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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정구 Dec 17. 2020

추도사


젊었을 적에 당신은 종종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했었지요. 당신이 그런 얘기를 할 때마다 나는 훌륭하다는 형용사의 속성은 무엇인가 고민하곤 했습니다. 그것은 이상적 자아가 가지고 있는 어떤 것인가요? 어떤 지향으로서만 그것은 존재하는 것인가요? 당신은 좀 더 구체적일 필요가 있었어요. 그랬다면 당신은 ‘훌륭함’에 훨씬 가까운 채로 죽음을 맞이할 수 있었을 거예요.


당신을 무척 사랑했던 어떤 순간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점처럼 찍힌 그 순간들이 수묵화의 그것처럼 퍼져나가는 시간들이 있었구요. 물론 당신을 견뎌내야만 했던 적도 있었어요. 당신은 서툴렀고, 그에 앞서 이기적이고 폭력적이었으니깐요. 당신을 용서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았어요.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그리고 사람은 고쳐쓰는 게 아니다), 라고 말하는 냉소적인 나에게 “사람은 변할 수 있다”라고 주장하던 당신이 맞기를 아주 간혹 바랄 뿐이었습니다.


젊었던 나는 자주 우울했고 드물게 행복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당신이 나와 많이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당시에 나는 죽을 수 있는 용기가 없어서 살고 있을 뿐이라는 열패감에 시달리고 있었고 당신은 어떻게든 살아가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당신을 대단하다고 여겼습니다. 당신의 노력이 발버둥치는 모양으로 보였어도 말이죠. 아름답지는 않았지만 당신이 어떻게 되어갈까 궁금했습니다. 그때는 어떻게든 살아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나요? 왜 그랬나요? 그때 그렇게 중요했던 게 왜 이제는 중요하지 않게 되어버린 건가요. 


평범하고 보편적인 삶을 당신은 혐오했었죠. 그래서 당신이 평범하고 보편적이지 않았었나 돌이켜보면, 꼭 그렇지도 않았습니다. 당신도 그렇게 생각했을 거예요. 죽음을 앞둔 며칠 간 말이죠. 그러나 당신이 당신 삶에 분명히 만족하던 순간들이 있었기를 바랍니다. 당신이 쓴 글이나, 당신이 노력했던 관계나, 당신이 공들였던 순간들, 그리고 그 밖의 예상치 않았던 것들에 대해서요.


앞에서 나는 당신이 훌륭한 사람은 아니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훌륭한 사람만이 꼭 훌륭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남긴 훌륭한 것 두어 개를 우리 중 몇몇은 기억할 것입니다. 우리 다음의 어떤 몇몇이 또 그것을 기억하겠지요. (당신을 아끼는) 나로서는 그 정도로 만족합니다. 아마 당신도 만족할 것 같습니다. 당신이 말한 훌륭한 사람은, 사실 훌륭한 속성을 지닌 사람이라기 보다는 훌륭한 속성을 가진 무언가를 만들어낸 사람에 가까운 것 같으니 말이죠.


당신의 바람처럼 여기 모인 사람들 중 몇몇은 당신을 기억하며 슬퍼하고 있습니다. (자기 스스로를 위한 것이든, 이제 떠나버린 당신을 위한 것이든 아무래도 상관은 없을 것입니다.) 이 애도도 언젠가는 끝이 나겠지요. 후회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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