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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교지서강 Mar 12. 2021

최소한, 차별금지법

글. 모인

    코로나 팬더믹 이후의 세계는 차별이 선명해진 세계다. 코로나 19를 겪으면서 마주했던 차별과 혐오는 코로나 19를 대처하는 데 방해가 되었음에도 제재받지 않았다. 우리는 계급 차가 무엇인지 절감한다. 직업을 잃은 사람들과 내 손으로 폐업 신고를 하는 사람들이 있는 한편, 부동산 투자와 자본 소득에 대해 열을 올리는 사람들이 언론의 주목을 받는다. 생계를 이어 나갈 수 없는 상황에 놓인 사람들을 위한 기본적인 안전망,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나고 상대해야 하는 서비스 직종의 사람들에 대한 안전대비책 등은 한국 사회의 관심을 얻지 못했다. 타인에 대한 무감함, 가장 위급한 상황에 놓인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이 취약 계층을 더욱 취약한 곳으로 내몰고 있다. 높아져 가는 2030 여성 자살률과 실업률, 시설이라는 비가시화된 공간에 격리된 채 코로나 감염에 대처할 수 없었던 사람들, 활동 보조인의 부재로 일상생활에 어려움을 겪는 장애인들은 코로나 팬더믹 이후 심화한 불평등의 모습들이다. 연결감을 느낄 수 있는 온라인 공간은 각종 낙인과 혐오 표현으로 얼룩져 있고, 위태롭고 불안한 이 사회에서 사람들은 단죄할 누군가를 찾음으로써 이 상황을 대하려는 것 같다.


    차별을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도저히 무시할 수 없을 정도로 선명해진 이때, 차별금지법이 다시 국회에 등장했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0년 6월 진행한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 결과[1], ‘나도 언제든 차별의 대상이나 소수자가 될 수 있다’라는 질문에 응답자의 91.1%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다고 답했으며 ‘평등권 보장을 위한 법률 제정에 찬성’하는 응답자는 88.5%로 지금까지 한 조사 가운데 가장 높은 수치다.

매번 변명으로 삼았던 ‘국민의 합의’를 더는 변명으로 삼을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왜 차별금지법 입법은 요원한 일로 그치고 마는 것일까? 이 글은 2020년 6월 29일 장혜영 의원이 대표 발의한 차별금지법안[2]을 중심으로 차별금지법의 내용을 살펴보고, 차별금지법이 입법된다면 우리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할 수 있는지를 고민해보고자 한다.

 

    2007년 법무부가 첫 차별금지법 입법예고안을 발표한 이후 2008년 발의안과 2013년의 발의안까지 발의는 지속해서 이루어졌으나, 국회에서는 차별금지법에 대해 제대로 된 논의조차 하지 못하고 국회의 회기 만료로 자동 폐기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차별금지법은 수많은 논의에도 진척되지 못한, 낡은 이야기로 다가올지도 모른다. 허나 차별금지법은 우리 사회의 차별이 무엇인지 논의하게 하고 차별에 대한 사람들의 감수성을 높임으로써, 단번에 차별을 해소하지는 못하더라도 더 많은 사람이 차별 없는 사회를 상상하게 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게 할 것이다. 많은 사람이 성별, 연령, 장애 등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개별적 차별금지법의 존재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으냐고, 꼭 누군가의 반발을 사는 포괄적 차별금지법이 필요하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현재 개별적 차별금지법이라고 통칭하는 남녀 고용평등법[3], 근로기준법[4], 연령 차별금지법[5], 비정규직 보호법[6]등은 성별·가족 지위·혼인·임신과 출산, 인종·성적지향·학력·출신 지역, 연령, 고용 형태라는 사유에 대한 차별을 고용이라는 영역에 한정하여 규제하고 있다.


