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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의미 Mar 08. 2022

우리 정말 제주에 갈 수 있을까?

뭐 하나 쉽게 정해지는 건 없었다.

일은 내가 저질러놓고 수습하는 건 남편이었다. 인터넷에 올라온 정보만으로 숙소를 구해보겠다고 호기롭게 큰소리쳤던 나는 남편 덕분에 위기를 모면했다. 숙소답사 여행을 통해 옥석이 가려졌다. 제주의 서쪽(한림읍)과 동쪽(구좌읍)에서 한 달씩 지내보기로 했다. 숙소는 그가 원하던 바다가 보이는 곳이고, 공간이 분리된 타운하우스 형태였다. 무엇보다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마당이 있었다. 자, 이제 숙소가 정해졌으니 이동수단을 결정하면 된다.      


이동시간만 하루 꼬박 10시간 가까이 걸리는 배를 타고 가기보다는, 비교적 시간이 적게 걸리는 비행기로 가고 싶었다. 제주 두 달살기에 필요한 짐은 차에 실어 차량탁송을 보내고 우리 가족만 간단히 떠나는 계획을 세웠다.     


차량탁송은 업체를 통해 차를 원하는 곳까지 대신 보내어 받는 것이다. 방식은 캐리어탁송, 로드탁송으로 나뉜다. 캐리어탁송은 각각 고객들의 차를 큰 캐리어카에 한번에 싣고 차량 선적하는 곳까지 보내는 방식이다. 캐리어탁송은 로드탁송보다 가격이 비싸지만 비교적 적은 거리를 주행해서 캐리어까지만 가기 때문에 기름값, 키로수, 위험성이 줄어든다.


로드탁송은 기사님이 직접 운전해서 차량 선적하는 곳까지 가는 방식으로 캐리어탁송보다 10만원가량 저렴하지만 기사님이 여수나 목포항까지 차를 운전해서 가는 방식으로 기름값과 키로수 증가를 감수해야 한다. 그리고 주행거리가 길어지기 때문에 혹시 모르는 사고위험도 높아진다.  


머릿속에 제주로 떠나는 코스가 그려졌다. 차에 짐을 꽉꽉 채워 캐리어 탁송을 보내고, 여유롭게 비행기를 타고 제주로 가는 모습을 상상했다. 음, 출발이 좋아!     


“여보, 우리 비행기 예약하자. 차에 짐 실어서 탁송 보내면 제주공항에서 받을 수 있대. 정말 간편하지?” 

스스로 이런 생각과 계획을 한 것에 우쭐한 마음이 들었다. 일이 척척 진행되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예상치 못한 곳에서 복병이 나타났다.     


“싫어. 나 비행기 안 탈래. 나는 배 타고 싶어!”

옆에서 우리 부부의 대화를 듣던 딸이 소리쳤다.     


“뭐라고? 왜 비행기 타기가 싫은데?”

순항하던 배가 높은 파도를 만난 듯 딸의 말에 당황하는 기색을 감출 수 없었다.     


“비행기 무섭단 말이야! 혹시 하늘에서 떨어지면 어떡해?”

울상을 지으며 간절하게 말하는 모습이 사뭇 애절했다.      


“예나야, 우리 그동안 탄 비행기가 몇 번인데~~ 걱정하지 않아도 돼~ 절대 떨어질 일 없어~”

너의 걱정은 하등 쓸데없는 걱정이다는 표정으로 말해줬다. 7살 아이의 반론 하나쯤은 가뿐히 넘길 수 있었다. 하지만 더 큰 장애물은 다른 곳에서 나타났다.     


“나도 예나와 같은 생각이야. 비행기보다는 배가 낫겠어. ” 

남편이 예나 편에 서서 얘기했다.     


‘이 양반이 왜 이래? 내가 세운 완벽한 계획에 왜 찬물을 끼얹는 거야?’

남편은 그저 나의 말에 맞장구치며 딸을 설득하면 될 일이었다.      


“나도 좀 찾아봤는데, 탁송 보내고 비행기 타는 비용보다는 배에 차량 선적하고 우리가족 같이 가는 게 더 저렴하더라고.”

현실적인 그는 그새 비용 계산을 해본 것이다. 나도 안 해본 것은 아니지만, 일단 내 몸 편하게 가는데 얼마 차이 나는 게 대순가 싶어 못본 척 했다. 그런데 어느새 그걸 알아봤는지!    

 

정확한 데이터 앞에 말문이 막혔다. 그래도 10시간 넘게 차 타고 배 타고 가기는 싫었다. 이미 제주 가는 길에 지쳐 뻗을 것 같았다. 내 편이 되어줄 둘째 아이를 바라봤다. 


“예준아, 너는 어때? 비행기 타고 갈래? 배 타고 갈래?”

엄마를 좋아하는 예준이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엄마 편이다.


“나도 비행기가 좋아! 엄마랑 같이 비행기 탈래!”     

2대 2로 나뉘었다. 아빠와 딸은 배, 엄마와 아들은 비행기.


아주 첨예하게 대립했다.

비행기파와 배파로 나뉜 가족은 밥을 먹을 때도, 거실에 앉아서 쉴 때도 서로의 주장을 내세우며 얘기했다. 

“비행기 타고 가는게 더 좋아!”

“아니야, 배 타고 가는게 더 좋아!”     

아직 제주로 출발하기도 전인데, 벌써부터 의견 차이가 심해서 어쩔까나 싶은 생각에 뒷통수가 서늘했다. 과연 제주에 가는 것이 최선인가? 마치 결혼식을 앞둔 신부만큼이나 심란했다.     


“그럼 우리 따로 가자. 가서 만나면 되잖아~”

진심이었다. 선호하는 이동수단으로 가면 될 일 아닌가.     

그러나 최종승자는 남편과 딸이었다.     


챠량에 두달살기 짐을 채워가기에 무리가 있어 차량 위에 루프박스를 달았기 때문이다.

루프박스를 단 이상, 캐리어탁송이 어렵게 되었다. 로드탁송으로 차량을 보낼 바에는 본인이 직접 운전해서 가겠다는 남편의 주장에 따를 수 밖에 없었다.     


9월 20일 새벽 3시. 

모두가 잠든 어스름한 새벽에 4인 가족은 부시럭부시럭 살금살금 움직였다. 야반도주하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사뭇 스릴 넘치는 시간이었다.


차량 위 루프박스부터 트렁크, 좌석 아래까지 짐을 꽉꽉 채우고 시동을 켰다.  

    

잘 있어라. 

나는 간다.     


새벽공기가 이렇게 설레긴 처음이었다.     


#루프박스 : 루프랙 또는 기본바가 설치된 차량 지붕에 설치하며 트렁크 외 적재공간을 확장하기 위한 목적으로 사용함/ 출처:네이버 지식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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