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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기 Oct 13. 2022

뮤지컬 <디어 마이 라이카> 리뷰

기꺼이 탐험하는 마음으로

현대 뮤지컬 거장 손드하임은 뮤지컬이란 노래를 빌려 이야기를 전하는 예술이라 말했다. 어떤 작품이든, 왜 그것이 “뮤지컬이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적확한 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도 했다. 그 이유는 서사의 기반이 되는 주제의식과 소재가 뮤지컬이라는 장르에 적합해야 관객을 설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일반적인 뮤지컬 작품에서는 소위 말하는 ‘이과 감성’을 자극하는 작품을 만들기 어렵다. 감정을 확연히 드러내야 하는 송 모멘트를 설정하는 것에 어려움이 있고, 2시간 안팎의 극에서 압축적인 서사를 보여주기에는 과학기술이란 다소 밋밋한 소재이기 때문이다. 비슷한 이유로 연극, 창극, 무용극에서도 과학 소재를 자주 다루지 않는다. 


반면에 무대와 비교하여 영화, 드라마와 같은 스크린 매체에서는 수학, 의학, 공학, 물리 및 화학 등을 소재로 하는 작품을 제작하기가 수월하다. 카메라를 사용하여 촬영하기 때문에 사건의 사실관계만 전달하는 건조한 연출을 보여주기에 적합하고, 무대에서 사용할 수 없는 그래픽 효과로 과학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꽤 볼만한 장면을 연출하는 데도 탁월하다.  



연극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이러한 여러 제약에도 불구하고, 무대에서도 과학적 탐구에 관한 이야기를 펼치려는 노력은 많은 연극, 뮤지컬 작품에서 시도되어왔다. 뮤지컬 <시데레우스>, <마리 퀴리>, 연극 <신인류의 백분토론>,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 등이 그 예다. 이 작품들은 상술했던 손드하임의 질문처럼, 왜 우리가 과학의 조명을 무대에 비추어야 하는지 끊임없이 자문하며 만들어졌을 테다. 


뮤지컬 <디어 마이 라이카> 또한 비슷한 시작점에서 출발한 작품이다. 


이 극에서는 광활한 우주에 대한 작은 호기심과 상상,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로 도약하고자 하는 욕망, 타인을 구제하고 나아가 인류의 미래를 선도하려는 신념 등 다양한 정체성을 통해 서로 대립하거나 상생하는 세 인물의 이야기를 그려낸다.  



뮤지컬 <디어 마이 라이카> 캐스트


  

나는 10월 2일, 낮 공연을 관람했는데, 뮤지컬을 이끌어가는 넘버들이 전체적으로 듣기에 좋았다. 극의 흐름에 따라 인물의 감정선을 방해하지 않으면서도 자연스럽게 이야기에 동화되었다. 이를 소화하는 배우들의 능력도 출중했으며, 과학 용어를 적절히 섞어 보편적인 감정을 독특한 방식으로 풀어낸 가사도 인상적이었다. 우주 공간에서의 모험을 연출하기 위해 무중력 상황의 신체 동작을 업스테이지에서 보여주는 움직임들도 재미있었다. 


다만, SF 장르의 이 작품이 극예술로서의 매력도 충분히 가졌는지는 의문이다. 각 장면을 연결하는 서사의 고리는 다소 헐거우며, 인물의 감정이 단선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두 인물의 비밀이 드러나며 가족애를 자극하는 보편적 공감대를 형성하려는 것이 극의 목표 지점으로 보이지만, 결론에 도달하기까지의 전개에서 순행적 구조와 플래시백이 너무 많이 반복되어 몰입하기 어렵다. 


무엇보다 잘 만들어진 SF 창작물은 작가가 과학적 상상을 이야기의 힘으로 극화하여 허구의 세계로 관객을 초대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이 작품은 관객으로서 쉽게 이해하기가 어렵다. 흥미롭다는 감상뿐이지, 그 이상의 무언가에 미치지 못한다. 


‘Science’는 존재하나, ‘Fiction’에 관한 설명이 충분치 않아 작가가 열렬히 탐구한 허구의 세계가 관객에게 온전히 와닿지 않는 것이다. 기본적으로 수십 년 후를 전제로 한 미래를 기반으로 극을 전개하기에, 관객이 원활히 이해할 수 있게끔 이야기의 구조와 세계관을 더 설명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디어 마이 라이카>는 복잡한 서사 전개, 생소한 소재, 시적인 가사 등이 주를 이루어 진행되는 뮤지컬이다. 마치 다양한 재료와 이국적인 향신료로 맛을 낸 요리에 비유할 수 있다. 물론 익숙하지 않은 재료로도 훌륭한 요리를 만들 수 있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는 구성 요소를 한데 모으는 연출의 능력이 미흡하여 평면상의 대본이 입체적으로 살아나지 못해 아쉬웠다. 


주요한 장면을 구성하는 조명과 영상이 어설펐고, 그 때문에 같은 공간에서 다른 시간대를 살아가는 인물들을 보여주어야 하는 장면이 잘 와닿지 않았다. 때로는 기본적인 공간 나누기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지지 않아, 이따금 배우들의 연기까지 난해하게 느껴졌다. 


개인적으로 무대에서 과한 영상을 쓰는 것을 선호하지 않는다. 과한 영상이란, 모든 시각 효과를 전부 나타내어 설명해주는 영상 디자인을 뜻한다. 영상이 모든 것을 보여주면, 관객 스스로가 즐길 수 있는 연극적 상상력은 제한된다. 멋진 영상 효과를 감상하려면 영화라는 좋은 장르를 택하면 된다. 


연극적 상상력이란 무엇일까. 극(劇)이란 애초에 돼지와 호랑이가 칼을 들고 싸우는 것을 형상화한 문자다. 어떻게 돼지가 호랑이랑 칼싸움을 벌일까? 전혀 말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이를 말이 되게끔 만드는 것이 바로 극예술이다. 무대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손짓 하나로 우주가 펼쳐지고, 몇 마디 음악과 대사로 삶의 희로애락이 그려지는 곳이 무대다. 


이 극에서는 영상 효과가 상당히 많이 쓰였는데, 오히려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영역이 줄어든 것 같아서 아쉬웠다. <디어 마이 라이카>에서 줄곧 등장하는 장소들은 미지의 세계다. 그렇다면 관객이 알 수 없는 그곳에 대한 신비로운 호기심을 객석에서 오롯이 즐길 수 있게끔, 빈틈을 활짝 열어주는 것이 더 좋은 접근법이지 않았을까? 


이렇듯 부족한 점도 여럿 보이는 작품이었지만, 창작 뮤지컬 판에서 으레 쓰였던 소재들을 재사용하지 않고, 우주 공간과 과학 이론이라는 새로운 소재를 탐구하여 만들어진 뮤지컬이라는 점에서 <디어 마이 라이카>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우리 예술계에는 더욱 다양한 이야기를 선보일 수 있는 자유로운 환경이 필요하다. 


초연으로 뮤지컬을 올린다는 것에 여러 제약이 있다는 것을 알기에, 이 공연의 창작진이 이곳까지 도달하는 과정은 절대 순탄하지 않았으리라 감히 예측해본다. 재연, 삼연을 거듭하며 단점을 보완하고 극의 질을 높인다면 더욱 좋은 작품이 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미지의 세계를 향해 탐험하기로 기꺼이 마음먹었던 라이카와 벨카처럼, 이 작품도 그렇게 앞으로 나아갔으면.

우리에게는 더 많은 뮤지컬이 필요하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작은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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