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딤소
한 입씩 방금 볶아낸 밥을 우물우물 씹으며 라디오에서 아무거나 나오는 노래를 듣는 한 자취생은 오늘도 엄마와 아빠가 없는 하루를 만끽한다. 내 집은 작고 초라하지만, 멋대로 돈을 빼앗거나 물건을 뒤지고 마음대로 방을 들락날락할 사람은 없다. 온전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만족스러운 자유다.
혼자 살기를 꿈꿨던 것은 아주 오래전의 일이다. 부모와의 분리라는 개념이 생겼을 때부터 나는 엄마의 광기 수준의 집착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문제는 이 개념이 나에게 와 닿은 지 겨우 3년 남짓 되었다는 말이다. 18살 여름, 공부는 죽도록 하기 싫고 덥기는 또 미친 듯이 덥던 그때, 에리히 프롬의 『소유냐 존재냐』를 읽고 있었다.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에 다음과 같은 말을 한다. “소유 양식으로 사랑을 경험할 때, 사랑은 자기가 ‘사랑하는’ 대상을 제한하거나, 가둬두거나, 지배하는 걸 뜻한다.” 이 직후 그는 부모와 자식 간의 관계가 실은 ‘사랑’이 아닐 수 있다고 말하며, 수많은 부모가 ‘사랑’이라는 말 아래 소유욕, 신체적/정신적 폭력을 행사한다는 점을 짚는다. 익숙하게 들리는가? 혹은 내 일이 아니라고 느끼는가? 이 부분에 대한 개인적인 감상을 솔직하게 적는다면, 그것은 마치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듯한 기분이었다. 그동안 설명되지 못한 엄마와 나의 관계에 드디어 이름을 붙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부모와 자식 간의 폭력은 단순히 약자를 향한 폭력으로만 설명될 수 없다. 그것은 남성이 지나가는 아무 여성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어떤 부모는 자식을 자신의 소유로 보기 때문에 그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것에 죄책감을 느끼거나 잘못이라고 여기지 않는다. 여기서 폭력은 단순히 때리거나 폭언을 하는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자식을 원하는 대로 키우고 조종하기 위해서 협박과 회유를 반복하고, 그들의 활동범위를 제한하거나 소유물을 박탈하는 등의 행위도 모두 폭력에 해당하며, 이는 자식을 자신의 소유물로 여기는 증거이다.
내가 정신분석상담을 받으면서 깨달은 일이다. 엄마는 나와의 분리를 극도로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는데, 그것이 내가 독립을 결심하면서부터 더 이상한 방식으로 발현되었다. 아침마다 꼭 안부 전화를 해서 생존 여부를 알려야만 한다든가(실제로 ‘생존’이라는 말을 썼다.), 무엇을 먹었는지 사진을 찍어서 끼니마다 카톡으로 보내줘야 한다든가 말이다. 이 일들을 제때 수행하면 엄마는 안심했고, 제때 수행하지 않으면 먼저 전화를 해서는, ‘매일 전화하지 않으면 전화하지 않은 일수대로 용돈을 만 원씩 깎는다’는 으름장을 놓았다. 나는 농담인 줄 알았지만 하루 빼먹었을 때 정말 다음 달 용돈은 만 원이 줄어 있었다.
나는 알아차리지 못했지만 엄마는 나와 정신적으로 분리되지 않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나는 항상 엄마와 꽤나 거리를 두고 있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나의 엄마를 향한 일방적인 심리적 거리였지, 엄마의 나를 향한 심리적 거리가 아니었다. 엄마는 나와 분리가 되지 않아 나에 본인을 투사했고,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마치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인 양 행동하며 민감하게 반응했다.