    장애인차별금지법의 경우에는 고용·교육·재화 용역의 세 영역에서 장애에 의한 차별을 금지한다. 하지만 만일 장애여성이 일터에서 여성이자 장애인으로서 겪는 복합적인 차별을 해소하려 한다면 성별에 의한 차별 혹은 장애에 의한 차별 중 하나의 법안에만 기대야 한다. 여기에 개별적 차별금지법의 한계가 존재한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차별금지사유[7]를 이유로 고용, 교육, 재화 용역, 행정서비스에서 이루어지는 직접차별, 간접차별, 차별지시, 차별표시 조장 광고, 괴롭힘, 성희롱을 금지함을 명문화함으로써 차별 금지의 영역을 넓히고 복합적인 차별 상황의 맥락을 모두 고려한 구제를 가능케 하며, 구제의 방식도 간결화한다.

더해 국가와 지자체에 적극적인 차별 시정이라는 의무와 평등문화 확산의 책임을 지움으로써 국가와 주체가 차별 없는 사회를 만드는 일의 주체가 되어야 함을 명시한다.


    차별금지법 입법에 있어 두드러지는 갈등은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의 차별금지사유 포함 여부이다. 2007년 입법예고안 발표 이후 일부 보수 기독교 단체들은 차별금지법을 ‘동성애 허용 법안’이라고 왜곡하며 ‘성적지향’ 사유를 삭제할 것을 주장했고, 트랜스젠더 혐오자들은 ‘성별정체성’ 사유를 삭제하기를 주장해왔다. 이에 2007년 10월 31일 성적지향, 병력, 가족형태 및 가족상황, 언어, 출신국가, 범죄 및 보호처분 항목을 입법안에서 삭제한 법무부의 결정은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의한 차별을 차별이 아니라고 공표함으로써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으로 차별을 하는 이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그들의 차별을 정당화했다. 2020년 6월 정의당 장혜영 의원 및 10인의 차별금지법 발의 이후 같은 달 6월 28일 미래통합당이 발의한 제한적 차별금지법은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이라는 사유를 제외한 형태의 법안이다.


    미래통합당은 제한적 차별금지법을 발의하며 “사회적 합의가 쉬운 항목”인 “여성·장애인·외국인 등에 가해지고 있는 차별의 철폐”를 강조했다. 2020년 7월 17일 미래통합당 기독인회 소속 의원들은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평등을 가장한 동성애 보호법”이라며 반대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서정숙 의원은 ‘성적 지향을 이유로 교육과 고용 등에 불이익을 줘도 된다는 입장이냐’는 질문에 대해 “그런 사례가 없지 않냐, 항상 뉴스도 보지만 한번도 그런 사례를 접한 적 없다”고 말했다. 한국사회에서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으로 인한 차별이 없다고 단언한 것이다. 그러나 국가인권회의 2014년 조사[8]에 따르면 성적지향과 성별정체성에 따른 노동시장 내 구직과정에서의 차별, 괴롭힘, 해고 등의 문제는 드러나기조차 어렵다고 한다. 성소수자들은 차별이 예상될 때 대부분 자발적으로 구직을 포기하거나 퇴사하며, 괴롭힘 문제를 드러낼 경우에 오히려 더 큰 비난을 받을 것을 우려해 스스로 감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사회에서 성소수자는 인구학적으로 식별하지 않았던 소수자 집단이며, 행정 영역의 조사에서 성소수자라는 정체성은 무시되어 왔기 때문에 성소수자를 대상으로 한 제도나 예산이 전무하다. 제도와 예산의 공백은 성소수자에 대한 부족한 이해로 이어져 행정서비스 영역이 성소수자에게 사회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는 인식조차 부재하게 한다. 성소수자에게는 차별금지법이 필요 없다, 성소수자가 겪는 차별을 본 적 없다는 주장은 성소수자들이 지금까지 사회의 차별에 대해 문제 제기해왔던 성소수자들의 목소리를 지우는 일일뿐더러 사회의 차별에 대항언론을 구성하지 못하게 만드는 일이다.





