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치원 도시재생 청년 서포터즈와 함께한_ brunch 작가(유승민)
훗날 당신이 기억할 세 글자
5년 동안 요넥스 패널단 활동을 해왔다. 요넥스는 배드민턴 브랜드. 패널단이란 서포터즈를 뜻한다. 신상품을 소개하는 자리, 세계선수권 대회, 장애인배드민턴대회 봉사활동 같은 오프라인 행사에 참여하거나 라켓, 가방, 의류를 제공받아 후기를 적는 식이다. 배드민턴 세계에 첫발을 내딛은 건 2016년. 그 이듬해부터 시작했으니 패널단 활동은 내가 걸어온 배드민턴의 역사를 줄곧 함께해온 셈이다.
배드민턴 친다고 하면 어디 산골짜기 공원 흙바닥에서 즐기는 가벼운 운동이란 인식이 있다. 레슨을 받는다고 하면 “배드민턴도 레슨을 받아요?” 되묻는 사람도 많다. 표면에 드러나지 않았지만, 국내 배드민턴 동호회 문화는 생활체육으로써 제법 탄탄하게 자리 잡혀있다.
기업과 기관이 주최하는 전국대회부터 도, 시 단위로 열리는 대회, 자치구에서 여는 승급대회까지. 수백 개 단위로 크고 작은 대회가 주말마다 열린다. 대회 날이면 꼭두새벽부터 체육관 옆에 천막을 세운다. 국도 끓이고, 밥도 짓고, 반주로 겸할 막걸리들도 줄줄이 장만한다. 누구네 갓김치가 맛있다더라, 누구네 진미채가 안주로 딱이더라, 오일장이라도 열릴 것 같은 분위기다. 밥을 같이 먹어야 식구(食口)라던데, 대회 날만큼은 지역주민들이 한 식구가 되니 소소하고 정겨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5년.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세월을 보내며 그만두고 싶다는 충동은 나에게도 여러 번 찾아왔다.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슬럼프, 구력자들 사이 오가는 눈치싸움, 민낯처럼 드러나는 승부욕, 실력으로 갈리는 대인관계까지. 꾸준함을 유지한다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위기가 찾아올 때마다 유일한 버팀목이 되어준 건 바로 서포터즈 활동이었다. 물건을 받았으니 운동은 가야 하고, 후기를 써야하니 꾸역꾸역 출석도장을 찍어야 했다. 반강제적으로 임했던 시간들은 지나고 보니 굳건한 마중물이 되어주었다. 배드민턴이라는 매개체 하나로 내겐 또다른 세상이 열린 셈이다.
조치원 도시재생사업으로 대학생 서포터즈가 활동한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내심 반가웠던 까닭이다. ‘그들이 서포터즈로 나서게 된 진짜 이유’가 궁금했다. 대학생들에게 이 활동은 어떤 기억으로 남을까, 무엇을 얻어갈까. 스스로 생각해볼 수 있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 부디 이력서에 한 줄 적고 끝날 시간이 아니길 바랐다.
“고향이 세종시라 오래 살아온 동네인 만큼 주민의 입장에서 도움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홈플러스나 대형마트가 생기면서 어렸을 때 다녔던 재래시장이랑 비교해보았는데요. 사실 전통시장은 그 자체로 매력이기 때문에 이걸 현대식으로 바꾸기 보단 그 매력을 최대한 살리는 게 맞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전공이 관광개발이다 보니 사회적 가치에 대해 고민을 하게 됐고, 도시재생은 그런 면에서 가장 매력을 느꼈던 포인트였어요.”
"농대생이라 평소 농업과 환경에 관심이 많은데요. 평소 지역 간의 불균형 문제에도 관심을 두고 있던 터라 지원했어요. 도시재생은 전 인류가 안고 있는 문제라고 생각해요. 활동적으로 나서보고 싶었어요."
‘대외활동을 해야 해서 지원했다’는 답변이 나오면 어떻게 반응하지, 고민했던 스스로가 부끄러울 정도로 학생들은 야무지고, 다부졌다. 내가 가늠할 수 있는 그 이상의 의미를 그들은 바라보고 있었다. 재래시장을 타겟으로 잡은 친구들과 내가 같은 팀으로 엮인 것부터가 기분 좋은 출발이기도 했다.
