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만의 휴가를 즐기다가 돌아온 날, 청천벽력 소식을 접했다.
너희 엄마에게 암이 왔어.
지난 5월, 작년에 합류한 회사에서 1년 반이 넘는 시간 에너지, 감정을 너무 써버린 탓에 기분 전환이 필요했다. 한 번씩 여행을 통해 새로운 세계를 접해야 하는 나는 이번에 도쿄의 큰 행사에 다녀오며, 창창한 미래를 그려나갔다. 짧은 4박 5일 시간에서 하나라도 더 보겠다는 욕심 땜에 귀국 하는 날에는 손가락 까딱거리는 것도 귀찮을 정도로 피곤했다.
무거워진 몸으로 입국장으로 향하는데, 아빠에게서 카톡이 날아왔다.
'만나서 이야기 할 것이 있다'
이상했다. 내가 너무 피곤하다는 사실을 아빠가 알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꼭 만나야한다는 것이. 아빠 답지 않았다. 이상함을 감지하고 엄마에게 전화를 해서 무슨 일이 있냐고물으니, 엄마는 그저 어색한 웃음진 목소리로 '그러게 아빠가 하실 말씀이 있으니 한 번 들어봐'라고 할뿐이었다.
찜찜한 기분으로 나는 택시에 몸을 실었다. 이상함의 연속이었다. 만나기로 한 장소에는 남동생 둘까지 다 와있었다. 할 말이 있다던 아빠는 일단 저녁부터 할까 물었고, 식사를 하는 동안에도 아빠는 자꾸 할 말을 망설였다. 한참을 기다리던 나는 참지 못하고 아빠에게 '할 말이 무엇이냐'고 물었고, 그제서야 아빠는 말할 결심을 했는지 표정을 고쳤다. 어색한 웃음을 거둔 진지한 표정으로 잠깐 말을 멈춘 아빠는, 와락 눈물을 쏟으며, 엄마의 암 소식을 전했다.
유방암. 건강하고 걱정없이만 사는 줄 알았던 우리 엄마에게 '암'이 찾아왔다.
무뚝뚝한 남동생 둘도, 다혈질의 나도, 서글프게 우는 아빠에게 그 어떤말도 건낼 수가 없었다. 나는 납득이 되지 않으면, 감정 자체를 느끼지 못하는 성향이 있다. 슬픔도 황당함도 놀람도 느끼지 못하고 나는 그저 아빠가 흐느낌을 멈추기를 기다려야 했다. 그저 20대 건장한 청년이 된 남동생을 양쪽에 끼고 앉아, 두 손으로 눈을 꾹꾹 눌러가며 우는 아빠를 보니, 우리 아빠가 이렇게 연약해보인적이 있었나 싶었다.
갑자기 찾아온 소식. 30대 중반에 들어선 나와 20대인 남동생 둘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많이 연약해진 부모님을 바라보며, 본능적으로 우리 역할을 고민해보기 시작했다. 더불어 미국에서 외롭게 타지생활을 하고 있는 여동생이 이 사실을 알면 엄청 슬퍼하겠다는 생각과 함께 조금은 막막했다.
2024년 5월 19일, 우리 집 셋째의 28번째 생일이자, 하늘이 유난히도 푸르렀던 날이자, 처음으로 우리 가족 모두가 같은 고민을 하기 시작해야했던 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