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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배터리 공장 불법 취업 사태, 누구를 탓할 것인가?
지난 9월 5일, 조지아주에 위치한 현대-LG에너지솔루션 합작 배터리 공장에 미국 이민세관단속국(ICE) 요원들이 들이닥쳐 약 300여 명의 한국인 근로자를 체포했다는 소식은 충격적이다. 이들은 대부분 전자여행허가제(ESTA)나 단기 상용·관광비자(B-1/B-2)로 입국하여 공장 건설 현장에서 용접, 배관 등 불법적인 노동 행위를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사건을 단순히 미국의 '한국 기업 길들이기'나 '푸대접'으로 치부하며 감정적으로 대응하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외면하는 단편적인 시각에 불과하다. 이번 사태는 예고된 인재(人災)였으며, 그 근원은 속도와 성과에만 매몰되어 기본과 원칙을 무시해 온 우리 기업의 낡은 관행과 이를 방조한 정부의 무책임, 그리고 사회 전반의 기본 불감증에 있다.
반복된 경고와 예견된 참사
이번 조지아 공장 단속이 결코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미국 당국의 경고는 이미 수차례 명확하게 전달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2020년 6월, 같은 조지아주에 건설 중이던 SK이노베이션(현 SK온) 배터리 공장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당시에도 33명의 한국인 근로자가 동일한 혐의로 체포되어 추방당했다. 이는 미국 정부가 자국의 노동법과 이민법을 엄격히 적용하겠다는 명백한 신호였다.
이후에도 애틀랜타 하츠필드-잭슨 국제공항 등 주요 공항에서는 한국발 대규모 건설 기술자들의 입국이 무더기로 거부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했다. 미 국무부와 주한미국대사관은 여러 차례에 걸쳐 ESTA 및 B-1/B-2 비자를 통한 미국 내 육체노동은 명백한 불법임을 공지하고, 이를 위반할 경우 입국 거부, 추방, 향후 비자 발급 제한 등의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고 경고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관련 기업들은 이러한 경고를 무시했다. 단기적인 비용 절감과 공기(工期) 단축이라는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불법적인 인력 수급이라는 위험한 줄타기를 계속해 온 것이다. 이는 명백한 기업의 도덕적 해이를 넘어, 미국의 공권력에 대한 도전이다.
'빨리빨리' 문화와 정부의 직무 유기
이러한 사태가 반복되는 근본적인 원인은 무엇인가? 첫째, '빨리빨리 문화'로 대변되는 한국 특유의 속도전 경영 방식이다. 특히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과 같은 미국의 정책적 인센티브를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기업들은 무리하게 공장 완공 시점을 앞당기려 경쟁했다. 이 과정에서 숙련된 현지 인력을 충분히 확보하고 교육할 시간을 갖기보다, 한국에서 손발을 맞춰 온 협력업체 인력을 불법으로 동원하는 손쉬운 방법을 택한 것이다. 이는 과정의 정당성보다 결과를 우선시하는 전근대적 경영 방식이 21세기 글로벌 스탠더드와 어떻게 충돌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둘째, 정부 부처와 현지 외교 공관의 안일한 대처와 직무 유기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산업통상자원부나 고용노동부와 같은 주무 부처는 국내 기업의 해외 진출을 독려하고 지원하는 데만 집중했을 뿐,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법률적 리스크, 특히 현지 노동법 및 이민법 준수 문제에 대해서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었다. 현지 영사관 역시 교민 보호라는 본연의 임무를 망각한 채, 수년간 이어진 불법 취업 문제를 인지하고도 선제적으로 계도하거나 본국에 심각성을 보고하고 대책을 촉구하는 데 소홀했다. 이는 기업의 '탈법'을 정부가 사실상 '묵인' 내지 '방조'한 것과 다름없다.
국민적 각성과 체질 개선이 시급하다
결론적으로 이번 사태의 책임은 '미국이 너무 심하게 우리를 대한 점'에도 있지만, 근본적인 책임은 우리 내부에 있다. 단기 실적에 매몰되어 불법을 자행한 기업, 이를 감독하고 바로잡아야 할 책임을 방기한 정부, 그리고 이러한 문제에 대해 '국익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며 관대했던 사회적 분위기 모두가 공범이다.
이제는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생각, '결과만 좋으면 과정은 문제없다'는 식의 낡은 성공 방정식을 우리 주변에서 폐기해야 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활동하는 기업이라면 그에 걸맞은 수준의 법규 준수와 윤리 의식을 갖추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다. 정부 또한 해외 진출 기업에 대한 지원뿐만 아니라, 현지 법규를 준수하며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체계적인 법률 지원 및 관리 감독 시스템을 구축해야 할 의무가 있다.
이번 조지아 사태를 미국의 '푸대접'으로 규정하고 반미 감정에만 기댄다면, 우리는 더 큰 문제에 봉착하게 될 것이다. 이번 사건은 우리의 부끄러운 민낯을 직시하고, 기업 경영과 사회 시스템 전반의 체질을 개선하라는 고통스러운 경고다. 이번의 대규모 체포 사태가 일회성 망신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 사회가 기본과 원칙을 바로 세우는 성숙한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