더 흥미로운 점은 엄마와 엄마의 엄마, 즉 내 외할머니와의 관계인데, 먼저 놀라운 이야기를 하자면 외할머니는 아직도 엄마에게 속옷을 사다 준다. 속옷뿐만 아니라 화분, 장식품, 가전제품, 옷까지 무작정 사 와서는 쓰라고 내미는 것이다. 그게 뭐 어때서. 이렇게 생각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이렇게 무언가를 사다 주는 것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이 기형적인 삼대 모녀의 관계는 위에서 아래로 물이 흐르듯이 할머니에서부터 엄마로, 그리고 엄마에서 나로 내려왔다. 원래 건강한 부모와 자식의 관계는 자식이 어떤 모습이든지 그것은 다른 사람의 모습이지, 부모 자신의 모습이 아니라는 것을 부모가 알고 자식의 모습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식이 빨간색 윗옷을 입었을 때, 부모는 그것을 입으면 안 된다거나 파란색 옷을 입어야만 한다고 주장하고 그렇게 하도록 만들지 않는다. 왜냐하면 자식과 자신은 다른 사람이기 때문에 자식이 빨강을 입든 파랑을 입든 상관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부모와 자식이 분리가 되지 않은 경우에는 자식의 모습이 곧 자신의 모습이 된다. 엄마의 모습은 곧 할머니의 모습이고 나의 모습은 곧 엄마의 모습이라서, 엄마의 아름다움은 할머니의 아름다움이고 나의 아름다움은 엄마의 아름다움이 되는 것이다.
내가 중학생이 되었을 때 엄마는 강박증에 걸린 사람처럼 나에게 다이어트를 시키려고 했다. 싫다는 의사를 밝혀도 내 의사는 중요하지 않았고, 나는 하루 세끼를 양상추와 방울토마토로 버텨야 했으며 매일 고강도의 운동을 해야 했다. 성장기인데도 충분한 영양을 섭취할 수 없었다. 나는 용돈으로 엄마 몰래 폭식하는 식이장애가 생겼고 결국 하루는 엄마에게 걸리고 말았다.
엄마는 나보고 이렇게 말했다. 배가 고프면 말을 하라고. 난 분명히 말을 했다. 다이어트가 필요 없으며 할 의지도 마음도 없고 배가 고프다고. 엄마는 배가 고프다고 말을 했으면 방울토마토를 열 개 더 줬을 거라고 했다. 나는 내가 이미 수도 없이 했던 말을 또 반복했지만 결국은 방울토마토를 먹으라는 말뿐이었다. 다이어트가 필요 없다는 내 의견은 의견이 아니었고, 엄마에게 답은 정해져 있는 셈이었다. 나는 다이어트를 계속해야 했고, 그 말은 계속 굶어야 했으며 엄마의 요구에 계속 응해야 하는 것이었다! 이것이 엄마와 나 사이의 소통 방식이었다. 내가 무슨 말을 하든 그것은 엄마의 의견이 아니기 때문에 모두 기각이 되고 나는 엄마의 의견을 어쨌든 따라야만 하는 것. 부당한 일이다.
정신분석을 이어가면서 의사와 나는 엄마와 나 사이의 관계를 연구했다. 그리고 다다른 결론이 바로 할머니와 엄마의 관계에서부터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는 추측이었다. 할머니는 엄마를 정말 독하게 키우신 분인데, 하루에 피아노를 세 시간 연습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못 하게 하고 심지어 공부도 못 하게 했다. 물론 성적이 떨어지면 맞았다. 이런 집에서 자란 엄마는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는 법을 몰랐고, 할머니도 엄마를 소유물로만 여겼지, 어떤 독립된 개체로 여기지 않았다. 겁이 많았던 엄마는 독립의 일환으로 결혼을 택했는데, 그렇게 독립하고서도 사실상 독립이 아닌 상태였다. 모든 의사결정에 할머니의 의견이 들어가야 했고 결국은 할머니와 걸어서 5분 거리인 곳으로 이사까지 갔다.
이런 할머니와 엄마와의 관계는 그대로 엄마와 나와의 관계로 내려왔다. 내 모든 의사결정 - 내가 무슨 옷을 입는지부터 무슨 학원에 다니고 어느 친구랑 노는 것까지 - 에는 엄마의 의견이 들어가거나 엄마의 허락이 있어야 했고, 내가 엄마와의 물리적 분리를 위해 집에서 겨우 10분 거리인 학교의 기숙사에 들어갔지만 주말마다 보는 것만으로도 부족했던 엄마는 결국 우울증에 걸리고 말았다. 결국 나는 통학을 결정했는데, 엄마는 내가 공부를 안 하는 것 같다면서 방에서 공부하면 책상 뒤에 앉아서 감시하곤 했다. 이런 집착에 지쳐 떨어지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내가 대학을 거부하고 하고 싶은 것을 하겠다고 했을 때 당연히 엄마가 화를 냈지만 더 무서운 것은 할머니였다. 그들은 나를 더이상 키우지 않겠다고 으름장을 놓으면서 자신들이 원하는 길로 나를 밀어 넣으려고 협박하고 위협했다. 이때 할머니의 반응이 흥미로웠는데, 할머니는 엄마를 따로 불러놓고 자식을 잘못 키웠다고 혼을 내셨다. 자신의 자식에게 과도하게 몰입하면 쉰 살 된 자식에게 양육에 대해서까지 혼낼 수 있는 것이다.
