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의 격랑 속에서 자산 가격이 비정상적으로 치솟고 이내 허무하게 무너지는 '버블'은 마치 자연재해처럼 느껴질 때가 많다. 하지만 William Quinn과 John D. Turner가 함께 쓴 책 『버블: 부의 대전환 (Boom and Bust)』을 통해 이 현상은 단순히 우연이나 예외적인 사건이 아니며, 오히려 인간의 심리, 사회적 내러티브(narratives), 그리고 경제 시스템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반복적으로 비롯되는 역사적 패턴임을 인식할 수 있다. 아울러 지난 300년간 세계를 뒤흔든 버블의 역사를 통해 우리가 다가올 경제적 전환기와 자산 버블에 어떻게 현명하게 대처해야 할지 날카로운 통찰을 얻을 수 있다.
버블의 연대기: 반복되는 패턴과 그 속의 규칙
이 책은 인류 역사에 등장한 최초의 버블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파리, 런던, 뉴욕, 도쿄, 실리콘밸리 등 전 세계 각지에서 터진 거대한 호황과 폭락의 이야기를 체계적으로 분석한다. 저자들은 이러한 버블이 반복되는 패턴을 ‘시장성’, ‘자본’, ‘투기’라는 세 가지 핵심 요소로 설명하며, 이를 통해 ‘버블 트라이앵글’이라는 독창적인 분석 틀을 제시한다.
‘시장성’은 특정 자산이나 산업이 얼마나 많은 수요와 관심을 유발하는지를 나타낸다. 새로운 기술, 혁신적 아이디어, 정책 변화 등으로 인해 시장에서 해당 자산의 성장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커지면서 투자 열기가 확산된다. 시장성이 높아지면 투자자들이 몰리면서 자산 가격이 급등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된다.
‘자본’은 투자에 실제로 투입되는 자금의 규모와 유동성을 말한다. 경제 성장이나 금융 완화 정책 등이 풍부한 자본을 투자자들에게 공급해 버블 형성 가능성을 높인다. 충분한 자본 공급 없이는 어떤 자산도 버블을 형성하기 어렵다.
‘투기’는 시장 참여자들이 해당 자산의 내재가치보다는 가격 상승 가능성에만 집중해 단기 차익을 노리는 행위를 말한다. 투기 심리가 확산되면 자산 가격이 실질 가치에서 크게 벗어나 비합리적으로 상승하게 된다. 군중심리와 과도한 낙관, FOMO 등이 투기를 촉진하는 주요 심리적 요소이다.
이 세 가지 요소가 결합해 상호작용하면서 버블이라는 경제적 현상이 발생하며, 어느 한 요소라도 부족하면 버블이 형성되기 어렵다고 한다.
책의 흐름은 버블의 양면성(긍정적/부정적 영향, 투자자의 심리)에서 시작하여, 버블의 발생과 붕괴 과정, 그리고 권력자, 언론, 정부, 개인 투자자가 각기 어떤 역할을 하는지를 분석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어서 18세기 초 남해 버블(영국)과 미시시피 버블(프랑스), 19세기 영국의 철도 투기 열풍, 중남미 채권 버블, 19세기 중반 유럽의 자전거 버블, 1929년 미국 대공황, 1980년대 일본 버블 경제, 2000년대 닷컴 버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같은 거대 버블 사례들을 자세히 살펴본다. 마지막으로 현재와 미래에 버블이 만들어지는 구조와 대처 방안에 대한 실질적인 조언을 건네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사례들을 살펴보면, 버블은 단기적인 경제 혼란을 야기했지만, 동시에 신기술과 산업 구조의 발전을 촉진하거나 구조적 재편을 가져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예를 들어, 18세기 남해 버블과 미시시피 버블은 근대적인 금융 상품과 자본 시장을 대중화하고 주식회사 구조와 공개 시장 운영의 토대를 마련하며 산업혁명의 금융 환경을 조성하는 데 기여했다.
19세기 영국에서 일어난 ‘철도 버블’은 산업혁명의 핵심 기술이었던 철도 인프라 건설에 막대한 자본을 유입시켰고, 이로 인해 철도 관련 산업이 급성장하며 상품 유통과 시장 확대를 가능하게 했다. 비록 과잉 투자와 투기 심리로 인한 붕괴를 겪었지만, 철도는 기술 혁신과 산업 발전의 중요한 동력이 되었다.
또한, ‘자전거 버블’은 자전거 제조 기술과 디자인 혁신을 지속시키며 대중적인 교통수단과 스포츠 산업의 성장을 이끌었고, 이는 훗날 자동차 산업과 도시 교통 인프라 발전의 밑거름이 되었다.
