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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임편 Feb 18. 2021

자신의 장점을 착각할 때 생기는 불상사 (1)

게임 <더 라스트 오브 어스> part 1, part 2

매거진 <만약에 웹소설>은 웹소설이 아닌 콘텐츠(영화, 드라마, 게임 등)를 바탕으로 '만약에 이게 웹소설이었다면 어떻게 편집했을까'를 연재하는 곳입니다. OSMU인 작품이라 해도 결국 각각의 개별 작품으로 보기 때문에, 제가 접한 해당 작품 하나로만 판단합니다.

전체 줄거리는 다루지 않으며 '초반 내용의 초고와 시놉시스'를 받았을 때 편집자가 하게 되는 첫 작업을 중심으로 씁니다. 다만 전체 줄거리가 핵심적인 요소일 경우에는 전체를 다루되 스포일러임을 고지합니다.

편집 스타일은 편집자마다 상이하므로, 본 매거진이 모든 웹소설 편집자의 의견을 대표하지는 않습니다.

댓글로 작품을 추천해 주시면 검토 후 리뷰하겠습니다.


게임계의 명작 중에서도 특히 '갓겜'이라 불리는 작품이 하나 있다.

<라스트 오브 어스> (이하 라오어)라는 아포칼립스물로, 일종의 좀비물이라 보면 되겠다.

GOTY(Game of the Year) 수상까지 했으니 이 게임이 명작이라는 걸 반박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이건 파트1에 한정된 얘기지만, 일단은 이렇게 이야기를 진행하고자 한다.

(참고로 이번 작품은 전체 스토리가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에 부득이하게 결말까지 내용을 다루고 있으니 참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게임성에 대한 건 차치하고, 이 작품이 이렇게 명작 반열로 올라선 게 된 걸 두고 많은 이들이 말하길 '엄청난 스토리' 덕분이라고 했다.

그때마다 난 의구심이 들었다.

뭐가 대단하고 엄청난 스토리라는 걸까.


장르물을 다루는 직업인 걸 차치하더라도 내 입장에서 라오어1의 스토리는 하나도 특별하지가 않았다.

라오어 파트1의 줄거리를 세 줄 요약하자면 이렇다.


좀비가 창궐하던 날, 조엘이 과거에 딸을 잃었다.

수년 후 조엘이 딸 또래의 여자애 엘리를 배달(정말 '배달'이다)하게 된다.

배달을 마치고 보니 조엘은 엘리가 좀비병 치료제를 위한 희생양이 될 것을 알고, 엘리를 노리던 자들을 모조리 죽인다.


익숙한 소재와 클리셰다.

하나도 새롭지 않다.

아무리 이야기 짜임을 탄탄하게 해도 스토리 자체가 식상한 건 부인할 수 없다.


그럼에도 이 라오어1이 명작이 될 수 있었던 건 '몰입력'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장르물에선 당연히 익숙한 것들을 차용하게 되는데, 그때 주 소비층의 니즈나 취향 역시도 반영을 하게 된다.

그때 빠지지 않고 한 번씩 나오게 되는 게 이 부성 판타지, 모성 판타지 같은 부류다.

다만 이런 걸 쓸 경우에는 신파가 결합되는 경우가 많은데 라오어1은 이 부분이 참신했다.


신파 개나 주라 그래.


정말 이렇게 축약할 수 있다.

엘리가 위험에 빠졌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조엘은 어제까지 동료였던 자들도 전부 죽여버린다.

한 치의 망설임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

딱히 엘리를 자신의 딸과 동일시하며 과거의 망령에 절절 매는 모습도 보여주지 않는다.


인류의 구원은 모르겠고, 난 당장 애를 살려야겠어.


쿨하다.

바로 이 부분이 유저들의 '뽕'을 차오르게 하는 요소다.

유저가 조엘에게 이입하는 게 극대화되며 그 순간만큼은 정말 유저와 조엘이 하나가 되어 '강한 아빠'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조엘과 엘리가 특별한 관계를 가지게 되기까지의 과정도 쿨하기 그지없다.

서로 사연 풀며 눈물 짜지 않는다. 서로 아빠가 되어주겠다느니, 딸이 되어주겠다느니 하는 말도 없다.

함께 적들과 싸우고, 티키타카를 하며, 동료이자 가족으로서 여정을 진행한다. 

그런 애가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니 뭐니 하며 개죽음당하게 생겼으니, 조엘은 고민도 없이 총을 든 것이다.


이 쿨한 몰입력이 바로 라오어1의 흥행 요소이자 엄청난 장점이라 생각한다.

라오어1의 장점을 스토리라 꼽는다면, 정확하게 말하자면 '신파 없이 몰입하게 만드는 쿨한 스토리'가 장점이 되는 셈인 것이다.

프롤로그에 조엘의 딸이 죽는 걸로 최소한의 신파와 더불어 조엘-엘리의 감정선이 어떻게 될지 밑밥을 다 깔아놨다.

그러니 뒤에 가서 더 설명할 필요가 없다.


사실 라오어1은 라오어2에서 생기는 문제점을 위해 언급한 것이지만, 그렇다고 이 스토리가 웹소설로서의 가치가 없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차고 넘친다.


웹소설, 특히 판타지나 무협 등은 분량이 방대하다.

하지만 매 화가 알차게 다른 에피소드로 꽉꽉 채워져 있는 것은 아니다.

연재물의 특성에 맞게 글자 수를 맞춰 에피소드별 기승전결을 안배해(개중 아닌 것도 있지만) 놨다고 보는 쪽이 더 적합하다.


라오어1의 스토리를 위에서 세 줄로 축약했지만, 그 안에는 수많은 등장인물들이 나오고 주인공들은 그들과 엮여 이 세계를 설명해 나간다.

주인공들은 유저들의 몰입 대상자인 동시에 이 세계의 안내자이기도 한 것이다.

만약 이 작품을 웹소설로 쓴다면 오히려 작중에 러프하게만 나왔던 부분들을 더욱 밀도 있게 다룰 수 있을지도 모른다.


프롤로그인 좀비병 창궐에서부터 시작해, 조엘과 테스의 이야기, 조엘과 엘리의 이야기, 그리고 파이어플라이에 대한 것까지, 라오어1은 세계관 소개와 인물들을 적절히 배치해 유저들이 따라갈 수 있게 해 놓았다.

내용상 가감할 부분이 있을지는 몰라도 웹소설로서 편집점을 잡을 데가 그다지 없단 뜻이다. 


위에서 계속 말했듯이 이 작품의 장점은 '쿨함'에 있다.

이 멸망해 버린 세계를 놓고 주동인물이 질질 짜거나 감정 소모를 한껏 하게 만든다거나 해버린다면, 그 순간부터 라오어1은 그저 흔하게 보던 신파물에 지나지 않게 되어 버릴 것이다.

웹소설로 쓴답시고 친절하게 인물들마다의 사연을 풀고 그들의 감정선을 줄줄 늘어 놓는다면, 그건 이 작품의 장점을 냅다 던져버리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놀랍게도 라오어의 제작사인 너티독이 스스로 이 일을 해내고야 말았다.


2편에서는 라오어2의 문제점과 더불어 이 스토리가 왜 웹소설이 되기 어려운지, 그럼에도 웹소설로 쓰고자 한다면 최소한 어떤 문제를 수정해야 할지를 말해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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