차별금지법 1장: 차별과 차별금지사유를 정의하기


    차별금지법 1장은 차별금지법의 목적, 용어에 대한 정의와 금지대상인 차별의 범위를 규정하고 있다. 차별금지법 제1조에는 “이 법은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차별을 금지하고, 차별로 인한 피해를 효과적으로 구제함으로써 헌법상의 평등권을 보호하여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실현함을 목적으로 한다.”라고 명시되어 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기본법적 성격을 띠며 개별적 차별금지법과는 달리 차별에 대한 구체적인 정의와 차별의 유형을 포함한다. 차별금지법 제3조는 금지대상인 차별의 범위를 정하고 있는데, 1호에 차별금지사유와 차별금지법이 적용되는 영역을 설명하고 있다. 열거된 차별금지사유는 “성별·장애·나이·언어·출신국가·출신민족·인종·국적·피부색·출신지역·용모 등 신체조건·혼인여부·임신 또는 출산·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종교·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성적지향·성별정체성·학력·고용형태·병력 또는 건강상태·사회적 신분 등(이하 성별등)”이며 차별금지법이 적용되는 네 가지 영역은 고용, 재화·용역·시설 등의 공급이나 이용, 교육기관 및 직업훈련기관에서의 교육·훈련이나 이용, 행정서비스 등의 제공이나 이용 영역이다.


    차별금지법이 적용되는 네 가지 영역은 인간이 삶을 살아가는 데에 필수 불가결한 조건의 영역들로 차별이 침범해선 안 되는 최소한의 영역이다. 당신이 고용주로서 어떤 집단을 아예 고용하지 않는 일, 특정 집단의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시설을 만드는 일은 어떤 사람의 생존 조건들을 지워버리는 것과 같다. 차별금지법에 대한 오해이자 차별금지법 반대 이유로 많이 이야기되는 ‘차별금지법이 나의 자유로운 표현과 생각들을 차별이라며 처벌할 것’이라는 믿음은 곡해이다. 위 네 영역이 아닌 일상적인 대화나 길거리에서 한 발언, 개인의 사적인 감정이나 종교 단체 내에서의 신앙 행위는 차별금지법이 적용되는 영역이 아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이 적용되는 네 가지 영역 바깥에서 발생한 차별 언사, 행동과 혐오 표현일지라도 헌법이 보장하는 표현의 자유에 해당하지 않는다. 이는 다른 사람의 자유를 침해하는 행위이며 타인의 일상이나 생존을 억압하고 위협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은 차별에 대한 완벽한 해결책이 아니지만 소수자집단에 법이 모든 사람을, 차별을 겪은 당신을 보호할 것이라는 믿음을 주고 기초적인 안전망의 역할을 하게 된다. 차별금지법을 시작으로 교육과 문화의 변화가 동반되어야 한다.


    차별금지법이 정의하는 5가지 차별 유형은 직접차별·간접차별·성희롱·차별표시조장 광고행위이다. 직접차별은 어느 하나의 영역에서 특정 개인이나 집단을 분리·구별·제한·배제·거부하거나 불리하게 대우하는 행위로 차별로서 가장 흔하게 인지되는 유형이다. 한센인을 소록도에 강제수용한 한센인피해사건은 한 개인이 특정 집단에 속해 있다는 이유, 사회의 편견에 부합한다는 이유로 개인의 의지를 무시하고 시설에 한센인을 분리하고, 그곳에서 한센인들을 억압한 국가에 의한 직접차별 행위이다.


    두 번째 유형인 간접차별은 외견상 성별등에 관하여 중립적인 기준을 적용하였으나 그에 따라 특정 집단이나 개인에게 불리한 결과가 초래된 경우를 말한다. 현대 사회에서 차별은 대개 간접차별의 형태로 나타나기 때문에 간접차별을 차별의 한 유형으로서 명시하고 간접차별, 나아가 미세차별[9]까지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이 요구된다. 한국의 남녀고용평등법도 1999년 3차 개정안에서 “사업주가 여성 또는 남성이 충족하기 현저히 어려운 인사에 관한 기준이나 조건을 적용하는 것도 차별로 본다”라는 정의를 추가하여 직접차별 이외에도 간접차별까지도 금지한다. 하지만 아직도 간접차별에 대한 판단 기준이 미비하여 간접차별이 인정된 판례가 부족하다는 점에서 법적 공백이 존재한다. 대전MBC 채용 성차별 판결은 우리 사회의 간접차별에 대한 부족한 대응을 보여준다. 대전 MBC는 1997년 이후 정규직으로는 남성 아나운서만을, 계약직과 프리랜서 직으로는 여성 아나운서만을 채용했으며 채용 단계에서의 차별이 임금과 근로 형태에서의 차별로도 이어졌지만 직접적인 차별 의도가 담긴 증거가 없었다는 이유로 남녀고용평등법의 규제를 받지 않았다.


