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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준호 Jul 12. 2024

거미줄에 걸렸다 풀려난 고추잠자리처럼

    매화나뭇가지 끝이 파르르 떨렸다. 빨간 고추잠자리 한 마리가 밤 사이 쳐놓은 거미줄에 걸려 버둥거렸다. 유천은 두 손으로 턱을 고이고 앉아 지켜보았다. 퍼덕이던 잠자리가 그만 한쪽 날개마저 거미줄에 붙어버렸다. 버둥거리던 몸통도 비틀린 채 고정되었다. 머리의 반이 넘는 빨간 고추잠자리의 동그란 눈이 더 커졌다. 그때 똥똥한 배가 몸의 전부 같은 거미 한 마리가 껑충 뛰어 거미줄 가장자리에 나타났다. 그리고 죽은 듯 멈추어 섰다. 드디어 무언가를 분별하고 판단하고 결정을 했나 보다. 그래도 경계심을 늦추지 않은 듯 살금살금 빨간 고추잠자리 곁으로 접근을 했다.   

    유천은 황급히 잠자리를 거미줄에서 떼어냈다. 창공으로 훨훨 날아가길 기대하며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하지만 날아가지를 않았다. '은혜를 갚으려?' 흥부와 제비를 생각하며 조심스레 살폈다. 빨간 고추잠자리 여기저기에 아직도 끈적거리는 거미줄이 묻어 있었다. 유천은 애처로운 마음으로 거미줄을 꼼꼼하게 제거하였다. 그리고 다시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빨간 잠자리는 푸른 하늘로 사뿐히 날아올랐다.        

    은혜 입은 제비가 물고 온 박 씨로 부자나 된 듯, 유천은 높은 곳을 향하듯 가뿐한 마음으로 교실로 갔다. 학우들을 보며 질문이 일었다. '저들은 어떻게 돈독한 신앙을 가졌을까, 수많은 질문의 답을 찾았을까, 신비한 기적을 체험했을까?' 유천은 부러움과 존경심을 가지고 거룩하게 보이는 학우들을 대했다. 유천은 캠퍼스를 들어갈 땐 언제나 옷깃을 여몄다. 그리고 경건한 몸짓과 목소리로 학우들과 어우러지려 했다. 그렇게 소속감을 느끼다 학교를 벗어날 때에야 눌렸던 깊은 숨을 내 쉬며 자유를 누렸다. 

    그런데 점점 소꿉친구들과의 관계는 어색해졌다. 만남에 술이 끼어들어야 비로소 내숭 없는 기쁨과 슬픔과 고민을 나눌 수 있었다. 하지만 속물이 된 듯한 자괴감과 친구들이 뒤에서 수군거릴지도 모른다는 의심에 유천은 점점 외로워졌다. 이후로 유천은 하늘을 바라보는 버릇이 생겼다. 미래에 있을 겉과 속이 같은 경건한 신앙인의 모습을 그리며.  

    아직도 유천은 학우들이 거룩한 목소리로 "전도사님"하고 부를 때면 닭살이 돋았다. 그리고 바늘에 실 따르듯 질문이 일었다. 하나님이 존재하는 것을 확신한다면 이중생활을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아니, 논리적으로 이해할 수만 있어도... 왜 믿어지지 않는 것을 믿어야 구원을 할까, 어떻게 믿어지지 않는 것을 믿을 수 있을까, 믿음이라는 단어를 이해조차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 예수의 이름을 들어보지 못하고 죽은 사람들은 지옥에 갈까 천국에 갈까, 지옥을 보낸다면 하나님을 "공평하다,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까? 답을 얻으면 창공을 날 듯 해 신학교에 입학을 했는데 오히려 회의만 커졌다.     

