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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앞에 다가온 월세 시대

부동산 시평

by 하얀자작

최근 몇 년 사이에, 수십 년간 서민의 주거 사다리 역할을 했던 '전세' 제도가 쇠퇴하고, 매달 임대료를 지불하는 '월세'가 새로운 임대차의 표준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25년에 사상 처음으로 전국 임대차 거래 중 월세 비중이 60%를 돌파한 것은 단순한 시장 변동이 아닌, 한국 사회의 금융 구조, 가구 형태, 그리고 주거에 대한 인식 자체가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 아닐까 싶다.


전세: 압축 경제성장의 산물


1960년대까지 한국의 보편적인 임대차 형태는 월세였다. 그러나 1970년대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도시화로 서울 인구가 폭증하며 극심한 주택난이 발생하자, 수도권에서부터 전세 제도가 본격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했다.
당시 고도 성장기였던 한국 사회에서 전세는 단순한 주거 계약을 넘어, 제도권 금융이 미성숙했던 시대에 독특한 사적 금융 중개 시스템으로 기능했다. 그 당시 은행 등 금융기관들은 저축을 모아 산업자금 대출로 연결하는 기능에 주력하였기 때문에 개인의 주택 마련을 위한 대출은 우선순위에서 뒤쳐졌으며 그 비중도 매우 미미하였다.
한편 시골에서 일자리를 찾아 서울 등 대도시로 몰려든 근로자들은 임금이 낮아서 주거비용인 월세를 감당하기 어려웠다. 결국 시골의 재산을 처분하여 그 돈으로 전세를 얻어 주거비용 부담을 없애는 수밖에 없었다.
이 시스템의 작동 원리는 명확했다. 임대인은 임차인으로부터 받은 거액의 전세보증금을 통해 사실상 무이자 대출을 받는 효과를 누렸다. 이 자금은 추가 주택을 구매하거나 건설하는 자금으로 재투자되어 높은 수익을 만드는 밑천이 되었다. 임차인은 매달 지출되는 월세 부담 없이 거주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전세의 순환고리는 요즘의 이른 바 ‘갭 투자’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월세의 재부상


2000년대 이후 저금리 기조가 고착화되면서 ‘전세’가 서서히 막을 내리기 시작했다. 임대인 입장에서 전세보증금을 받아 은행에 예치해도 과거와 같은 높은 이자 수익을 기대할 수 없게 되자, 전세의 경제적 유인이 급격히 감소했다. 이러한 경제 환경의 변화는 임대인들이 전세보다 매달 안정적인 현금 흐름을 창출하는 월세를 선호하게 만드는 구조적 동인이 되었다. 이 시기부터 전세와 월세가 결합된 유형인 준월세(보증부 월세) 나 준전세(반전세) ¹ 가 등장하며 임대차 시장이 다변화되기 시작했다. 결국 최근의 정책 변화나 시장 충격이 있기 전부터, 전세 제도는 저금리라는 거시 경제의 흐름 속에서 이미 그 경제적 수명을 다해가고 있었으며, 월세로의 전환은 예견된 수순이었다.
게다가 2022년을 강타한 '빌라왕' 사태로 대표되는 대규모 전세사기 사건들은 임차인들에게 전세보증금이라는 전 재산을 잃을 수 있다는 공포를 심어주었다. 이로써 전세 제도에 대한 신뢰가 뿌리째 흔들렸고, 다가구ㆍ다세대주택 등 비아파트에 전세를 구하는 세입자가 급격히 줄어들었다.