    한국 법체계에서 직접차별의 판단 기준은 차별하려는 ‘의도’에 있다. 따라서 직접차별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고소인이 ‘차별의 의도’를 입증해야만 한다. 반면에 간접차별은 차별의 의도보다 차별의 결과를 중시하며, 이 점은 피해자 관점을 존중하는 방향으로의 차별행위에 대한 처벌, 시정과 구제를 가능하게 한다. 대다수의 차별은 무의식적 수준에서 일어나는 편견의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고, 그렇기에 차별행위를 한 사람에게 차별의 의도가 없더라도 차별은 발생할 수 있다. 사실상 행위의 개별적인 맥락과 의도를 읽어내거나 입증하는 일은 불가능하므로 차별의 의도가 아니라 결과가 차별행위의 판단 기준이 되어야 한다. 더해 입증책임 전환도 차별금지법의 중요한 지점이다. 차별피해자가 성별 등을 이유로 분리, 구별, 제한, 배제하거나 불리하게 대우받은 사실을 증명하면 상대방이 차별이 아니라거나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점을 증명해야만 한다. 차별금지법 반대론자들은 입증책임 전환 조항이 피해자들에게 ‘특권’을 부여하는 차별금지법이 새롭게 도입한 부당한 조항이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사실과 다르다. 이미 입증책임 전환은 남녀고용평등법, 기간제법 등에 적용되어 왔던 조항이며 피해자가 차별받은 사실을 증명하면 상대방이 그 사실에 대해 소명해야 한다는 조항으로 불평등한 입증책임을 가해자에게 지우고 있지 않다.


    차별 유형으로서 괴롭힘과 성희롱은 신체적·정신적 고통이라는 요건에서 공통되나 성희롱은 괴롭힘과 달리 성적인 성격을 갖는다는 차이를 가진다. 세 번째 차별 유형인 괴롭힘은 제3조 4호에 성별 등을 이유로 적대적·모욕적 환경을 조성하는 등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주어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는 행위로 규정되어 있다. 네 번째 유형인 성희롱은 성적 언동이나 성적 요구로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거나 피해를 유발하는 환경을 조성하는 행위, 그리고 그러한 성적 요구에 불응을 이유로 불이익을 주거나 그에 따르는 것을 조건으로 이익 공여의 의사 표시를 하는 행위를 말한다. 괴롭힘을 차별 유형으로 명시함으로써 2018년 도입된 직장내괴롭힘법[10]이 금지하는 범위 외의 괴롭힘에 대한 금지가 가능해져 더 많은 차별 행위를 법적으로 제재할 수 있게 된다. 괴롭힘과 성희롱에 대한 정의 모두 적대적 환경을 조성해 피해를 주는 환경형과 특정 조건을 이유로 차별 피해자에게 불이익을 주는 조건형을 구분하고 둘 모두를 차별로 인식하고 있다. 마지막 차별 유형인 차별표시·조장 광고행위는 성별 등을 이유로 특정 개인이나 집단에 대한 분리·구별·제한·배제·거부 등 불리한 대우를 표시하거나 조장하는 광고 행위이다. ‘차별표시·조장’을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에 대한 질문들이 존재하지만, 차별과 그것이 야기하는 혐오 및 증오가 특정 집단의 고착된 이미지로 인해 강화된다는 점에서 차별표시·조장 광고행위는 그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하여 금지되어야 한다.


