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목화 Nov 27. 2020

#2 난임의 시작

난임의 시작은 '진단'이 아니다.


'난임'이란
부부가 피임을 하지 않고
1년 이상 정상적인 부부관계를 하여도
임신이 되지 않는 상태.






 나의 난임의 시작은 언제였을까. 빠른 년생이라 한 해 일찍 학교에 들어간 초등학교 6학년 때 우리 반 여학생 중에서 2,3번째로 초경을 시작했다. 사실 내 나이는 초등학교 5학년이었다. 그렇다면 사실상 반에서 1등으로 초경을 시작했을지도 모른다.


 게다가 생리주기가 25일 정도로  매우 짧아 한 달에 월초와 월말에 2번 생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피임약이라고는 고등학교 3학년 수능 전 딱 한 달 먹은 것이 전부다. 그렇게 20년이 넘도록 단 한 번도 빼놓지 않고 꾸준히 생리주기를 유지했다. 내 자궁은 지나치게 건강하다는 착각에 빠져있었다. 서른 중반이 되도록 그렇게 다른 사람들보다 횟수로 70-80번이 넘는 생리를 더 한 것이다.


 30대의 결혼이 조금 늦었다고 생각되어 서둘러 남편과 가족계획에 대해 대화를 나눴다. 산부인과에 가서 자궁 초음파로 자궁 상태도 확인했다. 정상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임신 준비에는 손쉬운 피검사인 AMH 수치를 먼저 확인하는 것이 필요했다. 나도 지극히 무지했지만 임신을 한 지인들도, 산부인과 의사도, 아무도 AMH 수치를 확인해보라고 알려주지 않았다.



항뮐러관호르몬
(Anti-Mullerian Hormone, AMH)
난소 나이와 난소 기능을 짐작할 수 있는
혈액 채취를 통한 최신 검사.
예상 난자 개수와 폐경 시기 등을
가늠하는 지표.



 자궁 초음파가 정상이니 아이가 연초에 태어났으면 하는 구체적인 바람까지 가졌다. 예상 출산 날짜에 맞춰 임신을 시도하려고 결혼 전과 직후는 계속 피임을 했다.


 그러던 중 친구 아내와 친척 언니의 유산 소식을 겹쳐 접했다. 순간 겁에 질렸다. 충분히 건강한 상태가 아니면 임신을 시도하면 안 된다는 개념이 내 머릿속을 완전히 지배했다. 안전한 임신을 위해 휴직까지 선택했다.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달은 일부러 배란일을 피했다. 또 몇십 년 만의 강추위가 지배한 겨울에도 전기장판 같은 것은 몸에 좋지 않다고 생각해 절대 사용하지 않았다.


 본격적으로 일반 산부인과에 배란초음파를 보러 다녔다. 난포가 작다고 하면 일부러 부부관계를 피했다. 유산을 피하고 싶다는 이유였다. 그렇게 배란일에 맞춘 임신 시도를 몇 번 실패하자 산부인과에서는 클로미펜이라는 과배란 유도제를 권했다. 처방만 받고 먹지 않았다.


 나는 원래 약을 잘 먹지 않는다. 내 몸은 바른 먹거리와 식습관 그리고 운동으로 유지하며 살아왔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기 같은 잔병에 걸리지도 않았거니와 혹 걸렸다 해도 병원에 가지 않고 휴식을 취하며 자연스럽게 몸이 이겨내길 기다렸다.


 과배란제를 먹고 임신을 한다는 것을 그야말로 '끔찍한' 일로 여겼다.


 부모님과 상의해서 몇 달간 한약을 먹기도 했다. 그래도 소식이 없었다. 결국 산부인과에 다시 찾아가 과배란 유도제를 에 털어 넣었다. 내 몸은 전혀 반응하지 않았다. 오히려 생리를 하지 않았다. 병원에서는 과배란 주사, 인공수정, 시험관 등 다음 단계로 넘어가 보면 어떠냐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물론 내가 원한다는 가정하에라고 강조했다. 기왕에 검사를 받는다면 난임 전문병원에 가야겠다는 판단이 섰다. 그렇게 결혼한 지 1년 6개월이 지나 난임 병원에 내 발로 찾아갔다.





인생에서
처음 받아 본
0점

 남편과 나는 검사를 모두 마치고 결과를 듣기 위해 난임 전문병원 의사를 만났다. 그의 얼굴은 어두웠다. 눈을 마주치지도 않았다. 그저 내 앞에 흰색 A4용지를 펴고 크게 AMH라고 적었다. 인터넷에 검색해보면 자세히 나온다고 했다. 그것은 쉽게 말하면 내 난소에 난자가 얼마나 남아있는지 나타내는 수치였다. 나의 AMH는 50대 중반 폐경 직전의 0점이었다. 의사는 당장 시험관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출처> Seifer DB et al., fertility and sterility.,2010


감기약도 안 먹는 내가
'시험관 시술'로 아기를 가져야 한다고?

 


 난임 병원 의사 일단 자궁 초음파를 보자고 했다.

"어라?" 그는 놀라면서 내 난소에서 난포가 자라긴 자란다고 말했다. 집으로 돌아와서 인터넷으로 'AMH 0점'을 종일 폭풍 검색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FSH 수치는 신경 쓸 겨를 조차 없었다. 난소기능저하의 여성이 자연임신을 한 희망적인 글만 클릭했다. 


(*FSH: 7화에 설명할 예정)


 며칠 뒤 갑작스러운 하혈을 하기 시작했다. 충격을 컸던 것일까. 다시 난임 병원을 찾아 피가 멈추지 않는다고 말했다. 의사는 "역시.."라고 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의사는 또다시 당장 시험관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난임 병원으로 돌아가지 않고 한의원을 찾았다. 침을 맞고 쑥뜸을 뜨고 한약을 먹었다. 난소기능저하에는 걷기가 좋다 하여 걷는 운동을 했다. 커피와 술을 완전히 끊고 몸을 차게 할 수 있다는 수박조차 먹지 않았다. 쑥, 흑염소, 흑마늘 등 각종 민간요법을 찾았다.

 집에서 가장 가까운 대학병원에 방문하기도 했다. 부정출열 증상과 AMH 수치를 말하니 시험관 시술을 하라는 조언을 받았다. 의사에게 무슨 검사라도 해달라고 부탁하니 돈 낭비하지 말라는 쓴소리를 들었다.


 난저(난소기능저하의 줄임말)에 필요하다는 온갖 영양제들을 몇십만 원어치 구입 밥보다 더 많이 먹어댔다. 그렇게 3개월을 보냈다. 나는 난임에서 도망다니고 있었다.






 내 난임의 시작은 이정해진 난자의 개수를 가지고 태어났을 때부터, 혹은 결혼이 늦어진 시점부터, 아니면 온갖 유난을 떨며 임신 계획에 신중했을 때부터가 아니다. 0점이라는 AMH 수치를 듣고 조기폐경을 진단받은 그 순간은 더더욱 아니다.


  바로 '내가 나의 난임을 인정한 순간'부터이다.

 그렇게 나는 조기폐경을 앞둔 난임 환자가 되었다.


 







매거진의 이전글 #1 난임도 입덧을 해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