'전세의 월세화'는 2020년대 들어 폭발적으로 가속화되었다. 통계는 이러한 변화를 명확하게 보여준다. 2020년 약 40% 수준에 머물던 전국 월세 거래 비중은 불과 5년 만인 2025년 61.4%로 수직 상승하며 사상 처음으로 60%를 돌파했다. ² 특히 아파트에 비해 전세 사고 위험이 큰 비아파트(연립·다세대 등) 임대 시장에서는 그 비중이 서울에서 76.1%, 지방에서는 82.9%로 전세가 거의 소멸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유형별 월세비중.jpg

통계 상 임대차는 세부적으로 ① 월세(보증금이 월세의 12배 이하), ② 준월세(12~240배), ③ 준전세(240배 초과), ④전세(임대료 없음) 등으로 구분 ¹ 되는데, 이 중 ①~③이 월세에 속한다. 주택 임대차 시장에서 월세라 하더라도, 순수 월세보다는 꽤 높은 보증금이 있는 준월세ㆍ준전세가 주류를 형성하고 있다. 전체 월세 거래의 약 60~70%가 준월세 또는 준전세 형태로, 이는 임대인이 보증금을 통해 리스크를 관리하고 임차인은 월세 지출을 줄여 보려는 시장 변화의 과도기적 특징을 반영하고 있다.
위 표를 살펴보면 ‘월세로의 전환’이 아파트보다 비아파트에서, 그리고 서울보다 지방에서 더 빠르게 진행되었음을 보여준다. 이는 전세 사고가 빈번하거나 주택 가격 변동성이 큰, 상대적으로 임대인의 신용이 취약한 시장부터 전세가 줄어들고 있음을 시사한다.


다가올 월세 시대: 셋집 구하기 힘들어지는 임차인


월세 시대로의 전환은 임차인의 가계에 직접적으로 주거비 부담을 증가시킨다. 전세 거주 시에는 대출 이자를 부담하는 데 비해 월세 시대에는 고정적인 임대료를 지출한다. 2025년8월에 시중은행 전세대출금리가 평균 3.78%인데 비해 ‘법정 전월세 전환율’이 최고 4.5%이니 ³, 전세보증금을 내리는 대신 월세를 내게 되면 약 0.7%에 해당하는 부담만큼 늘게 된다. (예를 들어, 전세보증금 3억원 대출 대신에 월세 지불을 택할 때 부담이 월 18만원 추가)

또한 월세계약은 필연적으로 임차인의 신용을 요구하게 된다. 지불능력이 부족하거나 신용도가 낮은 사람들에게 집을 세놓을 임대인이 줄어든다는 뜻이다. 반대로 보자면 소득이 낮은 사람이나, 신용카드대금 연체 이력이 있는 사람은 셋집을 구하기 힘들어진다. 전세 방식은 임대차 시작 때 맡아놓은 보증금을 기간 만료시 돌려주면 그만인데, 월세 방식은 임대료를 여러 번 연체할 경우 임대인의 자금흐름을 해치거나 심지어 밀린 액수가 보증금을 넘어설 경우 상당한 손해로 이어지기 때문에, 임대인으로서는 임차인을 들이는데 신중할 수밖에 없다.


다가올 월세 시대: 골치 아파지는 임대인


반면, 임대인에게 월세 시대는 새로운 기회와 도전을 동시에 제시한다. 가장 큰 기회는 매달 꾸준하고 예측 가능한 현금 흐름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이다. 상대적으로 수익성이 높으며 안정적인 소득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저금리 시대에 전세보다 훨씬 매력적인 수익 모델이다.

그러나 새로운 리스크가 따른다. 월세 시대의 임대인은 임차인의 임대료 연체, 공실 발생, 그리고 주택의 유지·보수 비용 증가라는 운영 리스크에 직접적으로 노출된다. 특히 임차인이 월세를 미납할 경우 임차료청구소송, 명도소송 등 법적 절차를 진행해야 하는 채권관리 부담도 발생한다. 이는 과거 전세보증금이라는 강력한 담보를 통해 대부분의 리스크를 회피할 수 있었던 '자산가형' 임대인에서, 매달 수익과 비용을 관리하고 임차인과의 관계를 조율해야 하는 '자산운용형' 임대인으로의 근본적인 역할 변화를 의미한다. 이러한 변화는 전문적인 임대 관리 역량이 부족한 개인 임대인들에게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
한편 주택임대를 단순히 시세차익을 얻는 수단으로 접근한 ‘갭 투자자’들에게는 레버리지로써 전세보증금을 활용할 기회가 사라지는 것이다. 물론 은행 대출 등을 이용한 레버리지 투자는 가능하겠지만, DSR 한도, 차입이자 부담 등으로 예전만 하지 못할 것이다.


