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10.14)
브런치 스토리에 글을 쓰기 시작하면서
나의 400여페이지에 달하는
시, 에세이, 일기, 정신과 치료 일지, 편지를
엄선해서 업로드하고 있다.
그 과정에서 예전의 글들을 다시 읽고
고쳐 쓰기도 하고 그 시절을 회상하기도 하는데
정말 사적이고도 개인적인 글을
누군가에게, 세상에, 전하고 싶어
또는 나 자신에게 말하고 싶어서
무던히 애를 썼구나, 싶다.
내 글을 읽은 사람들은 주로
나에게 용기 있다는 말을 해왔는데
이제와서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체감한다.
좋게 말하면야 용기고
그게 아니라면 객기인데
나는 지금 어떤 작가로서
독자와 관객들을 만나고 있나,
고민이 되었다.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을 때
나의 소감문 중에
“어려운 길을 뚜벅뚜벅 걸어가겠다”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쉬운 길이 어디있고 어려운 길이 어디 있겠는가.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
장애인인 아버지는 인생살이 중 가장 쉬웠던 젓가락질이
이제는 가장 어려운 일이 되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로
여러 경험을 하게 되면서
가장 쉬우리라 생각했던 글쓰기가
쓰면 쓸수록 어렵다.
단순히 독자와 관객을 의식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의식하자면 그렇다.
여러 작가들이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자전적 모티브의 작품을 쓰게 되면서
나는 스스로에게 눈치를 보게 되었다.
아버지는 젓가락질을 포기하고 포크로 식사를 하시면서
수십번 생각할 것이다.
내가 왜 몸을 허투루 썼던가,
나는 왜 그동안 성한 몸을 소중히 하지 않았던가,
그런 내 곁에 있던 사람들은 어찌하여 내 곁에 있어주었던가,
그리고 지금 내 곁에는 누가 있는가.
앞으로 누가 내 곁에 있을 것인가.
그런 질문들을 곱씹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다.
과거의 글들을 소환하면서,
나 자신을 마주하느라 때로 고통스럽다.
그러나 나에게 칭찬해주려고 노력한다.
그 깊은 속내를 털어놓고
글의 형태로 토해내기 위해
그렇게라도 당신의 마음에 가닿으려고
미처 용기인지 객기인지도 모르고
글을 쓰는 사람으로 남으려 했구나.
나는 글을 쓰는 것이 좋다.
내가 왜 가해자에게 저항하지 못했던가,
나는 어째서 내 몸을 스스로 해치려고 했던가,
나에게 손을 내밀었던 당신은 어디에 있었던가,
그리고 나 자신은,
스스로에게조차 눈치를 봐야 했던 나는,
나는 어디에 있는가,
앞으로의 나는 어떻게 나에게 다가갈 수 있을 것인가.
그런 질문에 답하며 나아갈 나 자신을 믿는다.
그 믿음으로 글을 쓰게 될 나의 일상이 좋다.
쉽지 않은 시간들일테다.
그렇다고 어렵지만도 않다.
살면서 우리는
우산을 들고 나서도 비가 오지 않을 수 있고
비가 오고 있음에도 우산은 필요치 않을 수 있다.
어려운 길이었던 골목이
오늘은 지름길이 될 수도 있다.
나는 그런 마음으로
내일 또, 당신을 만날 용기를 내 본다.
당신은, 나 자신과 다름없으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