    때가 되면 답을 주겠지. 그러나 걱정스러운 생각이 또 피어올랐다. 미래의 어느 날, 거룩한 존재가 되면 소꿉친구들과 함께 술 마시며 속 마음을 쏟아내는 즐거움을 포기해야만 할까? 절연을 할 수도 없고, 그들이 먹고 마시며 즐길 때 거룩한 척 분위기를 깨며 홀로 앉아 있기도 그렇고... 지키지 않아도 될 듯한 율법을 겉치레로 지켜야 하는 나는 무엇일까, 오르려는 산이 너무 높아서일까, 마음은 본래 요지경이라서 그럴까? 신앙을 위한 기초 질문도 해결을 못했는데 새로운 환경이 새로운 질문을 또 낳는다. 유천은 무거운 짐처럼 내려앉은 질문들 때문에 기진맥진했다. 그래도 목사가 된다면 힘든 세상을 비교적 편하게 살 수 있을 거라는 계산이 버팀목이 되었다. 속이고 속는 장사를 하지 않아도, 높은 놈들의 비위를 맞추며 비루한 삶을 살지 않아도 된다. 거룩한 일만 하며 먹고사는 직업을 갖기로 한 것이 지혜 중의 지혜라 느껴져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경건의 시간을 인도하는 이철수 교수가 "기도 일기를 쓰라”라고 했다. 일정 기간이 지나면 기도한 것이 모두 이루어진 것을 "일기"가 확인시켜 준다며. '정말일까? 할머니를 살려 달라고 그토록 처절하게 기도했는데.' 유천은 냉정하게 외면당한 아픔이 되살아났다. '기도란 무엇일까,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왜 기도를 하라고만 하지 구체적인 방법을 알려주지를 않는 것일까, 기도에 응답받는 것이 확인되면 저절로 기도할 텐데... 기도를 어렵게 여기는 사람도 물론 없어질 테고.' 그래도 "혹시?" 하며 "기도일기"를 써 보지만 예상이 빗나가지 않았다. 

    박 교수가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하여 설명을 했다. 종말론 강의였다. 전 천년, 후 천년, 무 천년 설이 어떻다는 둥,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을 연결하여 마지막 세상에 대한 일을 들으며 질문이 일었다. '왜? 성경에 관한 수많은 질문들도 해결하지 못하는데 "설과 론"까지 만들어 더 혼돈스럽게 하는 것일까?' 질문하고 싶지만 '믿음 없는 사람이 왜 신학교에 왔냐?'는 시선이 두려워 유천은 한숨만 크게 들이쉬고 내쉬었다. 종말보다 하나님이 현실에 어떻게 개입하시는지, 어떻게 하나님의 존재를 확인하고 그의 사랑 안에서 살 수 있는지 그것을 알려주면 좋겠는데, 죽은 후 어느 날이 될지, 살아서 어느 날이 될지, 알 수 없는 이야기를 땀을 뻘뻘 흘리며 강의하는 교수가 안쓰러웠다.

    신앙의 본질이 해결되지 않았는데 선교학, 전도학은 또 뭘까? 강의를 들으며 금싸라기 같은 시간을 버리는 것 같았다. 내가 경험하고 확실한 데 이르면 자연스레 삶 자체가 전도가 될 텐데, 전략을 가르치고 훈련시켜야 한다면 그것이 순수한 전도일 수 있을까? 신학교에 오면 갈증이 해소될 줄 알았는데, 목마름만 더해져 밤하늘의 별들에게 질문을 했다. '신비 속에 있는 저들은 나의 수많은 질문들의 답을 알까, 가면은 언제나 벗을 수 있을까?'

     논리 없는 학문을 하랴, 가면 쓰고 분위기에 맞추랴, 쌓이는 질문들의 무거운 짐을 진 수고가 시간 감각을 마비시키는 것 같았다. 입학 예배를 드린 지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중간시험 기간이 되었다.

    시험지를 받기 전 모두가 큰소리로 기도를 했다. '무어라 기도를 할까?' 요란한 기도 소리 가운데 유천은  아는 문제 나오게 해 달라고 하려니 얌체 같다는 생각이 들고, 시험 잘 보게 해 달라는 기도를 하는 것은 도둑놈 심보이고, 실력대로 보겠다고 하려니 점수는 잘 받고 싶어 갈등하며 눈을 감고 있었다. 

