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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nero Dec 12. 2022

서른셋, 구조조정 폭풍 속에서

스타트업에 부는 찬 바람

저, 이번 달까지만 나오래요



 갑작스럽게 대표님과 차 한 잔 하러 나갔던 선배 J에게 무슨 이야길 하고 왔냐고 물으니, 그가 담담하게 답했다. 누구보다 실력 있고 멋져서 내가 너무 존경한 나머지 이 회사에 이직하면서 모셔온 분이었다. 심지어 J 뿐만 아니라, 내가 제발 와 달라고 꼬드겨서 멀쩡히 다니던 회사를 두고 나에게 와준 선배 L 역시 같은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미안한 마음 반, 걱정되는 마음 반.

 아무리 생각해도 이분들이 권고사직을 당할 정도면, 나 따위는 당장 이번 주부터 나오지 말라고 해도 이상할 게 없어 보였다. 서른셋의 나는 스타트업계에 부는 칼바람에 정리해고와 권고사직의 기로에 놓였다. 도대체 왜 이 분들이 퇴사를 당해야 하는지, 나에게는 언제 어떤 통보가 올 지, 어째서 회사는 이렇게 기별도 없이 하루아침에 사람을 내보낼 결정을 했는지 등등 너무 많은 생각이 떠올라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내 팀원들은 무사할까? 우리 팀은 이제 막 성과를 보이기 시작했는데, 설마 공중분해되는 건 아니겠지?


 그날은 재택근무 중이었는데, 도저히 선배들 얼굴을 보지 않고서는 이 미안한 마음으로 눈 뜬 채 밤을 지새울 것 같아서 회사로 향했다.


 선배 J가 친한 분들이 모여있는 단톡방에 작별 인사를 고했더니, 갑자기 '저도 통보받았어요' 하는 사람들이 나타났다. 그날 하루 권고사직을 들은 사람만 족히 스무 명은 되는 것 같았다. 별안간 불안한 마음에 우리 팀원 한 분께 전화를 드렸다.

 "아, 이미 들으셨군요?"

 나는 아무것도 들은 게 없는데, 아마 내가 팀장이니 다 알고 있으리라 생각했나 보다. 

 "저는 이렇게 깜빡이 없이 나가라고 하실 정도로 이성적이진 못 해요. 혹시나 하고 전화드렸는데, 도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건가요?"

 내가 묻자, 그분은 머뭇거리며 회사에서 공식적으로 설명해주지 않겠느냐고 해서, 당장 만나자고 했다. 



왜 IMF 때 집에 못 들어갔는지 이해가 돼요



 나는 그 폭풍이 일던 화요일, 아무것도 들은 바가 없었기 때문에 회사에 남게 될지, 아니면 이 거센 바람에 휩쓸려 다시 FA 시장으로 쫓겨 나가게 될지 알 수가 없었다.


 처음에는 충격이었고, 그다음은 화가 났고, 이내 슬펐다. 나는 내가 모셔온 분들을 하루아침에 거리로 내몰리게 한 일종의 씨앗 같은 것이기도 했고, 나도 모르게 내 팀원들이 다 잘려나간 팀의 팀장이기도 했다. 늘 정신적으로 많이 기대던 선배들인데, 내 탓에 이렇게 됐다고 생각하니 그분들께 힘들다고 말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후배를 붙잡고 울 수도, 엄마에게 이야기할 수도 없었다.

 그러고 나니 왜 IMF 때 회사들이 구조조정 피바람을 맞고, 거기에서 집에 돌아가지 못한 가장들이 생겼는지 어느 정도 심정이 이해가 됐다.


 당장은 월세가 걱정이었다. 이 집에 이사를 오느라 이것저것 참 많이 사기도 해서 다 들고 엄마 집에 돌아가기도 어려울 것 같고, 또 이사를 하자니 금리가 문제다.

 그래, 금리가 문제였다. 요즘 스타트업계는 이 금리 때문에 투자를 못 받아서 하루아침에 집으로 돌아가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도전과 변화를 즐기니까! 나는 스타트업이 잘 맞는다고 생각했는데, 고용 불안정은 사실 내가 받을 스톡옵션보다 더 가까이 있었다는 걸 완전히 잊고 있었다.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아빠에게 이야기하면 당장 집에 들어오라고 할 게 뻔했고, 나는 그러긴 싫었다. 어디든 내 자리는 또 있겠지,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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