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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