현대에 들어서는 1980년대 ‘일본 버블 경제’가 금융과 부동산 산업을 크게 키우고 인프라 투자를 촉진했지만, 붕괴 후 장기 불황을 야기했다. 이 버블은 세계적인 영향을 끼쳤는데, 단순한 부의 축적보다 금융 건전성과 혁신역량 강화가 더 중요하다는 교훈을 남겼다. 이 버블의 파괴(bust) 과정에서 성장 동력이 기술 집약 산업이나 IT 분야로 이동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후 일어난 ‘닷컴 버블’은 인터넷 기반 기술과 스타트업에 대규모 투자를 불러와 구글, 아마존 같은 혁신적인 기업들이 성장하고 살아남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했다. 버블 붕괴 이후에도 인터넷, 모바일, 클라우드 컴퓨팅, 온라인 결제 등 핵심 IT 인프라와 비즈니스 모델이 계속 발전하며 실질적인 수익 구조를 갖춘 기업들 중심으로 산업이 재편되었다.
이러한 사례들을 분석하면서, 저자들은 누가 버블로 이익을 얻고 누가 손실을 입었는지, 그리고 정치권력과 언론이 버블을 부추기는 데 어떤 역할을 했는지, 버블의 구조적 반복성을 깊이 있게 파헤친다. 버블이 때로는 혁신을 낳기도 하지만, 대부분 사회적·정치적 대가를 치르게 한다는 점 또한 분명히 한다. 정부나 개인 투자자 모두 자본 시장, 투기 심리, 유동성 증가 메커니즘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피해자가 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반복되는 역사 속에서 미래를 읽다
『버블: 부의 대전환』을 읽고 나서 감명 깊게 얻은 것은, 버블이 시장의 호황과 붕괴가 특별한 현상이 아니라, “인간의 심리와 사회적 이야기, 그리고 경제 시스템의 구조적 문제 때문에 반복해서 일어나는 현상”이라는 깨달음이다.
남해 버블, 닷컴 버블, 일본 버블 경제 같은 굵직한 사건들을 따라가다 보면, 자본주의 시장에서 ‘반복되는 투기 심리’와 ‘넘쳐나는 돈의 흐름’, 그리고 그로 인해 갑자기 '부의 주인이 바뀌는 모습’이 명확하게 드러난다. 특히 누가 이야기를 만들어내서 투자 심리를 자극하고, 권력과 언론, 금융 기술이 어떻게 버블을 키우는지에 대한 자세한 분석은 현재 시장을 이해하는 데 중요한 관점을 제시한다.
이 책은 “버블이 무조건 부정적인 결과만 가져올까?"라는 질문에 대해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시각을 보여준다. 때로는 버블이 새로운 기술이 퍼지거나 자본이 유입되는 것을 촉진하여 혁신과 사회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는 점을 인정하며, 위험과 기회 사이에서 균형 있게 생각할 수 있는 폭넓은 시야를 제공한다.
지금 우리가 버블을 키우고 있지 않을까?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전례 없이 돈이 많이 풀리면서 버블의 위험성은 우리에게 더욱 현실적인 문제가 되었다. 책을 읽고 나서, “시장의 과열 신호와 역사적인 패턴을 냉정하게 바라보는 시각이야말로 변화의 물결 속에서 살아남고, 다가오는 기회를 잡는 기준이 되지 않을까”하는 각성을 해본다. '지금이 버블이냐, 아니냐'라는 질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가 버블을 잉태시킨 그럴듯한 이야기에 현혹되어 판단력을 잃을 수 있다는 ‘경계심을 갖는 태도’라고 생각한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 세계 각국은 경기침체를 막기 위해 금리 인하, 대규모 양적완화, 재난지원금 등 전례 없는 유동성 확대 정책을 펼쳤다. 이로 인해 2021~2022년 주식, 부동산, 가상자산 등 광범위한 자산시장에 자금이 쏠리면서 가격이 단기간에 폭등했고, 대표적인 기술주(미국의 FAANG 등)와 성장주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2022년 이후 각국 중앙은행의 물가 억제를 위한 금리 인상과 통화 긴축으로 일부 자산가격이 조정되기도 했지만, 지금도 여전히 풍부한 유동성이 대기중인 상황이다. 단기 투자 심리에 따른 단발성 버블 위험뿐 아니라, 대기중인 유동성과 시장 기대 심리가 촉발할 잠재된 장기적 버블 우려가 여전하다.
결국 코로나 이후 쌓여온 버블은 “급격한 유동성 확장→자산시장 급등→정책 전환→불안정한 조정”을 거쳐왔지만, 여전히 실물경제와 금융시장의 주요 리스크로 남아 있다고 본다.
시장의 변동성이 커지는 이 시대에, 『버블: 부의 대전환』은 투자자뿐만 아니라 경제와 사회의 흐름을 이해하고 싶은 모든 사람에게 ‘세상 일의 겉과 속’을 읽어내는 눈을 기르는 데 도움이 될 필독서로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