    호기심이 일었다. '저들은 무어라, 저렇게 뜨겁고 열정적인 기도를 할까?' 은밀한 남의 비밀을 아는 짜릿함과 스릴을 느끼며 쫑긋 귀를 기울이고 들었다. 하지만 내용은 들리지 않고 "주여, 주여"를 반복하는 소리만 들렸다. '내용을 알면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할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쉬워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국가 지도자들과 세계 지도자의 이름이 얼핏 얼핏 들렸다. '시험 보기 전, 왜 국가 지도자들에 대한 기도를 할까?' 질문에 골몰하고 있는데 교실 안이 고요해졌다. 유천은 실눈을 뜨고 주위를 살폈다. 정 교수가 앞에 앉은 사람들에게 시험지를 나누어 주고 있었다.

    머리 위로 들어 올린, 손에서 손으로, 앞자리에서 뒷자리로 시험지가 전달되었다. 서로 얼굴 보는 것이 금기가 된 듯했다. 배달된 시험지를 받아 든 유천은 그것들 중 한 장만 가지고 나머지는 팔만 들어 뒤로 넘겼다. 문제를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았다. 가슴이 먹먹해졌다. 다시 마음을 다 잡고 아래부터 위로 하나하나 읽으며 올라갔다. 확실하게 답을 쓸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시험지가 성경구절 하나도 암기하지 못하는 '날라리 신학생'이라 비웃는 것 같았다. 그에 대한 대응으로 질문을 했다. '암송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논리에도 맞지 않고, 여기서는 이렇게 저기서는 저렇게 이야기해 갈등만 커지게 하는 이야기들을. 학교를 그만둘까? 그러면 대책이 있나? 성직자 될 감이 아닌 것 같은데.'  빈 시험지를 앞에 놓고 갈등하고 있는데 뒤에 앉아있던 기철 전도사가 옆구리를 쿠-욱 찔렀다. 고개를 번쩍 들어 정 교수가 어디에 있는지를 먼저 살폈다. 무언가를 열심히 읽고 있었다.

    얼굴은 시험지를 향하고 눈알은 정교수의 동태를 살피며 팔만 뒤로 뻗어 쪽지를 받아 얼른 시험지 밑에 넣었다. 그리고 다시 고개를 들어 정 교수의 동태를 확인하였다. 여전히 읽기에 집중하고 있었다. 유천은 비로소 숨겨진 쪽지를 꺼냈다. 다행이라는 안도감과 죄책감의 언발란스로 가슴이 두근거리고, 숨은 가빠지고 손이 떨렸다. 머릿속에서는 다투는 생각 때문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써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러나 갈등을 정리하는 시간은 짧았다. 손이 머리의 지시 없이 먼저 일을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유천은 비루해지는 자존심을 무시하고 시험지 빈 공간에 답을 채웠다. 심장은 빨리 뛰고 뒷 머리와 몸이 뜨거워졌다. 결국 '다 이루었다.'는 생각에 큰 숨을 내쉬며 평안해졌다. 그런데 또 질문이 피어올랐다. '쪽지를 주는 것은 사랑일까, 의리일까, 죄를 교사하는 것일까?' 하지만 생존본능이 질문을 외면해 버렸다.  

    여유로워진 유천은 주위를 살폈다. "오픈북 시험"이라 교수가 말한 적이 있었던가? 아리송했다. 시험지만 보고 있을 줄 알았던 친구들이 바빴다. 옆 사람들과 답을 주고받는 이들, 책을 열어 책장을 넘기는 이들, 혼돈스럽다... 상심되다... 위로를 받다... 초라해지다... 질문이 일었다. '시험 보기 전 저들은 무어라 기도 했을까, 교수가 시험 감독하지 않는 것이 은혜를 베푸는 것일까,  직무를 유기하는 것일까?' '무의미한 시간들'이라는 생각이 유천을 허탈하게 했다.