어디로 여행을 가든 가장 먼저 로컬 시장을 찾는 습관이 있다. 그 지역 고유의 독특함을 발견하는 데 흥미를 느낀다. 유명하다고 소문난 식당을 찾아가기보단 맛있어 보이는 토속음식점을 들어간다. 그렇게 발견한 식당이 마음에 들면 블로그에 기록하고, 지인들에게 소개한다. 그때 그집 가봤는데 맛있더라, 화답해오면 희열을 느낀다. 경상도 말과 전라도 말이 어우러진 화개장터, 어미 젖을 갓 뗀 진돗개 새끼들이 우리 안에 올망졸망 모인 진도 오일장, 연령대가 고루 섞여 시너지를 낸 뒤로 마포구 대표 관광지로 자리매김한 망원시장. 지역 특산품은 물론이요 그 지역의 사투리, 인정미, 활기까지 덤으로 따라오는 특유의 분위기는 그 어떤 대단한 프렌차이즈도 흉내낼 수 없는 매력을 지닌다.
"옛날부터 국가, 마을 발달의 장 역할을 해온 곳이 재래시장이잖아요. 잘 주무르면 다시 일으킬 수 있지 않을까요. 특히 조치원 전통시장은 역사와 시간이 가장 오랫동안 담겨있는 장소라서 생각할 거리가 많아 보였어요."
“전통시장은 더 이상 고령층만 방문하는 곳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젊은 층의 유입도 필요한 시대가 왔죠. 연령대가 고루 어우러지면 활기도 생기도 더해지지 않을까요. 야시장이나 플리마켓처럼 젊은 층을 유입할 수 있는 아이디어를 고민하고 싶었어요.”
"방문해보니 생각보다 활발하지 않아서 놀랐어요. 재래시장도 동네마다 활기가 다르잖아요. 어떻게 하면 그 격차를 좁힐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선택하게 됐습니다."
조치원 도시재생사업에 왜 대학생의 시선이 필요할까, 라는 내 안의 의문점도 대화를 나누다 보니 서서히 풀려갔다. MZ세대인 이들이 생각하는 스스로의 장점은 무엇일까. 미디어에 익숙하고, 트렌드에 민감하다는 답변들도 많았지만, 그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대학생은 자가용이 없으니 교통편 이용이 제한적’이라는 한 친구의 대답이었다. 재래시장 인근에 주차공간을 확보해야겠다는 관점으로만 바라봤지, 자차가 없는 이들은 교통편이 제한된다는 걸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관광지로 자리매김하려면 누구나 대중교통으로 편하게 갈 수 있어야 한다’는 뜻이었으리라. 실제 현장을 답사해보니 교통편이 잘 조성되지 않아 접근성이 떨어진다는 의견들이 많았다.
“생선 씻은 물이 바닥으로 흘러내린다던가. 상자 하나 깔아놓고 채소를 올려 판다던가. 오토바이가 좁은 길로 자주 오간다는 점이 행인 입장에선 조금 불편했어요.”
"재래시장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에 비해 화장실이 깔끔했던 점이 기억에 남아요. 여성들을 위한 몰래카메라 탐지기도 있어서 좋았고요. 보통 재래시장은 대표적인 먹거리를 찾으러 가는 경향이 있는데, 생각보다 프렌차이즈 가게가 많아서 고유한 먹거리가 없다는 점이 조금 아쉬웠어요.”
“가게들이 업종별로 분류되어있는 게 아니다보니 옷가게 옆에 채소가게가 있는 식이라 찾아다니기 조금 불편했어요. 처음 방문하는 사람이라면 뭐가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를 것 같고요.”
"상인하고 방문객이 가격 흥정도 하고 이런저런 소통하는 모습들이 재래시장의 매력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코로나시대인 걸 감안해도 조치원 시장에선 그런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어요.”
