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의 생존전략
"엄마, 자꾸 OO이가 내 머리를 때려."
자기 전 아이들과 오늘 즐거운 일이 있었는지, 힘든 일은 없었는지를 나눌 때가 있었다. 형아가 같은 반 친구들 이야기를 하면, 둘째도 자신의 친구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그런데 믿을 수 없었다. 둘째가 말한 친구랑 둘째가 얼마나 잘 노는 단짝인지는 밖에서도 내가 눈으로 확인했었기 때문이다. 속으로는 에이 설마 하며 겉으로는 우쭈쭈 걱정을 해주었다.
그러나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며칠 동안 계속 같은 이야기를 하길래 담임 선생님께 말씀을 드렸다. 그럴 일은 없겠지만 지켜봐 달라고. 역시나 그런 행동은 없었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둘째에게 사실이 아닌 얘기를 꺼내는 것은 거짓말을 하는 것이라고 말해주었다. 멋쩍어하는 아이의 반응에 얼굴을 쓰다듬으며 또 다른 일이 생기면 얘기해 달라고 민망함을 감추어버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둘째가 이번에는 밤마다 "엄마, 오늘 자고 나면 뭐 해?" 하고 물어보는 것이다. "어린이집 가지~" 하는 대답에 뿌엥하고 울면서 "왜 맨날맨날 어린이집에 가야 하는 거야~~!!!"하고 서럽게 말했다. 하. 정말 좋으신 담임 선생님을 두었고, 친구들과도 잘 어울리는 편인데 왜 또 등원거부가 시작되나 싶었다. 어린이집 생활이 어떤 게 힘든 것일지 선생님과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고민을 나눴다.
그러나 며칠 뒤 선생님의 키즈노트에서 이런 내용을 봤다.
'둘째가 오늘 등원하면서 울먹이길래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으니 엄마한테 혼났다고 하더라고요. 특별한 일이 있었으면 어머니께서 메모를 주셨을 텐데, 그렇지 않아 둘째를 달래주었어요. 그러니 또 즐겁게 친구들과 놀이를 시작했네요^^'
정말 당황스러웠다. 그날 아침이 생생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둘째에게 화를 낸 기억이 전혀 없었다.
'엥?!!!!!! 그런 일이 전혀 없었는걸요. 왜 그렇게 말했을까요.'
선생님도 답글로 이쯤 되면 둘째가 요즘 관심을 많이 받고 싶어 하는 걸로 생각하자고 말씀해 주셨다. 선생님의 아이도 그랬었다고, 이 시기에 이러는 아이들이 많다고 나를 안심시켰다. 우리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아이의 자연스러운 성장을 응원해 주기로 얘기를 나눴다.
내가 첫째로 컸기에 둘째의 마음을 잘 몰랐나 보다. 둘째를 많이 챙긴다고 생각했지만, 그 아이 입장에서는 아니었던 것 같다. 둘째의 네 살은 너그럽게 모든 걸 받아주는 편인데 첫아이 때는 그러지 못했던 게 미안해 첫째에게 더 잘해주려고 했었는지도 모른다. 또, 요즘 생떼를 부리고 소리치는 둘째에 비해 여섯 살 첫째는 너무 말을 잘 듣고, 한글도 그림도 눈에 띄게 잘하는 것들이 많아지니 칭찬해 주는 날이 많았다. 그래서 더 둘째가 존재감을 드러내려 했던 것 같다. 그날 유심히 둘째를 관찰했다.
무엇이든 다 내 옆에서만 하고 싶어 했다. 어떤 것이든 다 내가 해주길 바랐다. 아빠와 할머니가 계셔도 밥 먹여주는 것도 엄마가, 양치도 엄마가, 책 읽어주는 것도 엄마가. 오죽하면 내가 세수할 때까지 옆에서 화장실 문을 꼭 닫고 기다리기도 했다. 이렇게 나의 관심을 받고 싶었던 거구나 생각하니 새삼 둘째가 달라 보였다. 내가 더 표현을 많이 해줬어야 했구나.
마침 선생님께서 방학 때 즐거웠던 일들을 사진이나 영상으로 보내주라고 하셨다. 평소에는 늘 첫째에게 먼저 들이밀던 카메라를 이번 주 내내 둘째를 위해 돌아가는 것처럼 움직여주었다. 그러니 더욱 둘째의 성장이 눈에 보였다. 키즈카페에서 얇고 긴 평균대 위를 몇 번의 노력 끝에 스스로 성공시켰고, 자전거 페달을 자신의 힘으로 돌리기도 했다. 형아 친구들 사이에서도 밀리지 않고 끼어 놀고, 큰 누나들과도 신나게 물미끄럼틀을 탄 둘째.
이제 둘째에게 더욱 관심을 가져주고 표현해 주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 집 규칙은 홀수인 날은 형아가, 짝수인 날은 동생이 먼저인데 짝수였을 때 둘째에게 유리한 상황들을 은근슬쩍 만들어주는 건 어떨까. 이러면 또 첫째가 억울하려나. 아이 둘을 키우다 보니 내 나름 노력한다고 하지만 공평하게 대하는 게 참 어렵다. 그래도 똑같이 사랑하는 마음을 듬뿍 표현해 줘야지. 아니다, 각자가 원하는 사랑 그릇을 충분히 채워준다는 표현이 더 적합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