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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옥진 Mar 23. 2024

냉이 된장국

홍천의 봄

늦도록 눈은 왔지만 들판은 온통 생명들을 내어놓느라 난리 법석이다. 소복이 솟아 나온 냉이를 켔다. 한 끼 된장국을 끓일 수 있을 만큼을 뜯는데 이십 분이면 충분하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봄 들판에 앉으면 등이 따끈따끈했다. 나물을 캐는 어머니의 손끝은 바쁘고 하릴없는 나는 재잘거리며 사방을 뛰어다녔다.


내 딸에게도 냉이를 가르쳐 주고 캐는 법과 냉이 된장국의 맛을 말하느라 조급해진다.


냉이의 새순들은 땅에 납작 엎드려야 차가운 봄바람과 뜬금없는 폭설에서 견딜 수 있다. 제 키보다 스무 배나 긴 뿌리를 뽑으며 냉이의 힘에 감탄을 한다. 처음 들판에 서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눈을 땅에 적응시켜야 냉이는 비로소 눈 안으로 들어온다. 아도 관심 두지 않았던 곳에 냉이가 많다. 눈 쌓인 운동장에 첫발을 딛는 벅찬 마음과 냉이를 발견하는 마음은 같았다.


복잡한 생각은 일단 넣어두어야 냉이가 보인다. 호미의 손잡이를 다잡고 냉이 뿌리 방향을 간파한 다음 땅을 향해 내리친다. 위로 흙을 들어 올리면 땅속에서 냉이 뿌리가 딸려 나온다. 혹여 서두른 마음이 들어가게 되면 손끝에서 뿌리가 끊기는 느낌이 온다. 힘 조절과 방향을 잘못 가늠한 결과다.


쌀뜨물로 국물을 잡고 된장 한 수저, 고추장 조금을 넣어 끓이다가 한 움큼 냉이를 넣는다. 멸치니 마른 새우니 하는 양념들은 넣지 않아도 봄의 풍미가 넘쳐난다. 담백한 냉이 된장국으로 새로운 봄이 한 발 다가왔다.

땅의 기운과 내 손끝의 애씀과 바람과 눈 녹은 물을 먹는다.

참 고맙고,

, 

참 맛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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