"퀄리티나 가격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소비자라면 대형마트와 재래시장 둘 다 간다고 생각하는데요. 어디까지나 주민에 한정된 이야기이고, 외부인 방문객이라면 그마저도 쉽지 않을 것 같아요. 보통 우리가 어디 식당 가려고 할 때 네이버나 다음 별점 리뷰를 보고 가잖아요. 그런 정보들이 전무해서 좀 활성화시키면 좋지 않겠나…….”
"교통편이 조금 애매했고, 역 근처이다 보니까 노숙자도 많아서 치안 문제가 해결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죠.”
"재래시장 찾아가서 상인들이랑 대화를 많이 나눠봤는데요. 정이 넘쳤어요. 사소한 부분이긴 하지만, 대형 마트에선 찾아볼 수 없는 장점이라고 생각해요. 가게들이 획일화되어있다는 느낌이 들어서 좀 더 다양성을 어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지역에 놀러가면 그 지역의 특산품을 찾게 되는데요. 여행을 가더라도 거기 뭐가 맛있다더라, 하면서 다니게 되잖아요. 조치원은 복숭아가 특산물인데 딱히 재래시장에선 그 흔적을 찾을 수 없었던 점이 아쉬웠어요.”
"세종시는 한반도의 중심이라고 생각해요. 서울과 부산의 중간지점. 어느 지역에서든 하루 만에 다녀올 수 있다는 장점이 있는데, 위치적인 장점은 뛰어나지만 특색 있는 먹거리가 없어서 아쉬워요.”
"답사가서 상인분들과 만나뵙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졌어요. 오랫동안 일해오신 분들이 많아서 가게에 대한 자부심이 많으시더라고요. 단골도 많고. 다만 거주민은 알아서 찾아갈 수 있지만, 젊은 층에겐 홍보가 덜 된 느낌이었어요.”
100인 100색이었다. 세종시가 한반도의 중심지라는 발상도 신선했다. 재래시장에서 흔히 오가는 흥정소리가 이 친구들에게도 매력으로 다가간다는 이야기는 새삼 반갑고 뭉클했던 건 왜인지. 이곳저곳을 누비며 상인들을 붙잡고 이것저것 물어봤을 눈동자들이 눈에 선했다.
무엇보다 조치원역에 단 한 번도 내려본 적 없는 내 머릿속에 조치원의 구시가지가, 골목골목 낮은 담벼락들이, 조금은 낙후했지만 나름의 옛스러운 매력을 담은 동네길이, 선명하게 그려진다는 점이 신비로웠다. 학생들이 생생하게 전달해준 덕분이었다. 오래됐으니 모조리 바꿔버리자, 는 관점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살려 조치원만의 매력을 발산하자, 던 발상의 전환. 마지막으로 회의를 가졌던 친구들은 유독 적극적이라 좀 오래 기억에 남았는데, 그중 한 친구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손을 대지 않은 자원이 많다는 건 가능성도 그만큼 많다는 뜻 아닐까요.”
조치원에 숨겨진 가능성을 섬세한 눈길로 잘 찾아내 주리라 믿는다. 매년 수많은 학생들이 애정을 담아 가꾸어 가는 도시. 조치원의 미래는 밝을 수밖에 없다. 요넥스가 여전히 내게 최고인 이유는 브랜드의 퀄리티가 아닌 브랜드와의 추억이 잔존해서다. 훗날 이 친구들이 직장을 얻고, 가정을 꾸리고, 살아갈 어느 시점에. 또다시 조치원이란 세 글자와 마주한다면 그 이름은 값지고 귀한 추억을 담고 있기를. (유승민)
조치원 도시재생 청년 서포터즈 7기 X brunch작가
*본 발행물은 조치원 도시재생 청년 서포터즈 7기와의 협업을 기반으로 작성한 도시재생 에세이입니다.
브런치 작가 고유의 시선으로 바라본 조치원과 서포터즈 활동기, 많은 관심 바랍니다.
- 주관 : 조치원 도시재생뉴딜 현장지원센터
- 참여 : 조치원 도시재생 청년 서포터즈https://brunch.co.kr/@alohaseyo
- 작가 : 유승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