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가 오기 전까지 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 중에 봤던 것은 <도플갱어>와 <큐어>가 전부였는데, 올해 초에 MUBI를 통해 <지구의 끝까지>를 보았고, 최근에 <스파이의 아내>를 보게 되었습니다. <큐어>를 보게 되었던 것은 유운성 평론가의 영향이 컸는데, 2016년 여름에 문지문화원사이에서 있었던 연속 강연에서 그가 기요시의 영화 중에서도 <큐어>를 언급한 이유로 찾아 보게 되었습니다. <큐어>에 대해서는 미스테리한 영화라는 인상만 남아있을 뿐, 그때 유운성 평론가가 그 영화를 언급한 맥락--지금은 기억이 나지도 않습니다--에 맞춰 볼 수도 없었습니다.
매우 안타깝게도 저는 <스파이의 아내>의 스토리를 근일에 방영되었던 "출발 비디오 여행"류의 공중파 TV 프로그램을 통해 8할 정도는 알고 있는 상태였더군요. 영화를 보면서 그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오이 유우가 연기한 여주인공이 선박 지하실에서 일본 경찰들에게 발각되는 그 순간까지의 스토리를 매우 일목요연한 정리를 통해 이미 아는 상태로 극장에 들어간 것입니다. 그 정도로 영화 전체에 조금 미치지 못하는 정도까지 스포일러를 할 줄은 몰랐습니다. 심지어 그 프로그램은 이 영화에 나오는 '영화'에 대한 분석까지도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스포일러에 대해서 특별히 부정적인 입장은 아닙니다. 특히나 영화에 반전이 있다고 소문이 난 경우에는 그 반전의 내용을 미리 알고 가는 경우도 종종 있기도 하고요. 허나 어떤 기대감을 가지고 보러 가는 거장(구로사와 기요시)의 영화에 대해서 이 정도로 알고 가는 일은 제 경험에는 전무했습니다. '미세스 팡의 죽어가는 얼굴을 찍는다' 정도로 그 '내용'이 요약될 수는 없는 왕빙 류의 다큐멘터리들은 이런 사례에 속할 수 없을테니 말입니다. 그래서 저는 머리속 한편에선 "출발 비디오 여행"(정확한 프로그램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SBS가 아니면 KBS의 프로그램이었습니다.)류의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스파이의 아내>의 순차적인 스토리를, 당시 극장에서 보고 있던 <스파이의 아내>에 맞추어보았습니다. 너무도 생생하게 영화 소개 프로그램에서 보았던 푸티지들이 영화를 보는 도중에 떠올랐습니다. 그것은 흡사 매우 쉬운 수학 문제의 정답을 채점하는 경험과 비슷했습니다. 짜릿하면서도 시시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저는 '스토리'가 전할 수 없는 '영화의 세부'를 발견하고자 노력했습니다. 창으로 들어오는 역광의 눈부심이나, 특정 부분에서 부러 복잡하고 길게 짜여진 카메라의 움직임, 그 밖의 것들을 '눈'에 담고자 노력했습니다. 그것이 다소간 무의미해진 '이번 영화-경험의 일부'를 어느 정도 채워줄 것이라 기대하면서 말입니다.
현대 영화는 어쩔 수 없이 영화에 대한 영화라는 얘기를 심심찮게 들어왔습니다. 아마 <스파이의 아내>의 '영화'를 그런 맥락에서 해석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굳이 그런 것을 당신에게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출발 비디오 여행"이나 "영화가 좋다"에서 이미 그런 분석을 영상까지 곁들여 했고(혹은 했을테고), 더 정치하고 적확한 분석은 SNS 유저들과 블로거, 비평가들이 했을 거라 생각합니다. 제가 굳이 저의 내밀함을 공유받아야 마땅한 당신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앞서 말한 영화-보기-이전의-경험에서 촉발되었을지도 모를 애매한 느낌입니다. 이 애매하고 묘하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는 느낌은 <지구의 끝까지>를 보면서도 마찬가지로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억지를 사용해서조차도 대상을 어딘가에 위치시키거나 호명할 수 없을 때 발생하는 애매함 말입니다. 그 애매함 속에서 저는 동시에 무력함을 느꼈고 어느 순간에 이르러서는 두 손을 든 채로 항복하고선 웃어야 할 지 울어야 할 지 모르겠는 상태를 받아들이며 영화와의 접촉에 '반응'하도록 자신을 내버려두었습니다. 극장을 나서며 들려오는 "영화가 어땠어?"라는 질문에 "좋다"고도 "나빴다"고도 말할 수 없는 상태는 오히려 제게 희열감을 주었습니다. 제가 아는 것으로 영화를 속박시킬 때의 개운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찝찝함에 급습당할 것만 같은 기분보다 이쪽이 훨씬 좋은 기분이었습니다.
이것은 <스파이의 아내>에 대한 편지는 아니었습니다. 최근에 저는 '먼저 영화를 섬기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어쩌면 <지구의 끝까지>와 <스파이의 아내>에서 처음으로 경험한 영화와의 관계가 저를 작년보다는 겸손하게 만들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듭니다. 영화를 섬기는 것은 영화로부터 선택받았다고 말하기 위한 전제입니다. 올해부터는 섬기고 선택받기 위해 노력할 것입니다. 봄 비가 추적추적 내립니다. 부디 건강히 지내시기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