    시험이 끝나고 유천은 학우들의 얼굴을 대하기가 민망스러웠다. 하지만 교실 안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평소와 비슷했다. 분위기를 새김질하고 적응하느라 기운이 소진되어 유천은 피곤을 느꼈다. '본래 인간은 생존을 위해 연극하는 존재인 것일까, 은혜가 뻔뻔스럽게 만든 것일까, 복음을 위해 법 따위는 무시해도 된다고 믿는 것일까, 시험 점수가 내 인생에 무얼까, 암기가 신앙을 가늠하는 척도가 되는 것일까, 신학과 신앙의 관계는 무얼까?'  유천은 공동체에 머물러야 있어야 할지 말지 고민이 싹트기 시작했다. 하지만 할머니의 얼굴을 떠올리자 고민은 곧 사라져 버렸다. 

    전도사들이 나누는 이야기에 귀를 쫑긋하며 부러움과 답답함이 함께 일었다. 대형 교회 전도사들이 담임 목사의 돈 씀씀이와 카리스마 있는 리더십을 위인전의 에피소드를 이야기하듯 자랑했다. 유천은 침을 꿀꺽 삼켰다. 더러는 하나님이 주시는 능력을 직접 받는 길을 택하여 산으로 가고,  더러는 능력 있는 큰 교회 목사에게 충성하는 이야기를 들으며 유천은 한편으론 부럽고, 한편으론 무시하는 마음이 일었다. 그리고 '인간의 이성으로는 당신을 만날 수 없는 건가요, 그렇다면 꿈이라도 보여 주어야 하는 것 아니에요,  40일 금식 기도하기를 바라는 건가요?' 질문을 했다. 하지만 언제나 그랬듯 하나님은 침묵으로 일관할 뿐이었다. 오히려 반항심이 일어 학교를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런데 그래도 세상의 어떤 일보다 목회가 쉬운 일일 것 같은 마음에 갈등을 잠재웠다.  이런 일이 반복되고 또 반복되며 세월이 흘러 아직 졸업해서는 안 될 것 같았음에도 졸업을 앞두게 되었다.

    유천은 학우들의 미래를 향한 구체적인 계획들을 들으며 사막에 내팽개쳐진 듯 외로움을 느꼈다. 명당자리의 건물을 빌리곤 교회 개척을 준비하는 이들, 더 좋은 커리어를 위해 대학원 진학을 준비하는 이들,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려 금식 기도를 시작한 이들, 대형 교회 목사들에게 노하우를 배우고 도움을 받기 위해 인맥을 찾아 나선 이들. 다양한 전략들을 들으며 울적해지는 유천에게 한 황망한 소식이 들렸다. "40일 금식 기도 하던 교우가 35일째 되는 날 쓰러져 병원에 실려 갔다"는... 목회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하나님의 능력을 받으려 금식 기도를 한 것일 텐데 어떻게 그런 일이... 더러는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줄 것을 믿었지만 유천은 회의와 함께 아픔을 느꼈다. 

    '질문의 답을 하나도 얻지 못했는데 졸업이라니... 친구들은 자신감과 사명감에 넘쳐 일터로 나갈 준비를 하는데 난 왜 아직도 이렇게 방황하고 있을까?' 낭떠러지 위에 선 듯 난감해할 때 김 교수가 시간 될 때 사무실로 오라고 넌지시 이야기했다.  

    유천이 김 교수 사무실 문을 노크했다.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들어오세요."

김 교수가 일어나 소파를 가리키며 "앉으세요." 했다. 소파에 앉은 유천을 바라보며 "진로가 결정되었어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유천이 큰 숨을 들여 쉬었다 내 쉬며  "막막하네요. 신학교를 다니면 질문들이 해결될 줄 알았는데, 갈증만 더해졌어요. 이런 상태로 목회를 할 수는 없고, 사회로 나가려니 자본도 실력도 없고, 4년의 공백이 먹고사는 문제를 오히려 어렵게 만들었어요." 했다. 안쓰러운 눈으로 유천을 바라보며 김 교수가 "그런 것 같아서 만나고 싶었어요." 했다.   

"감사합니다. 답답했어요, 믿음 없는 내가 한심스럽고, 그렇다고 눈 찔끔 감고 목회를 하려니 사기꾼 되는 것 같고,  능력을 얻기 위해 금식기도를 해볼까 싶어도 쓰러진 친구가 '아니야' 소리치는 것 같고.” 

유천은 계속 말을 이었다.

