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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안 Jul 02. 2024

상냥한 아웃사이더와
다소 낙관적인 비극

프란츠 카프카, 「변신」 

애니메이션 <변신>의 한 장면. 조금 귀여운(?) 것 같기도... (출처 : Open Culture)

1

    그레고르 잠자는 자기 정체성, 혹은 본질의 규명을 전적으로 타인에게 의탁하는 인물이다. 어느 날 갑자기 갑충으로 변해버린 그의 가치를 결정하는 것은 그레고르 자신이 아닌 그 가족. 어느 날 갑자기, 그의 가치는 공중분해될 수 있다. 그러니 본질이란 얼마나 일시적이고 유동적인가. 우리가 실재라 믿는 것들은 대체로 허상에 더 가깝다는 통찰, 그 통찰을 풀어내는 기발한 방식.


2

    카프카의 문학세계를 다루는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중도 하차했지만. 『실종자』와 『성』을 읽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카프카는 이 두 작품을 포함해 자신의 미발표작 전부를 소각해달라는 유언을 남겼는데, 유언 집행자이자 카프카의 절친한 동료였던 막스 브로트는 그 말을 싸그리 무시하고 자신의 소관 하에 있던 원고를 죄다 출판한다. 그리고 나는 생각했다. 브로트 이 자식, 곧 죽을 사람이 자기 문서를 불태워 달라고 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다… 『실종자』와 『성』을 읽으면서 나는 카프카가 상당히 지루하고 음침하고 뒤틀린 인간이라는 인상을 받았으니까. 할 말이 있어도 절대 직접 말하지 않는, 돌리고 돌리고 돌려서 나지막한 암시만 할 것 같은, 그런 갑갑하고 답답하고 속내가 시커먼. 그런데 뭐지? 카프카 자신을 상당히 투영한 것으로 추정되는 그레고르 잠자는 너무나 따뜻하고 선량한 인간인 거다. 「변신」은 너무나 세련되고 재치 있는 우화고. 참고로 「변신」은 카프카 생전에 발표된 작품이다. 그러니까 사람이 자기 문서를 불태워 달라고 하는 데는 (이하 생략)


3

    그레고르가 거치는 퇴행에 대하여 : 언어를 잃는다는 것은 어쩌면 상징계로부터의 방출을 의미한다. 잠자 부자의 관계에서 주체는 늘 아버지다. 폭력적이고 군림하는 아버지와 본성적으로 대립하는 그레고르의 순한 성정은 따라서 이미 아버지-규범 밖으로의 방출, 혹은 탈출을 예고한다. 그렇다면 그레고르의 퇴행과 죽음은 반드시 비극적으로 해석되어야만 하는가?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두 눈을 찌른 뒤에야 부모에 의해 정해진 그의 본질(저주)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제목인 ‘Verwandlung’은 변화, 변형, 장면의 전환 등을 의미하는 중립적인 명사다. 자의로든 타의로든 그레고르가 그에게 무거운 책임을 지우는 가정에서 벗어났다는 것은, 그리하여 그의 의무가 그의 여동생에게로, 여동생의 미래의 남편에게로 전가되었으며, 다소 극단적인 방식일지라도 객체로서의 그레고르가 해방되었다는 사실은, 어쩌면 그레고르 자신에게는 그다지 비관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4

    아무튼 나는 카프카가 조금 좋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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