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만약에 웹소설>은 웹소설이 아닌 콘텐츠(영화, 드라마, 게임 등)를 바탕으로 '만약에 이게 웹소설이었다면 어떻게 편집했을까'를 연재하는 곳입니다. OSMU인 작품이라 해도 결국 각각의 개별 작품으로 보기 때문에, 제가 접한 해당 작품 하나로만 판단합니다.
전체 줄거리는 다루지 않으며 '초반 내용의 초고와 시놉시스'를 받았을 때 편집자가 하게 되는 첫 작업을 중심으로 씁니다. 다만 전체 줄거리가 핵심적인 요소일 경우에는 전체를 다루되 스포일러임을 고지합니다.
편집 스타일은 편집자마다 상이하므로, 본 매거진이 모든 웹소설 편집자의 의견을 대표하지는 않습니다.
댓글로 작품을 추천해 주시면 검토 후 리뷰하겠습니다.
(양쪽 손목에 생긴 직업병 때문에 뒷부분 연재가 늦었습니다. 양해 부탁드리겠습니다.)
앞서 라오어1의 장점과 웹소설화 가능성에 대해서 얘기했다.
하지만 사실 대박은 어디서 어떻게 날지 모르므로, 감히 라오어1이 웹소설화를 한다 해도 그게 명작일 거라거나 엄청난 흥행작일 거라는 말은 할 수 없다.
굳이 말하자면 웹소설화를 하기에 적합한 요소를 갖추고 있다고 보는 쪽이 적절할 것이다.
1편에서 라오어1의 장점은 몰입력에 있다는 얘기를 했다.
그리고 그보다 앞서 라오어1의 장점을 단순히 스토리라고 말하기 어려운 이유에 대해서도 언급을 했다.
누군가에겐 정작 그 스토리 자체가 명작의 요소일 수도 있겠지만, 장르물을 다루는 사람 입장에선 그러기가 어렵다는 의견이었다.
그리고 이 장르물을 다루는 사람에는 제작사 너티독의 사람들 역시 들어간다.
사실 내부 사람이 아닌 이상에야 이들이 라오어2를 이렇게 만든 이유에 대해선 다 알기 어렵겠지만 단순히 '에라 모르겠다'인 의도가 아니었다는 전제하에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자칫 신파일 수 있는 부녀 코드를 쿨하게 풀어낸 것이 라오어1의 장점이었다.
그런데 너티독은 뭔가를 오해했던 모양이다.
그들은 어쩌면 혹자들이 찬양했던 것처럼 자신들이 정말 명작 '스토리'를 만들었노라고 착각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라오어2에서는 더욱 어깨에 힘주고 스토리와 설정에 공을 들인 게 아닐까.
(스포일러)
라오어1의 주인공인 조엘과 엘리가 등장하지만 조엘은 초반에 아주 허무하게 죽어버린다.
과거에 엘리를 구하기 위해 벌였던 그의 행동이 죗값으로 돌아온 셈이었다.
그리고 그 조엘을 죽인 사람은 라오어2의 주인공인 애비다.
라오어2는 이런 애비의 사연을 풀어내며 엘리가 복수귀가 되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런 끔찍한 상황 속에서 유저는 엘리와 애비를 둘 다 플레이하게 된다.
유저는 플레이 캐릭터를 선택할 수 없으며 제작사가 의도한 대로만 플레이를 해야 한다.
이렇게 플레이하다 보면 엘리마저 비호감으로 바뀌고, 종국에 가서는 내심 '이럴 거면 그냥 다 죽어라' 하는 생각도 든다(개인적인 감상).
전작 주인공을 애지중지 키워놨더니 유저 손으로 이제 죽이게 만든다니 환장할 노릇이다.
내가 만약에 이런 시놉시스를 받아보게 된다면 작가한테 당장 말할 것이다.
"정말 쓰시게요?"
전작 초대박을 친 작가가 차기작이라며 내민 원고니 사실 내가 거절할 순 없을 것이다.
하지만 1에서 그렇게 쿨하게 만들어 놓은 주인공을 2에서는 초장부터 죽이다니, 담당자 입장에선 눈앞이 정말 캄캄해진다.
권할 만한 사항은 아니지만 물론 죽일 순 있다.
창작은 어디까지나 작가의 영역이니까.
하지만 최소한 죽음 직전에 화려하게 불타오르게라도 만들어 주는 게 암묵적인 룰 아니던가.
라오어2는 라오어1 주인공인 조엘에게 그런 비장한 죽음의 기회마저 빼앗고 허무하게 머리를 깨는 것으로 끝내 버린다.
그런데 그것도 모자라 조엘의 머리를 깬 애비가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이라 한다.