"큰 교회에 들어가 목회를 배우는 것도 어려울 것 같았어요. 학교에서도 적응을 못하는데 목회 현장에서는 더더욱..."

잠시 침묵이 흐른 뒤 김 교수가 "질문에 답을 얻으려고 학교에 들어왔으면 어떻게든 답을 들어야 하는 것 아니에요? 의문이 풀리는 날 가면도 벗고 생명 있는 존재로 가치 있는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 아닐까요?"

"네, 그렇기는 하지만 지금은 혼돈스럽고 용기마저 사라졌어요. 그런데 내 마음을 어떻게 그렇게 아세요?"

"상식을 기초로 공감하는 사람들은 말하지 않아도 마주하는 시간이 길면 길 수록 서로를 잘 알게 되는 것 같아요. 표정과 행동 하나하나가 언어가 되어 정들게 하면서."

"진학하라는 말씀인 것 같은데 더 이상은 신학교에 머무를 자신이 없어요. 그렇게 해서 해결될 일이 아닌 듯해요. 전공하고 싶은 분야도 없고. 허송세월을 보낸 4년처럼 대학원 3년도 그렇게 낭비하고  싶지 않아요. 어쩌면 간단하게 해결될 것도 같은데..."

"그 간단한 방법이 뭐예요?"

"하나님이 콧김만 한번 불어넣어 주시면 될 일이긴 한데... 성경이 일점일획도 틀림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어지게 하든지,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고 확신이 들게 하든지, 둘 중의 하나만 되어도 방황하지 않고 진로를 바로 결정을 할 텐데... 대학원을 간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지 않아요? 학자가 되려는 것도 아니고, 전공하고 싶은 분야도 특별히 없고, 생명력 있는 신앙인으로 살고 싶을 뿐인데..."

"마음껏 질문하고 토론할 수 있는 학교를 찾는다면...?"

"그런 학교가 있을까요? 교단의 교리를 주입하든지, 믿으라고 강요하든지 할 텐데, 신학교는 그럴 수밖에 없는 것 아니에요?"

"그래도 다른 길이 없다면 찾아야 하는 것 아니에요? 그것이 구하고 찾는 일이고, 그러다 보면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것을 경험하게 되는 것 아닐까요?  그것이 하나님을 만나는 일이고...  신학교들 앞으로 편지를 보내 보세요. 전도사님의 사정과 원하는 것들을 자세하게 적어서."

    유천은 신학교들에 지금까지의 삶의 과정과 신앙의 갈등을 자세히 적어 "귀교에서는 나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느냐?" 편지를 보냈다. 한 학교에서 답장이 왔다. "당신을 만족시킬 수 있을 것 같다"며, 당신처럼 질문과 갈등을 가진 이들을 우리는 찾고 있다."고 적혀 있고 추신에 "공부하는 동안의 학비 모두를 지원하겠다"라고 쓰여 있었다.

    마음껏 질문할 수 있고 토론할 수 있다는 말에 유천은 막힌 속이 뚫리는 듯 시원했다. 하나님이 마음으로만 했던 기도에 응답하신 것처럼 느꼈다.


     유천은 입학 수속을 마치고 개강 후 첫 강의실에 들어갔다. 수염을 기른 교수가  "이곳은 학문을 하는 곳입니다. 질문과 생각을 마음껏 나누고 다름을 존중해 주며 공감되는 곳으로 따라가며 진리를 찾아가는 곳입니다. 교수가 가르치는 것을 따르지 않아도 되고, 하나님이 없다고 이야기해도 된다."고 학교 소개를 했다. 유천은 이상한 나라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이해되지 않는 신앙에 관한 것들을 질문하고 답을 얻기 위해 학교를 왔는데 하나님이 없다고 해도 괜찮다고? 그것도 신학교에서...' 유천은 한숨을 쉬었다.