    제1장 제3조 제6항은 차별 예외 조건들을 설명하고 있다. 차별의 예외로 인정되는 첫 번째 조건은 진정직업자격 조건이다. 특정 직무나 사업수행의 성질상 그 핵심적인 부분을 특정 집단의 모든 또는 대부분의 사람이 수행할 수 없고, 그러한 요건을 적용하지 않으면 사업의 본질적인 기능이 위태롭게 된다는 점이 인정되는 경우에는 차별로 보지 않는다. 특정 직무나 사업수행 상 불가피하다는 조건은 그러나 엄격하게 판단되어야 하는데, 고객의 선호나 사업주의 개인적 편견은 이유가 될 수 없다. ‘키 162cm 이상’이라는 승무원 지원 조건은 대표적으로 진정직업자격으로 인식되어온 차별적인 조건이다. 짐을 꺼내기 위한 절대적인 신체 기준이란 없음에도 오랫동안 관행처럼 이 조건이 유지되었다는 점에서 진정직업자격 조건에 대한 엄밀한 판단이 필요하다. 두 번째 차별의 예외 조건은 잠정적 우대조치이다. 현존하는 차별을 해소하기 위하여 특정한 개인이나 집단을 잠정적으로 우대하는 행위는 구조에 의한 차별을 해소하기 위함으로, 기존의 차별적 구조를 심화시키는 것이 아니므로 차별이 아니다.





차별금지법 2장·3장: 차별시정 의무와 구체적 차별금지의 예시


    제2장은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 등의 차별시정 의무를 다룬다. 차별금지법은 차별 구제뿐만 아니라 평등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증진 정책도 규범화해야 한다. 따라서 국가와 지자체가 차별을 적극적으로 예방하고 시정할 의무를 진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한다. 현 장애인차별금지법(이하 장차법)이 장애를 이유로 한 차별행위에 대한 시정과 차별행위 피해자의 구제에만 초점이 맞춰져 실질적으로 차별의 가능성을 줄여줄 예방책을 마련하는 수준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보면 차별을 예방하기 위한 노력의 중요성을 역설한 제2장의 실효성이 중요함을 알 수 있다. 제2장 제6조는 정부가 차별시정을 위해 차별시정기본계획(이하 기본계획)을 5년마다 수립하여 시행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제6조 3항에 인권위의 기본계획 권고안을 존중해야 한다고 규정함으로써 차별시정기관이라는 인권위의 역할을 강화하는 것이다. 제8조는 중앙행정기관의 장, 지방자치단체장과 시·도 교육감이 기본계획에 따른 연도별 세부시행계획을 수립하고, 이에 필요한 행정 및 재정상 조처를 하여야 함을 명시하고 있다.


    제3장은 앞서 설명된 차별금지가 적용되는 영역을 하위 영역으로 분류하여 그 하위 영역에서 차별이 금지됨을 다시 한번 규정하고 있다. 예를 들어 고용 영역에서의 차별은 모집·채용상의 차별, 근로계약상의 차별, 근로조건의 차별 등으로 나누어 판단하여야 함을 상세히 기술하였다. 더해, 예로 고용 영역에서의 배치상의 차별금지를 성별등을 이유로 특정 직무나 직군에서 배제하거나 편중하여 배치하는 경우와 특정 보직을 부여하지 않거나 근무지를 부당하게 변경하는 행위로 나누어 자세하게 설명하였는데 이는 명확한 법적 판단의 규준을 제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차별금지법 4장: 차별의 구제


    제4장은 차별의 구제를 다루고 있다. 차별금지법을 통한 구제 방법은 크게 두 가지로, 국가인권위원회를 통한 진정 방법과 법원을 통한 (민사)소송 방법이 있다. 포괄적 차별금지법은 지나치게 다원화되어 있고 흩어져 있던 차별의 구제 방안을 보다 단순화해 피해자 관점에서 더 쉬운 구제를 가능하게 한다. 복합적인 차별을 겪었을 때 어떤 진정기관에 진정을 넣어야 할지에 대한 고민을 덜어줄 수 있고, 내가 겪은 차별을 어느 한 법에 욱여넣지 않고 다양한 금지사유를 포괄하는 판단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제41조 1항은 차별행위의 피해자 또는 그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나 단체가 인권위에 진정할 수 있다고 규정함으로써 피해 구제 상황에서 피해자 본인뿐만 아니라 제3자 혹은 단체 또한 차별에 맞설 수 있게 되었다. 더해 42조에 인권위가 차별행위로 인권위의 권고를 받은 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권고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차별행위의 중지, 피해의 원상회복, 차별행위 재발방지를 위한 조치를 명할 수 있는 시정명령 권한을 규정하여 인권위 구제의 실효성을 높이고자 했다. 제44조는 시정 권고 이후 시정명령을 받았음에도 그 정한 기한 내에 시정명령의 내용을 이행하지 않는 자에 대해 3천만 원 이하의 이행강제금을 부과할 수 있음을 명시하여 차별금지법의 실효성을 높였다. 제48조 제49조는 인권위가 피해자를 위해 법률구조를 요청할 수 있고, 소송을 지원할 수 있음을 밝혀 두었다.