이 이야기가 문제적이라고 느끼지 못했다 해도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본다. 한국은 부모와 자식을 개인과 개인으로 보지 못한다. 공동체주의적인 한국의 전통에 따라 쉰 살의 여성과 스무 살의 여성을 각각의 개인이 아닌, 가족 안의 모녀 관계로만 보는 것이다. 그래서 딸이 뭘 하겠다고 하던, 어떻게 생기든 상관하지 않을 수 없이 관여해야만 한다. 자식은 자신의 일부이기 때문에 ‘나의 인생’의 일부이고, 따라서 나의 마음대로 조종할 수 있어야 만족스러운 것이다.
나는 이것이 지극히 문제적이라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 성장하면서 개별 인격체로 존중받아야 할 제1의 공동체 안에서 개별 인격체로 존중받지 못하고 다른 사람의 일부로서 다른 사람의 두 번째 인생을 사는 것은 인격을 짓밟는 행위나 다름없다. 나는 18살이 되도록 이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엄마가 하라는 대로, 살라는 대로 살았고 그에 실패했을 경우 스스로가 살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여겼다. 엄마를 만족시키는 것이 곧 나의 자아실현이었기 때문이다. 나도 엄마와 나를 분리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그러니 성적표 문자 발송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학교에서 공공연히 학생을 부모의 소유로 본다는 것을 이렇게 드러내다니. 정말 이래도 되는 건가? 정말 우리는 이렇게 취급당해도 되는 건가? 왜 아무도 이 결정에 반대하지 않았는가? 성적이라는 것은 개인정보에 속하고, 그것을 열람할 수 있는 것은 본인이어야만 한다. 그러나 성적을 단순히 가족이라는 이유로 보호자의 휴대전화 번호로 문자발송 한다는 것은 학생을 정상가정 안에서 자라온 ‘가족’의 일부분일 뿐이며 개별 인격체라고 인지하지 않는 학교의 시선을 드러낸다. 또한 제적경고를 받으면 교수님과의 면담에 대해 부모님의 서명을 받아야 한다던가, 중도휴학을 하면 부모님께 전화가 간다든가 하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모든 사람은 개별 인격체로서 존중받을 권리가 있다. 만약 어떤 정책이나 방침이 개인을 독립된 개체로 취급하지 않을 때에는 그것이 바뀌어야 마땅하다. 특히 그 정책이 개인을 단순히 정상가정 안의 ‘보통의’ 존재로 그리는 경우, 그 ‘보통’ 바깥에 있는 수많은 개인들은 모두 사라지는 것이다. 존재하지 않는 존재들을 자꾸 만들어낸다는 것은 배제이고 차별이며 부당하다. 개중에는 보호자에게 성적표가 발송되어도 상관없는 사람도 있겠지만, 보호자에게 개인정보를 보여주고 싶지 않은 사람도, 보여줄 보호자가 없는 사람도 있다. 이런 모든 사람에게 ‘보호자’란 모두 같은 의미를 지니지 않는다. 그런데 학교는 당연히 학생들의 보호자는 학생과 ‘보통’의 관계를 맺고 있는 부모이며 학생은 부모의 보호(라고 쓰고 소유물로 취급받기로 읽는)를 받는 사람이라고 상정한 것이다. 따라서 성적표 문자 발송은 학생 개개인의 주체성을 빼앗는 것과 같다.
지금의 나는 가족 중 아무와도 가깝지 않은 곳에서 가족 중 아무도 내 공간에 함부로 들어올 수 없는 장소를 오로지 나만의 공간으로 꾸며 놓고 나만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다. 주체성은 소중한 것이다. 하나의 인간으로서 대우받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권리이고, 타인을 하나의 인격체로서 대우하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의무이다. 우리는 그런 주체성을 우리 스스로 등한시하고 있지 않은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