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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안 May 09. 2024

유령은 어떻게 태어나고 영향력을 발휘하는가

헨리크 입센, 『유령』

    『인형의 집』으로 유명한 노르웨이의 극작가 헨리크 입센이 활동했던 19세기는 그야말로 격변의 시대였다. 18세기 중반부터 시작된 산업혁명으로 기술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며 대량생산의 시대가 도래했다. 전통 농경사회는 해체되었고 사람들은 도시로 몰려들었다. 결과적으로 계급과 성 역할은 심화되었으며, 인간은 기계에 밀려 설 자리를 잃었다. 국가 차원에서는 시위의 시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노동자단체가 결성되었고, 서프러제트라 불린 여성 참정권 운동가들이 활발하게 활동했다. 세계적 차원에서는 유럽 열강들의 식민지 쟁탈전이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는 와중에 마르크스는 『자본론』을 발표하며 사회주의 사상을 제시,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을 집필하며 무의식의 영역을 개척했다.

(출처 : 경향신문)

    헨리크 입센은 이 혼란스러운 시대에 유복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유년기에 아버지의 사업이 부도나는 바람에 그는 십 대 때부터 동생들의 학업을 위해 약방에서 도제로 일해야만 했다. 경제적 어려움을 경험했기 때문인지, 그는 작품 내에서 돈과 관련된 문제를 중요하게 다루며 중산층의 사실적인 삶의 모습에 주목했다. 입센의 유명한 희곡,『유령』 또한 노르웨이 서부 시골의 한 중산층 가정을 그 배경으로 한다. 전작인 『인형의 집』에 이어서 입센은 『유령』에서도 당대의 여성들이 겪는 삶을 현실적으로 묘사했는데, 『유령』의 주인공인 알빙 부인은 방탕한 생활을 했던 남편 알빙 대위로 인해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던 것이다.


가출 실패, 그 후의 이야기


    그러나 입센이 작품을 통해 주장하고자 했던 바가 단순히 억압된 여성들의 인권 신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는 본 작품을 통해 가정에 충실하고 남편을 보필할 의무를 강요받는 여성의 삶을 포함, 사회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신랄하게 지적했다. 그가 『유령』을 통해 비판하고자 한 사회의 단면들은 크게 관습적 가치관에 순응하여 살아가는 동시대인의 한계, 그리고 위선과 허례허식이다. 입센의 신랄한 태도는 작품의 주인공이라 할 수 있는 알빙 부인을 중심으로 가장 뚜렷하게 드러난다.

    알빙 부인은 진보적 사상을 담은 책을 즐겨 읽을 뿐 아니라 그녀 스스로도 상당히 진보적인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다. 그녀에게는 어떤 상황에서도 (심지어 남편이 비도덕적이며 매우 방탕한 인물이라 가족들을 고통에 빠트려도) 가정에 충실해야만 한다는 기존의 가치관이 비합리적이라고 판단하기에 충분한 비판적 사고력을 지니고 있다. 그리고 그녀는 실제로 그러한 억압적 의무로부터의 탈출을 시도한다. 그러나 그녀는 관습과 의무를 충실히, 그리고 철저히 복기하는 인물인 맨더스 목사에게 설득당해 다시 가정으로 복귀한다.

(출처 : Critics At Large)

    가출 당시의 상황이 구체적으로 제시되어 있지는 않지만, 부인과 목사가 서로에게 사용하는 호칭으로 미루어 보아 두 사람은 한때 서로에게 애정 내지는 호감이 있었던 관계임이 분명하다. 알빙 부인이 집을 나와 그대로 마을을 떠나지 않고 맨더스 목사를 찾아간 것은 어쩌면 혼자서는 도망칠 용기가 없었고, 따라서 그녀를 도와줄, 혹은 그녀가 옳다고 편들어줄 누군가를 필요로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맨더스 목사는 알빙 부인을 설득하는 데에 성공했고, 따라서 부인은 목사에게 그녀가 가정으로 복귀하게 된 책임을 전가하며, 그로 인해 지금까지도 그를 원망하는 듯이 보인다. 즉, 알빙 부인은 관습과 의무로부터 탈피하고 싶은 욕망은 있었으나 그를 실행에 옮길 용기는 없었고, 따라서 다른 누군가에게 의지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려는 한계를 가진 인물인 것이다. 맨더스 목사의 표현에 따르자면 알빙 부인은 ‘사악한 아집의 지배’ 아래에서 살아왔다. 하지만 입센은 오히려 그녀를 스스로의 욕망이 무엇인지 인지하면서도 그에 충실하지 못했기에 불행할 수밖에 없었던 인물로 묘사한다. 입센은 사회가 개인에게 요구하는 강령보다는 개인의 내면에서 빛을 발하는 목소리에 따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확장되고 재생산되는 죄악


