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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흥준 Oct 12. 2021

연극 이야기 8_ 외로운 개, 힘든 사람, 슬픈 고양이

외로운 개, 힘든 사람, 슬픈 고양이를 보고서

지난 7월부터 페스코 생활을 하고 있다. 육고기는 먹지 않고, 해산물과 유제품까지는 먹으며 생활하고 있다. 예전부터 다짐했던 일이다. 하지만 실천으로 옮기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나중에라고 외쳤기 때문이다. 당장의 즐거움과 편안함을 위해서 머리 아픈 고민은 조금 미뤄두고 싶었다. 일단 먹고 다시 고민해봐도 괜찮다고 생각했으니. 고민하는  자체도 의미 있는 것이라고 생각하면서.


물론 ‘고민의 의의’ 에 대한 생각은 여전하다. 나와 동물, 나와 타자의 관계성에 대한 고민, 즉 언제나 주체의 자리에 앉아 동물 혹은 타자를 나의 목적에 맞게 적절히 도구화하는 삶에 대한 긴 시간의 고민은 페스코 지향으로 나를 나아가게 한 주요한 생각이었다. 다만 생각이 실천으로 나아가는 것은 긴 시간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더 이상 ‘나중에’ 로 미루지 않겠다는 순간의 다짐. 눈 딱 감고 입을 벌리기에는 입 안의 촉각으로도 느껴지는 고통들 그것을 더는 모르는 척 할 수가 없겠다는 깨달음만 필요했다.


이런 나에게 <외로운 개, 힘든 사람, 슬픈 고양이> 라는 연극은 보고 싶음을 넘어, 봐야 한다는 의무감으로 다가온 연극이었다. 동물에 대한 이야기로 80분을 가득 채운 극장은 얼마나 뜨거운 열기로 가득할까 기대하며 극장을 향했다. 연극은 “동물권을 헌법에 포함시키자” 라는 주장으로 활동하는 국회 보좌관들의 스터디 모임을 배경으로 펼쳐진다. 2021년에서 시작한 연극은 더 깊은 과거로 시간을 되돌리며 이어졌으며, 이는 동물권에 대한 법적 논의가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또한 얼마나 지지부진하였는지를 보여준다.


 헌법에 동물권을 포함하자는 높은(높다고 생각해서는 안 될)이상을 앞에 두고, 우리의 법이 ‘동물보호법’에서 지지부진하고 있는 이유는 ‘나중에’..언제나 뒤로 밀렸던 동물. 인간과 동물을 두 손 위에 올려 두고 하나만을 골라야 한다면 어찌 동물을 고르겠냐는, 어쩔 수 없다는 인간중심주의. 인간 문제부터 해결하고 나중에, 그 나중의 시간동안 동물들은 이빨이 뽑히고, 몸을 뒤집을 수도 없는 작은 공간에서 살아가며, 고통을 느끼며 죽어갔다. 그렇게 재물이자, 가축이자, 반려동물이자, 실험물이자, 폐기물인 동물은 다양한 표상을 뒤집어쓴 채 우리 곁에서 울음 소리를 내고 있었다.


이제는 나중이란 말을 나중으로 미뤄두어도 되지 않을까. 고민이 실천으로 이어지기 위해 필요했던 순간의 다짐이 제도권 정치에 필요한 순간이 지금이면 안 될까. 표도 안 되고, 돈도 안 되는 동물권을 굳이 바라볼 필요가 없다고 주장할 수도 있지만, 그 주장이 통용되는 사회라면 ‘정치’ 의 필요성은 흐려져야 마땅한 사회가 아닐까.


 정치는 말할 수 있는 자의 이해관계를 대변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동시에 말할 수 없는 자들의 이야기를 묘사하고 서술해야 할 의무를 가지고 있기에. 말할 수 없는 자들을 명(名)이 아닌 명(命) 으로 세어가며, 그들의 울음소리를 들리지 않았던 것이 아니라 들으려 하지 않았던 것임을 깨달아갈 수 있다면. 연극이 진행된 80분의 신촌극장에서 비슷한 생각들이 서로의 머리 위에서 느낌표로 떠올랐다면, 우리는 조금 다른 세계를 꿈꿀 수 있지 않을까.


들리지 않았던 고통이 서로를 돌보고 사랑하며, 편안했던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서로를 쓰다듬어도 충분한 시간이 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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