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임편 Jan 10. 2021

현대 로맨스에서 매력적인 나쁜 남자

영화 <아비정전>

매거진 <만약에 웹소설>은 웹소설이 아닌 콘텐츠(영화, 드라마, 게임 등)를 바탕으로 '만약에 이게 웹소설이었다면 어떻게 편집했을까'를 연재하는 곳입니다. OSMU인 작품이라 해도 결국 각각의 개별 작품으로 보기 때문에, 제가 접한 해당 작품 하나로만 판단합니다.

전체 줄거리는 다루지 않으며 '초반 내용의 초고와 시놉시스'를 받았을 때 편집자가 하게 되는 첫 작업을 중심으로 씁니다.

편집 스타일은 편집자마다 상이하므로, 본 매거진이 모든 웹소설 편집자의 의견을 대표하지는 않습니다.

댓글로 작품을 추천해 주시면 검토 후 리뷰하겠습니다.


오늘 소개할 작품은 왕가위 감독의 초기작인 <아비정전>이다.

1990년에 개봉된 영화로 벌써 30년 전의 작품이지만, 그렇기에 그 시절의 감성과 클래식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겠다.

타계한 지 오래인 장국영이 맘보 댄스를 추는 장면도 볼 수 있고, 그 당시 홍콩 감성을 대표한다 할 수 있는 특유의 물빛 화면을 보는 것도 또한 재미다.

하지만 웹소설이 주제의 중심인 만큼 거기에 포커스를 두고 글을 써보려 한다.



제목에서도 이미 드러났듯,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아비(장국영 분)'다.

이 영화는 끝내 이어지지 못한 네 명(혹은 다섯 명)의 남녀 관계가 다자화되어 그려진다. 

이 관계의 중심에는 아비가 있는데, 이 아비가 오늘 소개할 '나쁜 남자'의 전형이라 할 수 있다.


'나쁘다'의 사전적 의미는 모두가 알 테지만 우리가 흔히 말하는 '나쁜 남자'는 개자식보단 옴므파탈이라 부르는 게 맞을 것이다.

아비에게는 21세기에도 여전히 유용하게 먹히는 나쁜 남자의 설정이 다 들어가 있다.


깊은 관계를 피하는 한량으로 묘사가 되지만 그의 눈은 늘 우수에 젖어 있고, 뭔가 거기엔 사연이 있는 듯한 뉘앙스를 준다. 그 사연을 파고들면 자신의 생모가 저를 버린 것을 알고 양모와 대치하며 비뚤게 큰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양모는 늘 남자를 바꿔가며 만나 속을 앓게 만드는 중이다. 아비는 간신히 양모와의 대치 끝에, 부잣집 사모님으로 추정되는 생모를 찾아가지만 생모는 끝끝내 저를 만나주지 않아 결국 돌아선다.


뭔가 익숙하지 않은가?

소위 말하는 사연 있는 남자의 정석이다.


그럼 이제 이런 사연이 보태진 그의 나쁜 남자다운 면모를 보자.


소려진과 동거 중이던 아비. 하지만 결혼 얘기가 슬그머니 나오자 아비는 정색하며 시선을 돌린다.

소려진: 나랑 결혼 안 할 거야?
아비: 안 해. 


정작 그녀를 꾈 때는 '19XX년 X월 X일 X시 X분, 당신 덕분에 난 이 순간을 기억하게 되었다'고 말한 주제에 결혼 얘기가 나오니 이렇게 단호해진다.

(잠시 샛길로 빠지자면 드라마 <킬미힐미>의 그 유명한 신세기 대사는 <아비정전>의 오마주 아니었을까 싶기도.)


아무튼 설정에 충실하게도 아비는 다른 여자에게도 예외가 없다.

이번엔 새 여자 친구 루루와의 상황이다.


소려진이 아비의 집에 자신의 물건을 돌려받으러 온 상황. 새 여자 친구인 루루는 질투심에 모든 걸 내던지곤 화풀이하며 나가려 한다.

루루: 이 집엔 내 물건이 하나도 없잖아! (정확하진 않음)
아비: 한번 나가면 다시는 못 들어와.


미련 따위는 한 톨도 없는 대사다.