    알빙 부인은 진실한 내면의 소리를 따르지 못했고, 따라서 그녀의 삶은 다시 한번 관습과 의무에 얽매였다. 더 나아가, 그녀는 아들 오스왈드에게 아버지인 알빙 대위의 추악한 진실을 은폐하고, 알빙 대위와 하녀 요한나 사이의 사생아인 레지나를 (그녀가 알빙 대위의 딸임을 철저히 비밀로 한 채) 거둬들인다. 하지만 레지나는 자신의 출생도 모르며 어머니 요한나와 같이 저택의 하녀로 일하고 있기에, 알빙 부인이 그녀를 진심으로 딸처럼 여기며 키운 것은 아니다. 따라서 알빙 부인은 가정을 버리려 했던 과거의 죄책감을 상쇄하고 의무감을 충족시키는 도구로써 레지나를 이용하는 동시에, 그녀를 곁에 둠으로써 자신이 겪었던 고통을 끝없이 상기하며 과거의 망령으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는 것이다.

(출처 : The Seattle Times)

    주어진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은 자신의 욕구를 인지하면서도 그 욕구에 충실하지 못했던 것과는 정반대로 (그리고 일맥상통하게도), 알빙 부인은 완벽한 형태의 가정을 꾸리고자 하면서도 남편의 죄를 진실로 용서한 것은 아니기에 단지 겉치레를 차리는 데 급급하다. 그녀는 아버지의 실체를 부정하고, 우러러볼 만한 허상을 창조해 내 알빙 대위의 실존을 대체함으로써 아들 오스왈드의 정체성을 혼란하게 만든다. 결과적으로 죄의 씨앗을 심은 것은 알빙 대위이지만, 그것을 뽑아내지도, 받아들이지도 못한 채 그 영향을 확산시킨 주체는 알빙 부인이다.

    알빙 부인과는 조금 다른 맥락이지만 맨더스 목사 또한 위선과 허례허식의 굴레에 빠진 인물이다. 그는 타인의 시선에 민감하며 자신의 명성을 중시한다. 표면적으로는 신으로부터 주어진 의무를 따르는 삶의 중요성을 끝없이 제창하면서도, 자신의 과실이 사회적으로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사기꾼 앵스트란드의 비도덕적 사업에 동참하는 모순적 인간이기도 하다. 

    알빙 부인과 맨더스 목사의 이중성을 통해 입센이 시사하고자 하는 바는 분명하다. 입센은 진실을 은폐하는, 혹은 자신의 흠결을 감추기 위해 악행도 마다하지 않는 인간의 위선과 상류층의 허례허식유령이라는 상징에 빗대어 비판하고 있는 것이다. 작품 내에서 알빙 부인이 언급하는 유령은 알빙 대위의 죄, 즉 그것이 초래할 결과 따윈 안중에도 없는 이기적이고 야성적인 욕망을 일컫는다. 작품이 진행됨에 따라 알빙 대위의 원초적인 죄는, 관습으로 회귀하며 진실을 은폐하기로 선택한 알빙 부인의 죄로, 알빙 부인으로 하여금 그러한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게 한 사회적 관습 그 자체로 확장된다. 이 확장은 계속되어 결국 극을 보는 관객들은 한 가지 질문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과연 우리는 올바른 사상을 바탕으로 올바른 선택을 내리며 살아가고 있는가?

(출처 : Operaen)

    결론적으로 입센은 이 작품을 통해 단순히 당시의 사회상을 비판한 것을 넘어, 새로운 가치관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19세기는 앞서 언급했듯이 기술이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어 인간이 기계문명에 의해 소외되고, 계급 간, 성별 간 갈등 등의 사회적 문제들이 대두되던 때였다. 일반적으로 급격한 물질적 발전은 그에 걸맞은 정신적 성숙을 동반하지 못한다. 입센은 이와 같은 시대상을 꿰뚫어 보고, 그간 너무나도 당연하게 수용되었던 사회적 관습에 대한 비판적 검토와 개선이 필요하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도 주목할 필요가 있는 이야기이다. 4차 산업혁명을 겪으며 SF 소설에나 나올 법한 인공지능이 실제로 등장했고, 팬데믹과 그 이후라는 전례 없는 상황은 인류를 다시 한번 격변의 소용돌이 한가운데에 던져놓았다. 이렇듯 혼란스러운 시대를 올바르게 통과하기 위해서는 입센과 같은 예리한 시선을 바탕으로 시류에 맞는 새로운 가치관을 형성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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