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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기 Mar 21. 2023

우리 같이 살아요 - 뮤지컬 '실비아, 살다' 리뷰


뮤지컬 <실비아, 살다>는 미국의 작가 실비아 플라스의 인생을 극화한 작품입니다. 작가는 평생에 걸쳐 글을 토해내야만 합니다. 머릿속을 방황하는 생각을 언어로, 언어 조각을 단어와 문장으로 구성해, 글을 창조하는 것이 작가의 숙명입니다. 실비아는 시대의 억압과 차별에 맞서 뼈에 시린 고통을 활자에 새긴 작가이자, 예술인이자, 여성이었습니다.



이 뮤지컬에서는 사람의 인생을 알 수 없는 목적지를 향해 달리는 기차 여행에 빗대어 표현합니다. 기차의 목적지는 ‘9번째 왕국’입니다. 즉, 삶의 마지막을 향해 끊임없이 달리는 우리는 모두 여행자와 다름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바라지 않은 생명을 얻어 살아갑니다. 마음먹은 뜻대로 흘러가지 않는 것이 인생입니다. 마치 승객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억지로 운행되고 있는 기차와도 같습니다.



기차에 탑승한 실비아는 여러 차례에 걸쳐 비상정차를 시도합니다. 비상정차는 화통을 불태우며 앞을 향해 달려가는 기차를 승객의 의지로 멈추는 것입니다. 허락되지 않은 하차, 이는 자살이라는 용어로도 포장됩니다. 어쩌면 삶은 아주 기나긴 자살의 과정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뮤지컬을 보고 난 뒤, 저는 실비아에게 말을 걸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실비아의 이야기가 끝끝내 자신을 감싸주지는 못했을지라도. 적어도 저에게, 그리고 수많은 이들에게는 따뜻한 목도리가 되어주었다는 것에 감사를 표하며. 진심 어린 인사를 보내고 싶었습니다. 시공간을 넘어서, 아주 간절하게.



이 서간문으로 제 감상평을 대신하겠습니다.










실비아 플라스에게.



당신은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아름다움에 고개를 숙였을 뿐입니다.



나는 실비아 플라스, 당신의 이름을 불러보았습니다. 익숙지 않아 맴도는 영어 발음은 나를 더 슬프게 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소설을 떠올렸습니다. 유리병 안에 갇힌 당신은 분노했습니다. 당신은 분노하면서 글을 썼나요? 그래서 글이 그리도 뜨거웠나요? 그건 누군가에게는 막연하고도 천박한 글로 보였을 겁니다. 하지만 나는 엄청난 계획과 용기가 필요한 글쓰기였다는 걸 압니다. 그 글은 당신이에요. 나도 그런 방식으로 글을 배우고 썼으니까요. 나조차도 불태워버린 체온이 담긴 글을.



당신은 세상의 유한함을 닮을 수 없었기에, 진정으로 거대한 무언가를 붙잡았을 겁니다. 차라리 죽는다고 앓는다고 소리 내지 그랬어요. 울고 불며 고통을 표현하지 그랬어요. 생을 껴안겠다는 결심을, 지리멸렬한 동아줄을 붙잡지 그랬어요. 살고 싶다는 확언조차도 내뱉지 못했던 당신은 대체 무엇이었나요?










난 잔인하게도 살아남았습니다. 무력하고 비통하게도 나는 살아남았습니다. 그래서 당신을 생각할 때마다 나에게는 너무나도 거대한 죄스러움이 자리합니다. 당신의 미소는 냉소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을 더욱 밝게 밝히는 기쁨이었습니다. 그걸 이제야 깨닫습니다. 그러니 부디 용서를 구합니다. 당신의 세상에 그저 발꿈치만 담갔던 그들을, 당신을 업신여겼던 모든 이들을 대신하여 사과합니다. 이제는 당신에게 귀를 기울입니다. 잠자코 듣는 법을 몰라 한시도 자아를 내세우지 않으면 존재할 수 없는 세상의 힘을 따르지 않겠습니다. 구원을 외치면서도 주변을 격려하지 못하는 오만함을 버리겠습니다. 당신 곁에 있겠습니다. 우리 함께 기꺼이 추락해요. 우리는 서로의 거울이기에.



언젠가 거울이 산산이 깨어져도 그 원인이 총이나 균 따위는 아닐 거예요. 그냥 홀로 깨져버릴 테지요. 그래도 거울은 조각들마저 빛나니까, 더 큰 빛을 내어 우주를 밝혀요. 당신의 놀라운 글솜씨로 집요하게 캐물어 주세요. 사람들의 껍데기를 벗겨내 주세요. 나도 말하고 싶었어요. 나도 설득하고 싶었어요. 모두를 설득할 수 없다고 해도, 일말의 희망을 내세우며 계속 살아야 한다고 말할 겁니다. 고집부리고 사랑할 거예요. 우리 더 살아요. 지독하게 살아요, 끝까지. 당신이 살았던 것처럼, 계속 살라고 외치겠지요. 그래서 실비아는 살았다. 그게 결말이니까요. 그러면 당신의 웃음이 나를 더 살게 할 거예요.



당신이 그랬듯 나의 여행도 언제나 혼자네요. 옆자리에 누군가 가만히 앉아 있다 해도, 그는 잠시 왔다가 곧 떠날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요. 서로의 탑승지와 종착지는 정말이지 달라요. 그래서 난 홀로 시간을 보내는 법을 익힙니다. 당신도 그랬겠지요. 작은 유리종 안에서요.



진부한 고독은 사람을 썩어가게 만듭니다. 유리종을 벗어나세요. 그 안에는 늙은 나무뿐이에요. 우리 함께 땅을 벗어나요. 부패한 당신이 저에게 닿을 것을 염려하지 말아요. 죽음이 전염된다는 것을 부러 증명하지는 않겠습니다. 그건 틀렸으니까요. 썩을지언정 소멸하지 않아요. 그러니 마음껏 껴안아요. 죽지 않을 거예요. 당신도 죽지 말아주세요. 나는 진리를 부정합니다. 결말은 선택될 수 있으니까요. 그래서 간절히 기도를 시작했어요.



시작은 그대의 것이었으니. 부디, 끝이라도 나에게 허락해주세요. 끊임없이 반복했어요. 아주 많이. 그러다가 결국, 아멘을 말하는 법도 잊어버렸어요. 아녜요. 내 권능을 포기한 겁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 손을 바라봤어요. 그때, 나는 무한히 존재하는 법을 깨달았습니다. 나를 옭았던 매듭이 풀리지 않아도 괜찮다는 걸. 모든 것의 안녕을 바라게 되는 것을요. 그러니 제발 살아요. 알겠죠? 이제 잘 있어요. 내일 또 만나요. 그리고 나에게 꼭 인사해줘요. 보답으로 나의 일부를 드릴게요. 허물마저 증발하여 하찮아버린 내 살덩이와, 그 위를 감싸주는 당신의 글 조각을. 이마저도 다음을 기약하는 표식으로 간직되기를.




* 원문 링크


https://www.artinsight.co.kr/news/view.php?no=63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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