    교수가 유천의 고민을 아는 듯 "아마도 질문하고 싶은 것이 많을 거예요. 그러나 강의를 먼저 듣고, 그다음에 주장을 이야기하고 서로 논리적으로 대화를 진전시키는 거예요. 교수 주장이 이치에 맞으면 교수의 주장을 따르고, 당신들 주장이 맞으면 교수가 당신들을 따를 거예요. 하나님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말이 맞으면 그 말에 따르고, 하나님이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말이 맞을 경우 그 말에 따르면 서로가 진리에 접근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럴 때 우리는 공감하는 즐거움을 누리게 될 것이고, 다름을 이해하며 생각과 지식의 폭을 넓히게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유천은 하늘을 날 듯 흥분되어 무언가 표현을 해야만 할 것 같았다. 

"공감되는 논리를 따라가면 되는 건가요, 그러며 진리의 하나님을 만날 수 있다는 건가요?"

"그것을 위해 이 학교는 존재하는 거예요."

"그러다 공감을 오해해서 엉뚱한 길로 가버리면 어떻게 해요?"

"물론 엉뚱한 길로 가는 경우도 있을 거예요. 우리는 한계 있는 인간들이기 때문에. 하지만 정직하게 논리와 공감을 따라가다 보면 비틀거리기는 하겠지만 결국은 하나 되어 웃을 수 있는 자리에 이를 겁니다. 그러기 위해 이 학교가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공감되는 부분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을 때도 있을 텐데요."   

"맞아요. 그럴 때 다름을 이해하고 생각의 폭을 넓히게 되지요. 저마다 다른 생각을 해 헤어진 사람들이 새로운 깨달음으로 만나 새로운 친밀함의 기쁨을 누리면서요. 그것이 논리적 소통을 신뢰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선물 아닐까요?"

    유천은 하루하루의 생활에서 이전에는 없던 생명의 기운을 느꼈다. 어떤 생각이든 표현하는 즐거움, 남의 주장을 듣고 이해하고 공감하며 생각과 지식의 폭을 넓히며 자유의 가치를 누렸다.   

     새 학기가 시작된 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학기말 시험 기간이 되었다. 유천은 역사 시험 범위 안에 있는 사건들의 내용과 이름 지명 연도 날짜까지 밤새워 암기하여 8절지의 답안지에 빽빽하게 적었다. A+ 를 받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한 주 후 학생들을 한 명 한 명 호명할 때 '유천'이라는 소리를 듣고 교수 앞으로 나가는 순간을 상상하니 날아갈 것만 같았다. '미소를 지으며 채점한 시험지를 건네주는 교수와 눈 맞춤하는 순간 얼마나 짜릿할까!' 스스로 날라리 신학생이라 여기고 주눅 들어 살던 유천은 자존감을 회복할 기대에 뛰는 가슴으로 답안지를 교수에게 제출하고 팔자걸음으로 교실을 나왔다.

    평상시보다 더디게 한주가 지나고, 잠까지 설친 밤도 지나고, 드디어 역사 시간이 왔다. 교수가 채점한 시험지를 들고 몇 명의 이름을 부르더니 '유천'을 호명했다. 유천은 들뜬 마음으로 교수에게 미소를 보내며 앞으로 나갔다. A+가 빨간 색연필로 기록된 시험지를 받아들일 것을 기대하고 교수가 건네는 종이를 봤다.

    순간 유천은 망치로 머리를 맞은 듯 띠-잉 했다. 어지러움을 느꼈다. 눈을 감았다 비벼 뜨곤 시험지에 쓰인 빨간색 글씨를 다시 확인했다. F였다. 따지고 싶은 충동으로 들썩이는 입술을 힘겹게 꾹 누르고 시험지에서 눈을 떼지 못한 채 자리에 돌아와 앉았다. 몸이 떨렸다. 교수님의 강의가 한마디도 들리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걸까?' 억울함 때문인지 수업시간이 하루 종일인 것처럼 느껴졌다. '무슨 착오가 있었겠지. 세상에는 오류가 항상 있으니...' 스스로를 위로하며 강의 시간 끝나기를 힘겨운 인내력으로 기다렸다.

    드디어 수업이 끝났다. 유천은 사무실로 돌아가는 교수를 따라나섰다. 교수가 사무실 책상에 앉자마자 시험지를 내놓으며 "시험 점수가 이해가 안 돼요." 떨리는 목소리를 진정시키고 말했다. 홍 교수는 짜증스러운 표정으로 유천을 바라보며  "F 가 맞아요." 쌀쌀맞게 반응했다.