준월세와 준전세: 과도기적 임대차 유형


현재 한국 임대차 시장의 지배적인 형태는 순수 전세도, 서구식의 순수 월세도 아닌 ‘준월세’ 또는 ‘준전세’이다. 이는 시장 참여자들의 요구가 절충된 한국적 특성을 지닌 과도기 모델이다. 임대인 입장에서는 여전히 상당한 규모의 보증금을 통해 목돈을 확보하고 임차인의 월세 연체 리스크를 헷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임차인 입장에서는 순수 월세보다 낮은 월 임대료를 부담하며 거주할 수 있으며, 전세에 비해 초기 자금부담을 줄일 수도 있다.
앞서 소개한 것처럼 국토교통부의 주택통계에서 월세의 비중이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여러가지 사유로 전세가 줄면서 ‘준월세’나 ‘준전세’가 꾸준히 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임대차 시장이 과거의 전세라는 ‘고액 보증금 모델’에서 점진적으로 벗어나, 앞으로 다른 선진국처럼 ‘보증금을 낮추고 월세를 높이는 모델’로 전환하는 과정에 있음을 명확히 보여주는 현상이다.


다른 선진국들의 주택 임대차 관행


신용이 기본인 시장 : 미국·유럽의 임차인 심사 시스템
미국, 영국 등 서구권 국가의 임대차 시장은 '신용'을 기반으로 작동한다. 임대인은 계약 체결 전 '임차인 심사(Tenant Screening)'라는 절차를 통해 주택 임차인 후보자의 리스크를 사전에 평가한다. 이 과정에는 신용평가기관을 통한 신용점수 조회(Credit Check), 급여명세서나 고용증명서를 통한 소득 증명(Income Verification), 이전 집주인에게 연락해 임대료 연체나 문제를 확인하는 과거 임대 이력 조회(Rental History)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사전 검증을 거쳐 임대료 지불 능력이 부족하거나 문제를 일으킬 소지가 있는 '부적격 임차인'을 사전에 걸러낸다. 이를 통해 임대인의 리스크를 낮춤으로써 높은 보증금 없이도 임차인이 주택을 임차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되는 것이다.


보증의 사회: 일본의 연대보증인 및 보증회사 제도

일본의 주택 임대차 시장은 '보증'이라는 독특한 사회적 장치를 통해 리스크를 관리한다. 임차인은 계약 시 부모나 친척 등 안정적인 수입이 있는 '연대보증인'을 세워야 하는 경우가 많다. 만약 임차 희망자가 연대보증인을 구하기 어려운 경우, 전문 보증회사에 월세의 일정 비율을 보증료로 지불하고 가입해야 한다. 이 구조에서는 임차인이 월세를 연체하면 연대보증인이나 보증회사가 대신 책임을 지게 된다. 이는 개인의 신용을 사회적 관계나 전문 금융기관을 통해 보강하는 방식이다.
또한 계약 시 집주인에게 감사의 의미로 지불하는 '레이킹(礼金)'이라는 관행이 있다. 이는 월세의 1~2달치에 해당하는 액수인데, 나중에 임차인이 돌려받지 못하는 돈이다. 계약 이행을 담보하는 한국의 보증금 문화와는 전혀 다른 임차비용 구조이다.


