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을 읽으며 먼저 다가오는 것은 기술의 새로움보다 사람의 마음이다. 우주와 미래, 과학적 상상력으로 단단히 둘러싸인 이야기들이지만 그 속에 앉아 있는 인물들은 지금 이곳의 우리와 꼭 닮아 있다. 누군가를 잃고, 다시 연결되기를 바라며, 말로는 다 담기지 않는 감정을 천천히 끌어안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빛의 속도로 어디든 갈 수 있을 것 같은 시대에도 마음만큼은 느린 걸음으로 움직인다는 사실이 이 책 전체를 관통한다. 이 느림이야말로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이라는 것을 여러 단편들이 차분히 보여준다.
그중에서도 〈감정의 물성〉 은 가장 기억에 남은 이야기였다. 감정을 고체화해 손바닥 위로 올릴 수 있다는 설정은 낯설지만 현실적이다. 사람들은 잊고 싶은 슬픔을 확인하기 위해, 혹은 오래 지나가버린 감정을 다시 느끼기 위해 이 물질을 사들인다. 작가님은 감정의 원리보다 감정을 붙들려는 인간의 마음에 더 집중한다. 감정은 본래 지나가는 바람 같은 것인데 그것을 한 번 더 느끼고 싶어 하는 욕망이 어디서 오는 걸까?
감정이 손에 쥐어지는 순간에 그것은 위안일까, 아니면 다시 빠져드는 늪일까?
책을 덮고 난 뒤에는 뚜렷한 장면보다 흐릿한 온기가 남는다. 과학의 언어로 감정을 말하고 감정의 언어로 인간을 다시 바라보는 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