"F를 이해할 수 없어요."  

"왜 베껴 썼어요?"

유천은 비로소 A가 F 된 이유를 알았다. 헛웃음을 웃으며 "베껴 쓰지 않았어요.  밤새도록 외워 쓴 거예요." 이해했을 거라는 안도감으로 여유롭게 교수를 바라보았다. 하지만 홍교수는 의외의 반응을 보였다.

"책에 다 있는 것을 왜 밤새워 암기를 해요!  며칠 지나면 다 잊어버릴걸... " 유천은 홍교수의 눈빛에서 '사건 암기를 많이 하여 머리 좋다는 것을 과시하려고?, 성적을 좋게 하여 당신 몸값 높이는 데 사용하려고?,  그래서 돈과 권력과 명예를 한꺼번에 얻는 대형 교회의 담임 목사가 되려고?' 라며 비아냥거리는 눈초리를 느꼈다.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오른 유천은 "그러면 암기하지 않고 어떻게, 무엇을 써야 합니까?" 공격적인 목소리로 항의했다.

"모든 역사의 사건 속에는 진리가 숨어 있어요. 그 진리를 깨닫고 깨달은 진리를 현재의 삶에 적용하여 지난 과거보다 풍성한 삶을 살게 하는 것이 내가 역사를 강의하는 목적이에요. 그래서 난 모든 사건들 속에서 진리를 찾아내는 훈련을 학생들에게 시키고 있어요. 그리고 서로 다르게 이해한 진리를 나누며 생각의 폭을 넓혀 더욱 깊고 오묘한 진리에 다가가게 하고 있어요. 그래야 새롭고 다양하게 펼쳐지는 환경에 진리를 대입하며 더 나은 미래를 만들 수 있으니까요. 개인의 삶에서, 성경에서, 모든 역사 속에 숨어 있는 진리를 볼 줄 알아야 빛 안에 사는 신앙인이 되는 것이고,  이러한 신앙인이 된 목사가 성도들에게 설교도, 상담도 할 수 있는 것 아니에요? 그래서 문제로 제시한 사건에서 당신이 깨달은 진리를 시험지 빈 공간에 채우기를 원했어요. 그런데 당신은 사건만 암기하여 책에 있는 것을 그대로 옮겨 적기만 했어요. 사건 속에 있는 진리를 찾을 생각은 하나도 하지를 않고... 그러니 당연히 F를 줄 수밖에!" 홍 교수의 얼굴이 붉어졌다. 

   유천은 어안이 벙벙해진 채 내면에서 자신을 설득하는 소리를 들었다. 

'너는 성경 안에 있는 수많은 사건을 암기하며 갈등했잖아. 믿어지지 않는 것이 믿음이라 생각하면서. 그래서 멍청이가 되어야 좋은 신앙인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힘들어했잖아. 그래서 신비한 것을 체험하려고 열심히 기도했고, 그러나 기도에 응답이 없어 방황을 했고. 그리고 예수의 이름을 부르기만 하면 구원받는다는 것이 이해할 수 없고 믿기지 않아 힘겨워했잖아. 왜 예수가 생명인지, 진리인지, 길인지, 빛인지, 목자인지, 이해하려고는 하지도 않고.'

