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산 아래, 작은 집 하나

by 김기수


산은 말이 없다.

그러나 그 침묵은 언제나 가장 큰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하얗게 덮인 설산은 세상의 모든 소리를 삼킨 듯 고요하다. 푸른 하늘 아래, 날카로운 능선은 차갑게 빛나고 있다. 가까이 다가가면 얼어붙은 바람이 뺨을 스칠 것만 같다. 그 앞에서 나는 언제나 작아진다. 내가 안고 있던 고민과 불안, 사람들 사이에서의 상처와 서툰 말들이 그 거대한 흰빛 앞에서 한없이 초라해진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아래에 자리한 작은 집을 보는 순간 마음은 다시 따뜻해진다.


초록빛이 남아 있는 언덕 위, 나무로 지어진 집 한 채. 갈색 지붕 위로 아직 녹지 않은 눈이 얹혀 있고, 창문은 묵묵히 빛을 품고 있다. 산에 비하면 너무도 작은 존재. 하지만 나는 안다. 저 집 안에는 분명 온기가 있다는 것을. 누군가의 숨결이 있고, 차를 끓이는 소리와 나무 타는 냄새가 있을 것이다. 밖은 겨울이지만, 그 안에는 계절이 다르게 흐르고 있을지도 모른다.


삶도 그런 것 아닐까.


우리는 종종 설산 같은 현실 앞에 선다.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문제, 돌아설 수 없는 시간, 설명할 수 없는 외로움. 세상은 거대하고 나는 왜소해 보인다. 그럴 때마다 마음은 얼어붙고, 나는 자꾸만 스스로를 의심한다.


‘나는 왜 이렇게 약할까.’

‘왜 이 정도의 바람에도 흔들릴까.’


하지만 그림 속 작은 집은 말없이 대답한다.


거대한 산 아래에 있다고 해서, 작다는 이유로 의미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고. 오히려 그 작음이 있기 때문에 거대함은 더 또렷해지고, 차가움은 더 분명해진다고. 대비 속에서 우리는 비로소 자신이 지닌 온기를 발견한다고.


나는 한때, 큰 사람이 되고 싶었다. 누구에게나 인정받고,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사람이.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깨닫는다. 진짜 단단함은 커지는 것이 아니라, 꺼지지 않는 것임을. 폭설이 내려도 불씨 하나 지키는 것. 세상이 아무리 차가워도 마음 한쪽에 작은 불을 남겨두는 것.


그 불이 바로 나를 살게 한다.


설산은 계절이 바뀌어도 그 자리에 있을 것이다. 눈은 녹고 다시 쌓일 것이고, 바람은 또 다른 흔적을 남길 것이다. 하지만 저 작은 집 역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바람을 맞고, 눈을 견디며, 묵묵히 그 자리를 지킬 것이다.


나도 그렇게 살고 싶다.


누군가의 거대한 삶 아래에 서 있어도, 스스로를 초라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 비교와 불안 속에서도 나만의 창문을 밝히는 사람. 세상이 나를 작게 만들 때, 오히려 더 따뜻해지는 사람.


어쩌면 우리는 모두 설산 아래의 작은 집일지 모른다.

완벽하지 않고, 거대하지도 않지만, 그 안에 분명한 온기를 품고 있는 존재.


그리고 그 온기야말로, 이 차가운 세상을 견디게 하는 유일한 힘이라는 것을.


오늘도 나는 마음속에 작은 불을 지핀다.

누군가의 겨울을 지나가는 동안,

적어도 나 자신에게만큼은 따뜻한 집이 되어주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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