월세 시대를 대비하자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국 주택임대차 시장은 '보증금' 중심의 사적 금융 모델에서 '현금흐름' 중심의 사용료 모델로 이동하는 거대한 구조적 전환기에 서 있다. 이는 단순히 주택 임대차 계약의 형태가 바뀌는 것을 넘어, 수십 년간 한국 사회의 주거 안정성을 담보하고 자산 형성의 경로를 제공했던 방식이 근본적으로 재편되는 중대한 변화이기도 하다.
10여년간 유지되던 저금리 기조의 퇴장, 1~2인 가구의 지속적인 증가, 그리고 한번 붕괴된 전세 제도에 대한 신뢰 회복 어려움 등을 전반적으로 고려할 때, 월세 중심으로 임대차 시장이 재편되는 것은 일시적 현상이 아니고 꾸준한 흐름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흐름에 맞춰 새로운 주택 임대차 시장 질서가 사회적 부작용을 최소화하며 안정적으로 정착되도록 준비해야 한다.
앞서 본 해외 사례들에 비추어 앞으로 한국 월세 시장이 직면할 과제를 예상할 수 있다. 과거 한국의 전세 시스템은 임차인이 맡긴 거액의 보증금 자체가 가장 확실한 '사후적 담보(ex-post collateral)'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임차인의 신용을 사전에 검증할 필요성이 낮았고, 관련 인프라가 발전하지 못했다. 그러나 월세 시대로 전환되면서 이 안전 장치가 차츰 사라지고 있지만, 미국이나 일본처럼 리스크를 '사전적(ex-ante)'으로 관리할 수 있는 신용평가 시스템이나 사회적 보증 제도는 제대로 갖춰지지 않았다.


앞으로 주택임대 시장에 선진국형 ‘반영구적 주택임대 전문 업체’ ⁴가 출현할 것이며, 기존 임대인의 임차인 모집, 월세 등 계약 관리, 시설 유지보수, 민원 처리 등을 전문적으로 대행하는 주택임대관리업이 새로이 자리잡을 것이다.

이러한 변화 과정에서 대형 임대인이 개별 임차인을 압도하는 시장 왜곡이 생길 가능성이 크다. 막강한 자본력과 시장지배력을 갖춘 임대업체를 적절히 규제하지 못하면, 상대적으로 약한 지위에 있는 임차인들이 일방적으로 불이익을 보게 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주택임대차 표준계약서’를 시의적절하게 정비하여 보급하고, 주택임대차신고제를 확장하여 주택임차 정보(지역별, 주택형태별 임대료 및 보증금, 유지관리비 부담, 공실률 등) 플랫폼을 확장하여 시장 참여자들에게 제공하여야 한다.

또한 임대인을 위하여 ‘임차인 신용조회 시스템’ ⁵을 도입하고, 임대료 연체ㆍ미납 리스크를 헷지할 수 있는 '월세보증보험' 상품을 개발할 필요도 있다.


한편 이 밖에 전세 소멸과 월세 전환 과정에서 주거취약층의 주택 임차가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주거비용도 상당히 커질 것이다. 이에 정부는 공공 임대주택을 다른 선진국 수준으로 확충하고, 주거 위기 가구를 위해 주거급여제도 개선 ⁶을 포함한 ‘주거 상향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아울러 영세 주택임대사업자를 위한 임대료 세액공제, 임대소득세 등의 제도도 미리 점검하여 정비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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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국토교통부, ‘주택통계’, 해당 월.
(2) 서울부동산정보광장 ‘실거래가격정보’의 전/월세 분류 기준. (국토교통부 용어로는 각각 ① 월세, ② 보증부 월세, ③ 반전세, ④ 전세)
(3) 한국은행 경제통계시스템의 기준금리 및 예금은행 대출금리 자료, 주택임대차보호법 시행령 제9조.
(4) ‘민간임대주택에 관한 특별법’에 따른 현재의 ’8년 이상 임대후 매각 또는 분양’ 방식은 변칙적 아파트 (매각)분양 사업에 불과하다. 앞으로 수익성 등 사업 환경이 좋아지면 영구임대 아파트를 건설, 운영할 진정한 민간 주택임대회사가 시장에 등장하여 안착할 것이다.
(5) 임차인의 동의를 전제로 임대인이 월세 지불 능력과 관련된 신용 정보를 합법적으로 조회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말한다.
(6) 주거급여 지급을 결정하는 ‘기준임대료’를 현실화하고 보장률도 높여서, 주거비 과부담 상태에 있는 가구를 더 많이 포용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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