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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선 Aug 25. 2022

오랜 갈망, 학교를 세우다

홈스쿨 스토리 1

중고등 시절에 별다른 대안이 없어 공립학교에 다니긴 했지만, 지극히 당연한 듯 해오는 모든 관행을 '왜 그래야 할까'라고 생각하고, 납득이 되지 않으면 절대 따르지 않는 학생이었던 나는 여러가지로 학교가 불편했다. 공부를 하고 싶지 않은 것이 아니라 어떤 주제가 재미있으면 더 깊이 연구해보고 싶은데, 학교는 그런 나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45분만에 수업 과목이 바뀌는 것도, 머리카락을 귀밑 3센티미터로 유지해야 하는 것도, 1번부터 5번까지 중에서만 답을 골라야 하는 것도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책읽고 자료찾고 조사해서 발표하는 수업이 가장 재미있었는데 그런 일은 자주 있지 않았고, 그나마도 고등학교에 가니 전무했다.

대학생 때 교직 이수를 하면서도 늘 다른 방법은 없나..를 생각했다. 그래서 모든 레포트는 대안교육에 관한 글을 썼고, 파트타임으로 가르치게 된 학생들을 대상으로 갖가지 실험을 해 보기도 했다. 그때부터 나의 꿈은 학교를 세우는 것이었다.



그렇게 해서 세운 첫 학교는 아들 둘 데리고 집에서 하는 홈스쿨이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아들들은 학교등교를 중단하고 집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교육계에 몸담은지 오랜 몸이라 잘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아들 둘을 데리고 홈스쿨링을 한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였다. 일단 늘 오후에 일을 시작했던 나는 아침 일찍 일어나는 것이 힘들었다. 오전 10시, 해가 중천에 떠있을 시각에도 어른하나와 아이 둘, 개 두마리가 이불위에 너브러져 있는 것이 우리집 풍경이었다. 또한 내향적 성격에 말하기를 귀찮아하는 나는, 아이들에게 친절하게 설명하는 것이 힘들었다. 어떤 상황 발생 이전에 미리 알려주고...그런 일은 거의 없었다.

가장 힘든 것은 세 끼 밥이었다. 돌아서면 밥 할 시각, 뭐 좀 하고나면 배고프다는 아이들... 학교 급식이 얼마나 많은 것을 해결해주고 있었는지 홈스쿨링을 하며 절실히 깨달았다. 누가 밥만 해주어도 홈스쿨링 할 만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홈스쿨은 생각처럼 운영되지 않았다. 학교보다 더 나은 것을 주겠다고 시작한 홈스쿨이었는데, 교장샘이자 엄마인 분의 인격적인 문제가 너무 많이 드러나 그걸 고치느라 집중한 시간이었다.  



나쁘기만 한 건 아니었다. 학교에 가지 않으니, 학교와 세트인 학원도 가지 않아도 되었었다. 남는 시간은 몽땅 책을 읽었다. 아침에 일어나서도 딱히 갈 곳이 없으면 도서관에 갔다. 한 곳만 가면 지겨우니 세 군데의 도서관을 번갈아가며 갔다. 아이들은 도서관 마당에서 보드를 타고 공을 가지고 놀다가 지치면 안으로 들어와 책을 보았다. 처음엔 만화만 보았는데 나중에는 관심사와 관련된 책을 찾아서 보았다.

 

스마트폰, 컴퓨터 등의 미디어 사용은 금지되었다. EBS 교육방송과 영어공부를 위해 보는 몇가지 컨텐츠 외에는 영상시청을 다 금지했다. 중학생인데도 책읽고 내용파악하는 것이 어려운 학생들을 보니 한자를 몰라서 그런 것 같아서 한자공부를 매일 했다. 아이들이 할 때 나도 같이 공부했다. 동네 아이들을 불러모아 함께 한자를 공부했다.


우리집 큰방을 마을의 작은 도서관처럼 만들었다. 아이들과 함께 책을 읽고 글을 쓰고 노래를 불렀다. 공부에 대한 압박 때문에 자기 집에 있는 게 불편한 아이들은 우리집을 아지트처럼 여겼다. 많은 시간 놀고, 많은 시간 공부해도 여전히 시간이 남고 에너지가 남았다. 학교와 학원 스케줄에 치여 사는 아이들과는 다르게, 늘 반짝반짝한 눈빛이었다. 둘째 아들은 동네 강아지들이 산책 나오는 시간을 다 파악하고 있다가 시간에 맞추어 개와 견주를 만나러 나갔다. 가서 상세한 인터뷰를 해오곤 했다. 큰 아이는 근처 마트 안에 있는 드론 매장에 매일 마실을 가서 온갖 종류의 드론을 시운전해보곤 하다가, 주인분과 친분이 생겨 그분의 식사 시간에 대신 가게를 봐 주기도 했다.


내가 원한 홈스쿨의 모습은 조금 밖에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알지 못했던 놀라운 것이  세계 안에 있었다. 아이들의 배움에 대한 욕구가 강렬하다는 것,엄마인 나의 불안과 두려움이  욕구의 발현을 막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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