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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지서강 Mar 12. 2021

멋진 신세계

교지서강 79&80 통합호 여는 글

    얼마 전만 하더라도 이 글을 쓰고 있는 장소가 씁쓸한 커피 한 잔을 시켜 놓고 조용한 노래를 감상할 수 있는 카페였을 겁니다. 코로나 판데믹이라는 특수한 상황은 2020년을 휩쓸었고 우리는 그에 끌려 다니기 바빴던 것 같습니다. 카페에서 글을 쓰고 사람들과 어울리며 한강을 걷고 술집에 모이던 모습은 멀어져만 갔고, 사람들은 홀로 커피를 수 백 번 휘저어 달고나 커피를 만들어 먹거나 수입 맥주 4캔을 사 들고 방안에서 OTT 서비스의 동영상 컨텐츠들을 즐겼습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는 자신들이 방안에서 즐기는 공통 관심사를 통해 이어졌으며, 면대면으로 시작되는 관계의 중요성이 이전만큼의 권위를 지니지 못하게 됐죠.


    어느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2020년은 교지에게도 가혹한 한 해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초기에 기획했던 많은 기사들이 무산되었고, 학교에 오지 못해 흩어진 편집위원들은 난생 처음 불안정한 온라인 연결에 기대어 회의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교지실에 쌓아 놓았던 자료들과 장비들은 오랜 기간 언론사실의 폐쇄로 손도 대지 못했고, 결국 상반기 교지를 출간할 만큼의 충분한 기사가 나오지 못했으니 말입니다. 학생이 모이지 못하니 교지와 함께 글을 만들어 나갈 새로운 구성원을 찾기 힘들었고, 2020년 2월 갓 출간한 78호의 독자를 대거 놓친 안타까움은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겁니다.


    이미 우리 주변에 존재했음에도, 익숙함을 쫓아 굳이 사용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던 여러 기술들은 코로나19 사태로 말미암아 수면 위로 떠올랐고, 온라인 화상회의나 각종 배달 서비스, OTT 서비스 등은 이제 우리의 일상에 빠질 수 없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전례 없는 범지구적 문제는 아이러니하게도 신세계의 도래를 앞당겼다고도 할 수 있을 겁니다.


    코로나19로 인해 자택에서 온라인으로 사람들과 소통하며 수업을 듣고, 시험을 치르고, 업무를 보며 교지를 만들어가는 낯선 상황은 과거에 우리가 과학이 발전하면 벌어질 수 있으리라 상상했던 모습입니다. 기술의 발전은 얼굴과 얼굴이 맞닿아야만 진행 가능했던 여러 상호작용들을 비대면으로도 가능하게 했고, 기존에 당연시됐던 현장에서의 만남과 이를 통해 형성되는 사회적인 관계를 낯설게 바라볼 기회를 제공했습니다. 이러한 기회를 통해 익숙했던 ‘사회화’의 가치를 재평가하는 움직임이 뒤를 따랐고요. 동시에 우리는 새로운 기술로는 채워지지 않는 아날로그적 만남의 소중함을 절감할 수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멋진 신세계’가 찾아오자 기존에 당연시되던 수많은 가치들이 더는 이전만큼의 ‘당연함’을 지니지 않게 되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의 세계에서 과연 인류가 이전의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까요?

지금의 변화가 코로나가 종식된 미래에 어떤 식으로 일상 속에 안착하게 될 지 모르겠으나, 과거에도, 현재도, 미래에도 문서화 된 ‘글’은 여전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2페이지 남짓 되는 정보량을 굳이 10분가량의 영상으로 보는 것을 선호하는 시대지만, 여전히 우리는 SNS에 공유되는 짤막한 글부터 동영상의 설명란, e북, 웹소설, 뉴스 기사, 온라인 공간의 논문 등 수많은 형태의 글을 접하고 사용하는 것에 익숙합니다.


    교지는 ‘글’이라는 결과를 담는 하나의 유효한 수단이며, 교지서강은 결국 교지에 담을 ‘글’로 대표된다 해도 무방합니다. 이전만큼 충분한 회의와 취재과정, 첨삭과 편집을 거쳐 글이 나올 수 없다 해도 ‘글’이 담는 내용의 가치는 여전하며, 교지의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선 어떤 수를 써서라도 ‘글’을 써내려 가고 완성시킬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불확실한 상황 속에서 작업해나간 글들이 언제, 어떻게, 어디에 실리게 될지 예상할 수 없었지만 적어도 ‘글’이 남는다면 교지서강의 뿌리는 살아있다고 할 수 있을 테니 말이죠.


    그렇기에 불확실성과 낯섦으로 가득 찬 2020년 한 해를 거쳐 나온 이번 교지도, 여전한 코로나 시국에 이제는 적응한 교지서강이 만들어낼 다음 교지도, 혹은 먼 미래의 교지서강도 모두 교지에 기록될 ‘글’들을 통해 버텨낼 수 있을 것입니다. 어떤 ‘멋진 신세계’가 도래하더라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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