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쇄물이 넘치다 못해 ‘공해’라는 말이 공공연히 나도는 세상이다. 그런 가운데 책을 출간하는 일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할 정도로 복잡다단하다. 그래도 고심한 끝에 출간했다. 오늘로 꼭 한 달이 되었다. 책이 나오자 무척 긴장했다. 소설집은 처음이기 때문이다. 지면에 작품 발표를 거의 하지 않은 채, 소설가라는 이름만 이십여 년 가지고 살았다. 무늬만 소설가였다.
수필집은 개인 저서만 두 권을 냈고, 7년째 해마다 공동으로 한 권씩 내고 있으며, 동화나 수필은 지면에 가끔 발표한다. 그러나 소설은 그러지 못했다. 등단작과 십여 년 전 공동저서에 한 편만 수록했고, 그 외엔 발표하지 못했다. 무늬만 소설가라는 게 부끄러워지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쓰지 않은 건 아니었다. 미발표작 단편 40여 편과 장편 두 편을 가지고 있다.
출간하지 못한 이유는 책으로 낼만큼 완성도가 있는가 하는 문제였고,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주제와 작법의 경향이나 유행, 흔히 말하는 트렌드와 내 작품은 괴리가 있는 듯해 주눅이 들기도 했다. 오래전에 쓴 것들이 대부분인 관계로 문장이 뇌쇄한 듯하여, 스스로 얼굴이 붉어진 적도 있다. 잘 쓰는 작가들의 작품을 읽으면 열등감이 들었고, 학생들에게는 나만의 이야기를 성실하게 쓰는 게 중요하다고 가르쳤으면서도, 실제의 나는 그러지 못한 표리부동한 사람이었다. 오래전 제자 윤군이 불쑥 떠올라 그의 마음이 갑자기 이해될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출간은 더뎠고 시간이 흐를수록 마음은 조급해졌다. 솔직한 심정이다. 어느 날 결심했다. 한 권이라도 먼저 세상에 내놓자고. 그렇게 내놓은 소설집이 『숨은 그림 찾기』다. 내 속에 숨은 그림, 아니 의미를 찾는 일에 그렇게 오래 고심해 왔다는 걸 느끼면서 작품을 퇴고했다. 내게 위로 건네는 언어를 껴안으며 기꺼웠고, 마음이 단단해지는 것을 느꼈으며, 열등감이 사라졌다. 어느 순간부터 슬며시 미소가 비어져 나오기도.
그럼에도 세상에 책이 나오자 다시 긴장했다. 작가는 누가 뭐래도 독자의 반응에 무관할 수 없기 때문이다. 브런치나 블로그에 쓰는 짧은 글에도 독자의 반응을 살피지 않을 작가는 아무도 없으리라. 작가는 또 그래야 한다고 생각한다. 글은 작가와 독자의 소통 창구니까. 작가와 독자는 글로 이어져 있으니까. 작품을 내놓으면 그만이지 왜 신경 쓰느냐는 말은 맞지 않다. 물론 독자는 다양하여, 다양한 반응이 나올 수 있음으로, 그 반응에 너무 연연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튼 한 달이 되었다. 많이 바빴다. 책이 나오면서 만나자는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 마음이 고마워 웬만하면 시간을 냈다. 독불장군 없다는 말이 있잖은가. 이 세상에 내게 따뜻한 마음을 드리우고 있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다는 것에 놀랐다. 얄팍한 마음으로 산 것이 부끄럽고 반성되어 스스로 민망했다. 나를 깨우치게 하기 위한 신의 가르침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세상에서 사람들은 서로 영향관계를 주고받고 상호작용하며 살아가고 있다. 작가는 작품으로 세상 사람들과 소통한다. 그것은 변하지 않는 진리다. 그러므로 작가는 작품을 쓰고 발표해야 한다. 혼자만 쓰고 읽는 글은 일기장일 뿐이지 않을까. 인쇄물의 공해라는 말이 있어도 자꾸자꾸 글을 발표하고 또 책으로 출간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가, 슬며시 사그라지기도 했다. 향유되고 소비되는 것의 문제는 눈덩어리처럼 커져 가슴을 짓누른다. 그것에서 해방되는 방법은 하나다. 그걸 잘 안다. 그 일이 쉽지 않다는 것도.
출간 한 달 즈음에 이런저런 생각이 많다. 작가에게 책을 출간하는 일은 큰 행사임에 틀림없다. 딸을 결혼시킬 때도 깨달은 바가 많았다. 이번에 출간하면서도 그렇다. 둘을 같은 비중으로 생각할 수 없겠지만 긴장되는 건 출간이 더했다. 딸은 조금 더 믿고, 작품은 믿지 못해서 그럴까. 믿고 세상에 내놓을 수 있는 작품이 되도록 더 매만지고 매만져야 하리라.
소설집을 읽고 응원하며 서평과 감상 올려준 모든 분들에게 이 자리 빌려 감사한 마음을 전한다. 생면부지의 독자들, 지인, 브런치 작가들, 제자들. 아, 라디오를 비롯한 방송매체와 유튜브 진행자도 빼놓을 수 없다. 처음으로 라디오에 소설집이 소개되는 경이로운 일도 경험했다. 세상에는 예기치 못한 일, 놀라운 일도 생기는 법이라는 걸 체험했다. 꿈 꾸고 생각했던 게 불쑥 이루어지기도 한다.
이번 소설집 출간으로 나는 세상과 삶을 더 배우고 있다. 고마운 마음에 보답하는 길은 좋은 글을 쓰는 일이리라, 어렵지만. 그것을 넘어서고 건너가야 하는 건 나의 과제다. 아니, 세상 모든 작가들의 과제다. 그것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요구될 뿐이다. 이렇게 다짐해 보는 것 또한 그래서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