    홍 교수가 차분하게 "원시시대의 신앙은 감정에 의존하는 것이었어요. 이해할 수 없는 두려운 일들이 너무 많은 세상이었기에 절대자일 듯한 상을 설정해 놓게 되었지요. 신에게 의지하며 불안을 해소하고, 소원하는 바를 빌었지요. 그리고 절대자가 원하는 것처럼 여겨지는 예배를 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윤리 도덕을 지키는 일을 했지요. 그러나 절대자를 믿는 일이 쉽지 않았어요. 이성이 방해를 했던 거지요. 감정을 뜨겁게 하려 함께 춤추고 노래하고 북을 치고 예식을 하면서 애를 썼지만.  그러는 동안 더러는 감정에 의한 신비한 체험을 하고, 위로받고 용기를 얻으며 상한 마음이 치료되기도 했어요. 그러며 훌륭한 신앙을 가진 사람은 신비한 능력을 가지고 윤리와 도덕을 지키는 수준이 일반인들보다 높다고 믿게 되었지요. 그리고 이 지위에 오른 사람들은 선택을 받았고, 보통사람들이 할 수 없는 극기의 훈련이든 무언가를 했다고 여기게 됐어요. 그 결과로 종교 지도자들이 권위를 가지게 되었고 이따금 부수적으로 따라오는 부와 명예와 권력을 누리곤 했지요. 그러나 이런 일이 반복되며 진리 없이 감정에만 치우친 신앙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이성의 눈이 가려져 오히려 속고, 사실을 왜곡하며 어리석은 판단을 하게 됐어요. 이때 거짓 종교지도자들은 감정에 매인 신앙을 이용하며 사기 치고, 도둑질하고, 강도질도 했지요. 종교가 사회를 혼란스럽게 한 거예요. 그러는 동안 당신은 갈등하며 여기까지 흘러 온 것이고..." 이야기했다.

     고요한 침묵이 흘렀다. 잠시 잠잠하게 있던 홍 교수가 "성경에는 용서하라는 말도 있고, 죄지은 자를 죽이라는 이야기도 있어요. 주라는 말도 있고 주지 말라는 말도 있어요. 이렇게 상반된 이야기들을 많은 목사들이 자신에 유리하게 해석하며 교회와 성경의 권위를 추락시키고 있어요. 이를 누군가는 바로 잡아야 하는 것 아니에요? 이것이 안 되니 화평케 해야 할 종교가 오히려 갈등과 전쟁을 일으키고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것 아니에요? 종교는 '아편'이라는 말까지 듣고..." 홍 교수가 속 상한 듯 말끝을 흐렸다.

      유천은 거미줄에 걸려 허우적거리던 빨간 고추잠자리가 떠올랐다. 그 고추잠자리가 선물을 가지고 온 것 같았다. 어둠에서 빛으로 나온 듯 머릿속이 깨끗하고 시원해졌다.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보복하라는 말씀과 "오른쪽 뺨을 때리면 왼쪽 뺨도 내어 놓으라"는 말씀 중 어느 말씀이 맞아요? 질문하는 대신 용서할 것인가, 기다려 줄 것인가, 희생해 줄 것인가, 정죄하고 매를 들 것인가? 밝은 빛 안에서 분별하고 판단하여 어느 것을 적용할 것인지 결정하여 악을 선으로 이기며 삶의 가치를 높일 꿈에 가슴이 부풀었다. 때로는 극복하고, 때로는 인내하며, 때로는 버리고, 때로는 상상하고 창의력을 발휘하며 더 풍성한 삶이 되게 할 기대에 유천은 해맑은 웃음을 웃었다.   

    홍 교수가 따뜻한 목소리로  "세상모든 것에 존재하는 진리를 찾는 것이 결국 하나님의 음성 듣는 일이에요. 깨달은 진리를 삶에 적용하며 가치 있는 삶, 풍성한 삶을 만들면 사회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는 거 아니에요? 이러한 사람들이 미래를 예언도 할 수도 있고, 아름답게 설계할 수도 있는 것 아니에요?  그런데 무지하고 욕심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려는 하지 않고, 신비하게 환상으로 보고 듣고, 하나님의 전지전능한 능력을 공짜로 얻어 출세하고 돈 벌어 편히 살려고 하니 세상이 종교로 인해 망하게 되는 것이지요. 이러한 기적을 바라고 하나님의 능력만을 구하는 거지 근성과 노예근성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에 주인이 되고 있으니 교회가 쇠하게 되는 것 아니에요?" 했다.

        유천은 홍 교수의 사무실을 나오며 숨쉬기처럼 쉬운 신앙을 중력의 근원을 푸는 일처럼 어려워했던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았다. 주어진 현실이 진리에 따라 이루어진 결과임을 고백하라고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기도를 가르치시는데, 주문인양 외우며 못된 것을 물리치려 한 멍청한 머리를 좌우로 흔들어 정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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