심지어 엘리도 주인공이니, 스토리를 진행하며 이 두 명의 밸런스를 맞추기까지 해야 한다.
작가가 대단한 명작 스토리를 쓰겠다는 욕심은 알겠지만, 안타깝게도 이 밸런스는 처음부터 무너져 있다.
고로 이대론 웰메이드가 이미 물 건너갔다.
주인공이 꼭 한 명일 필요는 없다.
하지만 여럿이 될 경우엔 이들의 비중과 역할에 대해 당신은 필수적으로 고민을 해야 한다.
누군가가 부각이 될수록, 누군가는 존재가 희미해질 수도 있다.
그러면 당신이 아무리 '두 명의 주인공'을 내세웠다 해도, 독자들 사이에선 어느새 주연과 주조연쯤으로 그들의 역할이 나뉘게 될지도 모른다.
라오어1에서 이미 엘리는 주인공이었다.
그러니까 라오어2에 등장한 애비는 엘리와 '함께' 주연이 된 시점에서 이미 그 밸런스가 깨져 버렸다.
엘리는 이미 유저들과 1에서 충분히 친밀함을 형성했고, 자신의 사연과 성격 등을 충분히 그들에게 어필했다.
하지만 후발주자인 애비는 그럴 시간도 없이 라오어2에서 엘리의 복수 대상자로 등장했다.
사연이 있다곤 하는데, 이렇게 등장해 버리면 애비의 사연을 궁금해하기가 힘들어진다.
이미 비호감이라 그 서사를 알 의지를 상실하게 되는 것이다.
이제 내가 작가한테 권할 수 있는 건 두 가지이다.
정말 어떻게든 조엘은 죽여야겠고, 어떻게든 애비는 넣고 싶다면 양자택일을 하라고 할 것이다.
1. 애비를 메인 빌런으로 등장시킨다.
라오어2를 플레이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아마 애비는 이미 충분한 빌런이겠지만, 적어도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위치에서 봤을 땐 안타깝게도 반동 인물보단 주동인물에 가깝다.
라오어2가 웹소설화가 된다면 이야기는 철저하게 엘리 시점에서 진행하되, 엘리의 행보에 애비를 놓는 것을 추천한다.
그렇게 된다면 애비의 사연은 최소화되고, 그녀가 속해 있던 집단의 이야기는 기존보다 디테일이 삭제될 것이다.
이 노선은 1에서 독자들이 조엘과 엘리를 통해 쌓았던 유대감을 쭉 이어갈 수 있다. 즉 이야기가 연장이 된다는 뜻이다.
그리고 빌런인 애비를 통해 깔아놓은 떡밥들을 엘리가 회수하며, 작가의 주제의식을 보여주는 게 가능해진다.
2. 조엘과 엘리를 삭제한다.
이건 모험적인 시도다.
물론 이 시리즈에서 이 두 사람을 삭제하는 건 아니다.
다만 라오어2 에피소드에서는 애비가 메인이니 애비의 사연을 쓰는 것이다.
이 노선은 라오어3가 있다는 전제하에 쓰는 스토리다.
꼭 이야기의 시점이 라오어1 때와 같을 필요는 없다.
굳이 말하자면 기존의 게임 라오어2의 전사에 해당하는 만큼, 대과거부터 이야기를 시작할 필요는 없단 뜻이다.
이 노선으로 가게 되면 애비의 캐릭터와 그 주변 인물들에 대한 설명이 충분히 가능해지게 된다.
그리고 전개 중에 애비의 아버지가 과거에 파이어플라이 소속이었다거나 마지막에 인류를 구하려다 죽었다거나 하는 등의 떡밥을 흘리면 완성이다.
이때 절대로 초장부터 애비 아버지가 조엘 때문에 죽었다고 노출해선 안 된다.
초장부터 이게 나와 버리면 이미 독자들은 애비에게 정 뗄 가능성이 농후해진다.
(시리즈물의 맨 처음에 나온 주인공이 가장 강력하다는 것을 우리는 늘 상기해야 할 필요가 있다.)
애비가 작품 내에서 모험을 하며 그토록 쫓고 있는 사람이 누군지는 이야기의 끝에 알리는 게 가장 깔끔하다.
라오어1에서 이어지는 이야기인 만큼 독자들은 아마 이쯤 되면 '설마 조엘이야?'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조우는 라오어3에서 본격적으로 이뤄지게 되고, 독자들은 엘리와 애비의 안타까운 대치를 지켜보는 게 가능해질 것이다(물론 다른 양상도 가능해지겠지만).
편집자로선 솔직히 안정적인 1번을 추천하지만 작가가 2번이라도 받아들여 쓴다 하면 그것만으로도 아마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가슴을 쓸어내릴 것이다.