    인권위의 진정 방법 이외에도 차별 구제 소송 방법이 존재한다. 이는 적극적 조치나 손해배상을 강제하는 구속력 있는 판결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으나 비용과 접근성의 측면에서 앞선 진정 방법보다 어려운 방법이다. 제50조는 법원이 구제조치로 임시조치 명령과 적극적 시정조치 판결, 배상명령을 통한 간접강제가 가능함을 밝히고 있다. 제51조의 손해배상 항은 차별금지법을 위반해 타인에게 손해를 가한 자는 손해배상 책임이 있음을 규정하고, 특별히 차별행위가 악의적으로 판단되는 경우 재산상 손해액 이외에 손해액의 2배 이상 5배 이하에 해당하는 배상금을 지급하도록 판결할 수 있다고 본다. 차별행위의 증명책임을 피해자가 아니라 차별행위를 한 상대방이 밝히게 함으로써 장애인차별금지법, 남녀고용평등법 이외의 개별적 차별금지법의 한계로 작용했던 증명책임의 방식도 변화시켰다.


    사람들의 오해와는 달리 차별금지법상 형사처벌이 가능한 경우는 제55조 불이익 조치의 금지 조항뿐이다. 불이익 조치의 금지란 사용자 및 임용권자, 교육기관의 장은 차별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자 및 그 관계자가 이 법에서 정한 구제 절차의 준비 및 진행 과정에서 진정 또는 소의 제기, 증언, 자료 등의 제출 또는 답변을 하였다는 이유로 해고, 전보, 징계, 퇴학, 그 밖에 신분이나 처우와 관련하여 불이익한 조치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는 것이다. 불이익 조치 금지 조항을 어긴 경우에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천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게 된다. 차별 피해를 신고했거나, 차별 피해자를 도왔다는 것을 이유로 불이익 조치를 하는 것은 차별금지법의 작용을 원천적으로 훼손하는 일이기에 강력한 처벌이 뒤따르는 것이다.


    외국의 차별금지법 혹은 평등법 역시 시정 권고 위주로 작동하고 있고, 벌금이나 징역을 부과하는 형사처벌 상황은 드물다. 차별금지법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평등권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법으로 기능한다. 차별금지법은 최소한의 수위에서 최소한의 안전망의 역할을 하고 있다는 점을 의식해야 한다. 차별금지법 도입 이후 사회적 논의가 이루어져야만 어떤 차별 행위를 더 강력하게 제재해야 하는지에 대한 판단이 가능해지고 그 행위를 금지하는 법안이 상정될 수 있다.





차별금지법은 무엇을 바꿀 수 있을까?


    나는 차별이 무지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이 다른 사람을 나와 다른 존재로 손쉽게 타자화하고 차별하고 혐오하는 일의 바탕에는 소수자집단을 만들어진 부정적인 이미지로만 바라보며, 그 덧씌워진 부정적인 이미지에서 벗어난 소수자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하는 무지가 존재한다. 만들어진 이미지, ‘타자들’에게 덧씌우고 싶은 부정적인 이미지와 상황들 이외의 것들은 이야기되지 않고 이해되지 않는다. 이 무지는 곧 공포로 이어진다. ‘병을 전파한다.’, ‘우리의 안전을 위협한다.’, ‘우리의 목숨을 위협한다’와 같은 언설 들은 혐오를 정당화한다. 나는 무섭기 때문에 나는 이들이 혐오스러운 것이다.

