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11. 이 분들을 만난 건 하느님의 축복이다 - 부부 관계
예쁘고 단정한 옷을 꺼내 입고 약속시간보다 10분 먼저 식당에 도착했다. 한쪽 넓은 유리창밖에 장독대를 시원하게 두드리는 물줄기를 바라본다. 부모님을 기다리는 시간은 참 설레고 편안하다.
부모님을 알고 지낸 지 10년이 되었다. 남편과 연애하던 시절, 꼭 소개해주고 싶은 부모님이 있다고 했다. 가톨릭의 '선택주말'이라는 프로그램 안에서 봉사하며 인연을 맺은 부모님이었다. '선택주말'은 2박 3일의 피정 안에서 미혼청년들이 자신의 상처를 어루만지고 돌아보며 하느님의 사랑을 듬뿍 느낄 수 있는 프로그램이다.
선택부모님이라고 부르는 우리의 롤모델이신 어머니 아버지는 서로를 1순위로 생각하며 존중과 사랑의 모습을 보여주신다. 서로 존댓말을 사용하시고(그래서 우리도 존댓말을 쓰게 됐다는) 60대 후반을 향하고 있음에도 책을 엄청 읽으시고, 독서모임을 이끄시고. 끊임없이 배움을 놓치지 않으신다. 충분히 주식이나 부동산으로 재력을 쌓을 수 있으셨음에도 지금은 제주의 자연 그대로를 살린 아름다운 정원을 만들어 사람들에게 휴식의 공간을 제공하시는 중이다.
부모님 두 분을 먼저 하늘나라로 보내드린 남편, 따로 사시는 부모님 밑에서 정서적 가장을 맡고 있는 나. 그래서 우리 부부에게 선택부모님이 안 계셨더라면 신혼 초부터 9년이 넘은 시간까지 지금보다 더 많이 헤맸을 것이다. 그러나 사랑으로 서로를 보듬는 부부의 모습을 보고 배우며 지혜를 구하기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요즘 나의 어려움들을 아시고 서귀포에서 제주시까지 일부러 시간 내어 와 주셨던 부모님. 남편도 잠깐 짬을 내어 함께 맛있는 점심을 먹고 티타임을 가졌다. 중간에 먼저 회사로 복귀한 남편에게 미안할 만큼 행복했다. 언제나 부모님과의 대화는 실패한 적이 없다. 그리고 옳다. 삶의 본질을 꿰뚫어주시는 조언 덕분에 항상 힘을 얻는다. 그래서 출산 전에는 부모님 댁에서 저녁 먹고 대화하다 새벽 4시에 돌아온 적도 있었다. (ㅎㅎ)
일이 너무 많은 남편을 보며 스트레스를 아이들에게 풀고 '너희 아빠 때문에!' 하며 뒷담화하기 직전이었던 나는 이 타이밍에 부모님을 참 잘 만났다. 딱 아이들이 요만했던 이 시기에 아버지는 본업 말고도 다른 일을 크게 하시느라 주 5일은 늦게 들어오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머니는 아이들에게 아버지 흉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으셨다고 했다. 독박 육아인 게 힘드셨지만, 남편이 아이들에게 하대 받는 모습은 또 싫으셨다고. 속상하면 직접 말씀하셨지 아이들에게 아빠에 대한 선입견을 씌우지 않으셨다. 아버지도 첫째 딸을 꼭 안아주면서 "아이구~ 내가 두 번째로 사랑하는 딸~~~" 하면서 늘 첫 번째는 어머니셨다고 했다. 진작에 아이들은 내가 저들 사이에서 1순위가 될 수 없구나 하며 포기했다고 말이다. :)
아버지 어머니가 육아와 관련된 이야기도 해주셨는데, 너무 길어 2탄으로 곧 다시 올려야겠다. 우선 지금은 일 때문에 몸이 많이 지친 남편에게 몰빵으로 사랑을 주는 것에 집중하기로. 그래서 어제 아이들에게도 아빠가 늦는 이유에 대해 처음으로 얘기해 봤다. "아빠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 모르지?! 회사에서 훌륭한 일을 해내느라 지금 늦어지시는 거야. 우리가 아빠를 응원해 드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