장기적인 시리즈물로 고려한다면 2번도 괜찮다.
작가의 세계관을 좀 더 폭넓게 알릴 수도 있고, 새로운 유형의 인물들도 소개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나중에 엘리와 애비가 반드시 대척점에 서게 된다면 두 주인공의 밸런스 조절을 위해서도 좋은 방법이다.
다만 그럼에도 2번이 모험인 이유는 작품의 흥행성을 보장하기가 어려워서이다.
보통 시리즈물이면 1부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기반으로 2부를 찾게 된다.
그런데 세계관만 공유했을 뿐, 예전의 주인공들이 아닌 새 인물들이 나와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면 독자들 반응은 '?' 이렇게 되기가 쉽다.
방대한 세계관을 즐기는 독자들은 아마 괜찮을 것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주인공이 나오지 않는 걸 못 견뎌하는 독자들이 훨씬 많기에 이 부분이 문제가 된다.
당장 나만 해도 그렇다.
20년 전쯤 <드래곤 라자>를 정말 재밌게 읽고서, 후속작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나온 <퓨처 워커>도 열심히 읽었다.
그런데 읽고 나선 허무함을 감출 수 없었다.
내가 찾고 있던 건 오직 전작의 주인공인 후치 네드발뿐이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내게 가장 친숙한 인물이 새로운 모험과 이야기를 안내할 것이라는 기대와는 다르게, 이야기 말미에나 가서야 후치는 한 줄 처리가 되어 나왔다.
심지어 대사로.
그제야 난 이 둘의 이야기가 같지 않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그리고 내가 원하던 방향이 아니었단 것도.
20년 전쯤은 그래도 종이책이 활발하던 때기도 하고, 나름 작가에 대한 의리(?)가 있던 시절이라 한번 보기 시작한 작품은 끝까지 보곤 했다(나만 그랬을진 모르겠지만).
하지만 웹소설은 안타깝게도 초장에 아니다 싶으면 걸러지는 게 대부분이다.
자신의 시간이 가장 소중하기 때문이다.
작품을 열어보고 하나하나 조금씩 파악해서 나중에 취향이 아닌 걸 알게 되느니, 내용을 먼저 다 파악한 뒤에 자신의 취향 작품을 즐기는 쪽으로 바뀌었다.
직관적인 제목과 키워드 태깅이 성행하게 된 것도 바로 이것 때문이다.
이와 관련한 얘기가 길어질 수 있으니 이건 다음으로 미루고, 일단은 돌아와서 라오어에 대한 얘기를 계속하겠다.
어쨌든 라오어라는 이름을 달고 나왔는데 정작 자신이 아는 사람들이 없다면 독자들이 이탈할 확률이 커지게 된다.
기대할 구석이라곤 라오어1과 별개로 라오어2 자체가 하나의 훌륭한 이야기가 되어 명작 소리를 또 듣거나
라오어3에서 1과 2의 내용이 합쳐진다는 정보가 널리 널리 퍼져 이탈 독자들을 다시 불러들이는 것 정도가 될 것이다.
이게 잘된다면 3까지도 문제가 없겠지만, 늘 그렇듯 흥행 여부는 우리가 다 알 수가 없다.
어설프게 유니버스를 구축하다 엎어지기라도 하면 이도 저도 아닌 채 작가는 명성만 다치는 셈이 된다.
그게 편집자인 내가 1번 루트(엘리 중심의 서사)를 추천하는 이유이다.
쉽고, 안전하고, 웬만한 흥행성도 보장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작가가 저 두 노선도 싫고, 기존 게임과 같은 진행을 강행하겠다고 하면 편집자 입장에선 답이 없다.
앞서 말했듯 초대박 작가이니 거절은 못 하겠지만, 1부에서 애정을 갖고 작업했던 작품이 2부에서 죽어가는 꼴을 즐거이 보기도 어려울 것이다.
그냥 이번에 작가도 편집자도 함께 망하고, 나중에 작가가 알아주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
이만큼 쓰고서도 사실 라오어2에 대해 할 말이 더 많이 남아있다는 게 참 안타깝다.
위의 내용은 어디까지나 작가가 본인이 웰메이드 스토리를 쓰고 있다는 착각을 했을 때 시리즈물에서 생길 만한 우려를 쓴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캐릭터 붕괴, 산으로 가는 스토리, 희한한 엔딩, 욱여넣은 메시지 등등 지적할 건 산더미지만 어쨌든 라오어에 대한 건 여기서 글을 마치기로 한다.
어디까지나 웹소설 얘기가 메인이니, 적어도 가장 중요한 이야기라 생각했던 부분이 잘 전달되었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