다만 루루가 소려진과 다른 게 있다면, 소려진은 그대로 아비를 떠났지만 루루는 아비 곁에 남는 쪽을 택했다는 점 정도일까.


이 관계에 대해선 할 말이 많지만 어쨌든 여기선 아비 캐릭터를 다루는 게 주니 이제 이 캐릭터로 웹소설을 쓴다고 가정해 보자.


아비의 이 전형적인 사연은 이미 당신이 숱하게 본 영화, 드라마, 소설 등등 가릴 것 없이 다 나왔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캐릭터가 나오는 걸 보면 얼마나 이런 류의 나쁜 남자가 아직도 유효한지를 알 수 있다.

하지만 아비를 웹소설의 남주로 써먹기 위해선 몇 가지를 수정할 필요가 있다.


1. 한 여자와 이어지게 하자.

작중에선 그 누구와도 이어지지 않지만 웹소설은 의외로 난봉이 용서가 되는 세상이 아니다.

노선(?)이 정해졌다면 정착도 할 줄 알아야 한다. 문란함 역시도 여주 만나기 이전으로 한정하는 편이 독자들의 원성을 덜 살 수 있다.


2. 최소한의 직업이라도 주자.

무직인 남주에게 매력을 느낄 독자는 별로 없을 것이다.

물론 '장국영인데요?' 이러면 할 말이 없겠지만 어쨌든 직업에서 주는 이미지는 독자들의 뇌리에 굉장히 크게 작용한다.

정 아비처럼 자유롭고 싶다면 대학생으로라도 설정하는 게 도움이 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허무하던 인생에서 여주를 만나 인생의 목적이 최소한으로라도 생겨야 한다는 것이다.

정말 영화에서처럼 남주가 생모를 찾아 '굴러먹고만' 있으면 독자들이 혀를 차며 여주가 제 팔자 꼬는 거라고 욕할지도 모른다.


3. 폭력 금지, 혹은 최소화하자.

아비의 막나가는 삶은 난봉에 국한된 게 아니다 보니 주먹도 자유롭게(?) 움직이는 편이다.

그 주먹질에 이유가 없는 건 아닌데, 마땅히 폭력에 당위성을 준다기에도 애매한 수준이다.

폭력은 당연히 어떤 식으로든 정당화될 수 없는 부분이지만 어쨌든 이 장면을 쓴다면 적당히 미화할 필요는 있다.

최소한 지면에 노출되는 부분에선 적당히 멱살 잡고 주먹 한 번 갈기는 선에서 끝내자.

그 이상 하려면 장르 변경을 고민해 보는 게 좋다.

(하다 못해 로판만 가도 허용 범위는 좀 더 넓어진다.)


4. (결말 스포일러) 새드엔딩보다 최악인 배드엔딩은 피하자.

요즘은 소위 말하는 열린 결말도 환영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하물며 새드엔딩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거기에 주인공이 죽는 배드엔딩까지 뜨면 독자들의 항의 메일이 폭주할지도 모른다.


5. 위의 사항은 모두 참고만 하자.

이건 어디까지나 편집자의 제안에 불과하다.

창작은 작가의 권한이므로 편집자가 관여할 부분이 아니다.

다만 당신이 쓴 글이 소소한(?) 사유로 평가절하되는 것을 막으려는 참견 정도로 기억하면 좋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베티 블루 37.2> 같은 '미친 사랑'을 주제로 쓴다면 정말 위에서 조언한 내용은 전부 쓰레기통으로 직행해야 한다(애초에 그건 웹소설화할 엄두도 안 날 것 같지만).


나쁜 남자는 아마 앞으로도 유효한 캐릭터로 쓰일 것이다.

인간 군상이 아무리 다양해도 결국 우리가 받아들이는 매력적인 캐릭터는 몇 가지로 국한되어 있으니 어쩔 수 없는 부분인 거 같기도 하다.

심지어 웹소설 주인공이면 도식화된 설정들이 있어 더 거기서 거기인 느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이왕 다들 똑같이 쓸 거라면, 그래도 개중에선 잘 쓰고 재밌게 쓰는 게 작가에겐 당연히 좋을 것이다.

혹시 당신이 '나쁜 남자'의 설정에 감을 못 잡거나 헤매고 있다면 아비정전의 아비가 좋은 참고가 되지 않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등장인물도 다이어트가 필요해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