    러나 소수자집단 내부의 다양성, 동등한 시민으로서 누려야 하는 당연한 권리, 그들도 동등한 시민이자 한 인간이라는 사실은 무시된다. 차별과 혐오의 표적 집단이 된 소수자들이 어떤 감정을 느끼며 살아가는지는 알지 못한다. 트랜스젠더 소설가 김비는 “차별은 불안의 문제”라고 말했다. “얼마나 많은 불안을 끌어안고 사는 삶인지에 따라, 얼마나 차별받고 사는 삶인지 알게 된다. 당신에게만 불안이 있지 않고 우리에게도 역시 불안은 있다고 강 건너 ‘구경하는’ 사람들은 말하겠지만, 어떤 이에게 불안은 고작 불편함에 불과하고, 또 다른 이에게 불안은 생존의 문제가 된다.”[11]는 말은 소수자들에게 차별이 실존적 위협임을 드러낸다.


    카롤린 엠케는 “각자 개개인으로서 유일무이하고 고유한 존재임을 상상할 수 없는 사람, 행복과 존엄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그들이 자신과 매우 유사한 존재라는 것을 상상도 할 수 없는 사람은 그들이 상처받기 쉬운 연약한 인간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한다.”[12]고 말했다. 차별금지법은 그 무지를 없앨 시도의 시작이다. 지금까지 주류 사회에서 주변화되어 왔던 사람들에게 자리를 주고, 법이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는 확신을 주고, 공적 공간에서 비가시화되거나 분리되지 않고 동등한 시민으로서 생활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모든 인간이 개개인으로서 고유한 존재임을 상상할 수 있게 하는 상상력을 되찾게 할 것이다.




          

[1] 2020 차별에 대한 국민인식 조사 “코로나19, 국민들의 차별에 대한 민감성 높여”[웹사이트]. (2020년 6월 29일) URL: https://www.humanrights.go.kr/site/program/board/basicboard/view?menuid=001004002001&pagesize=10&boardtypeid=24&boardid=7605604


[2] [2101116] 차별금지법안(장혜영의원 등 10인) [웹사이트]. (2020년 6월 29일). URL:  http://likms.assembly.go.kr/bill/billDetail.do?billId=PRC_N2K0Y0Y6O2J9K1Y0N4I2J2X1D0Y0A5


[3] [법률 제7822호, 2005. 12. 30., 일부개정]


[4] [법률 제17862호, 2021. 1. 5., 일부개정]


[5] 고용상 연령차별금지 및 고령자고용촉진에 관한 법률, [법률 제13897호, 2016. 1. 27., 일부개정]


[6] 기간제 및 단시간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파견근로자보호등에 관한 법률, 노동위원회법 등 비정규직보호 관련 법률을 통칭함


[7] 2020년 6월 29일 발의된 장혜영의원 등 10인의 차별금지법안 기준 열거된 23가지 사유. 성별·장애·나이·언어·출신국가·출신민족·인종·국적·피부색·출신지역·용모 등 신체조건·혼인여부·임신 또는 출산·가족 및 가구의 형태와 상황·종교·사상 또는 정치적 의견·형의 효력이 실효된 전과·성적지향·성별정체성·학력·고용형태·병력 또는 건강상태·사회적 신분 등


[8] 장서연 외 「성적 지향·성별 정체성에 따른 차별 실태조사」, 국가인권위원회 2014


[9] 미세한 차별(microaggression)이란 다른 사람들, 특히 소외 집단에 속한 사람들이 자신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갖게끔 하는 일상 속의 질문이나 평가, 행동을 말한다


[10] 근로기준법 제 76조의 2(직장 내 괴롭힘의 금지) 사용자 또는 근로자는 직장에서의 지위 또는 관계 등의 우위를 이용하여 업무상 적정범위를 넘어 다른 근로자에게 신체적, 정신적 고통을 주거나 근무환경을 악화시키는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 된다.


[11] 트랜스젠더 소설가가 들은 환대의 말 [웹사이트]. (2020년 10월 1일). URL: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307.html


[12] 카롤린 엠케. (2017). 혐오사회: 증오는 어떻게 전염되고 확산되는가 (정지인 역). 다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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