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그만두고 싶은데 그럼 모 먹고살지 모르겠다.
내가 첫 직장을 입사할 때에는 그렇게 많은 자격증이 필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두 번째 직장을 찾을 때에는 이미 스펙이 넘치는 구직자가 많았고 자격증이 없으면 취업하는 것이 쉽지 않은 세상이 되어있었다. 내가 내세울 것은 경영학을 전공했고, 첫 번째 직장의 경력이 전공을 살릴 수 있었다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 나는 나의 경력과 관련된 자격증을 빠르게 취득하기 위해 학원에 다녔고, 선배 덕분에 많은 시간을 방황하지 않고 빠르게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그다음으로 생각한 것이 영어점수였다. 회사를 다니면서 영어를 쓸 수 있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나는 늘 영어에 대한 갈증이 있었다. 젊은 신입사원들의 영어 점수는 나에게는 거의 신적인 존재처럼 보였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다시 도전하기 어려울 것 같아 남편을 설득해 2개월 동안 필리핀에서 유명하다고 하는 스파르타식 어학원에 다녀왔다. 나의 대학시절에는 흔치 않았던 경험들이 불과 10년이 좀 넘었을 뿐인데 이제는 외국으로 어학연수 가는 것이 대학을 가는 것처럼 당연한 코스가 되어가고 있다고 한다. 더 놀라운 것은 단기간 코스로 필리핀을 선택하는 학생들은 그나마 시간이 없거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많지 않은 학생들이고, 상당한 학생들이 미국이나 호주 그리고 캐나다로 1년 이상씩 어학연수를 다녀오는 학생들도 많다는 것이었다. 내 머리에는 두 가지 생각이 스쳐 갔다. 하나는 대학교 등록금에서 해외 유학자금까지 마련해야 하는 부모들은 얼마나 더 많이 그리고 오랫동안 회사를 다녀야 하는 것일까였고, 나머지 하나는 이러한 스펙 좋은 학생들과 내가 함께 취업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나는 짧지만 좋은 경험을 안고 필리핀에서 돌아와 빠르게 새로운 직장을 찾기로 결심했다. 경력은 있지만, 나이가 적지 않아 내 마음은 더 조바심이 났다. 그래서 일단 취업을 하고 보자는 마음이었고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아무래도 완전히 새로운 일보다는 기존에 나의 경력과 관련된 직업을 선택해야 했다. 첫 번째 직장에서 해오던 일들이 싫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첫 번째 회사과 같은 일을 할 수 있는 두 번째 직장을 선택했다. 즉, 나는 새로운 직업이 아닌 새로운 회사만을 선택해서 나의 두 번째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두 번째 직장은 중견기업이었다. 이 곳에서도 나는 직장생활이 즐거웠다. 기존에 회사에서 배운 업무와 마음가짐을 가지고 새로운 회사에 적용하는 일이 좋았고, 오히려 큰 회사에서는 각자의 업무와 부서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어 내가 감히 할 수 없었던 일들도 이곳에서는 폭넓게 도전할 수 있었고 나의 의지만 있다면 새로운 일에도 참여할 수 있었다. 그리고 많은 동기들과 선배들의 눈치를 보면서 경쟁하지 않고 마음껏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는 것이 이 곳의 장점이었다.
내가 두 번째 직장에 들어오면서 변한 것이 있다면, 절대로 이 회사가 나의 인생을 모두 책임져주지 않을 것이라는 현실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즉, 이 곳이 나의 평생직장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그때부터 나의 취미는 자격증 취득하는 것이 되었다. 첫 직장에서 장시간 근무하는 것이 익숙했기 때문에 이 곳에서도 힘들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늘 새로운 것을 배우는 것에는 즐거움이 있었다. 가장 먼저 사무실에 출근했던 나의 습관은 이 곳에서도 계속되었지만, 이제는 그 아침시간만큼은 업무가 아닌 온전히 나만의 시간으로 쓰려고 노력했다. 그래서 이 곳에서 7년 가까이 있으면서 매년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Stay Hungry, Stay Foolish"
2005년 스탠퍼드대학 졸업식에서 스티브 잡스가 낭독했던 연설문의 제목이다.
이 연설문 중 첫 번째 이야기를 내 방식으로 해석해 보면 이런 내용이었다. "미래는 알 수 없기에 지금 내가 하는 일들이 의미가 없어 보일지라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 과거가 되어버리는 것들을 연관 지어 생각해 볼 수 있다. 다시 말하면, 우리들은 미래를 내다보며 현재의 점들을 연결시킬 수는 없다. 오직, 연결된 점들만 볼 수 있을 뿐. 그러니까 우리들은 반드시 그 점들이 미래에 어떻게든 연결될 것이라는 것을 믿어야 한다. 그 점들이 미래에 연결된다고 믿는 것은 너희들이 마음이 이끌리는 대로 살아갈 자신감을 줄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것들이 결국에는 모든 차이를 만들어 낸다"
나는 이 말을 정말 사랑한다. "Connecting the dots."
서로 다른 점들이 결국에는 어떻게든 연결될 것이라는 것을 믿는다. 그래서 나는 두 번째 직장에서 무작정 자격증 취득을 취미로 삼을 때, 나의 전공과 경력에 무관한 것들에서 평소에 궁금했던 분야를 우선하여 자격증을 알아보고 취득했다. 그리고 2016년 나는 문득 부동산에 관심이 생겼다. 그때 남편과 나는 20년 가까이 회사생활을 하면서도 내 집 마련을 하지 못했다. 아이도 없었기 때문에, 특별하게 어디에 자리를 잡을 만한 이유가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한 집에서 계속 올라가는 전셋값만 올려주며 살고 있었고 뉴스에서 빠짐없이 등장하는 부동산 정책에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내가 너무 부동산에 대해 아는 지식이 없다고 생각이 되면서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준비하게 되었고 회사 업무와 병행하면서 준비해야 했기에 1,2차를 나누어 2년에 걸쳐 공인중개사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었다.
그리고, 2020년 나는 회사에서 부장으로 승진했다. 이때 나는 승진이 그렇게 즐겁지 않았다. 유난히 나에게 일이 많았던 2019년이었고 또다시 첫 직장과 같은 보이지 않는 남녀 간의 벽이 느껴졌다. 나의 직속 상사인 상무님은 나에게 참 잘해주셨다. 우리 부서에는 나를 포함하여 5명의 직원이 있었고, 그곳에는 나만 여자였고 모두가 남자였다. 다른 상사들보다 직원들에게 많은 기회를 주려고 노력하셨고, 직원들 간에도 형평성 있게 대해주시려고 애쓰셨다. 하지만 내가 참지 못한 것이 하나 있었다. 상무님은 담배 타임으로 자주 옥상에 올라가셨고, 나를 제외한 모든 남직원들은 그 시간을 함께 했다. 처음에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 시간에 텅 빈 사무실에 나 혼자 있는 것이 왠지 모르게 소외감을 느꼈다. 그럴 수 있었던 것은, 남자들은 담배 타임에 많은 이야기를 해서 어쩔 수 없이 회사생활을 하면서는 담배를 끊을 수 없다고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회의하면서 하기에는 가벼운 이야기이지만, 그것이 곧 정보였다. 어느 날, 나는 알았다. 내가 회사에 입사한 지 얼마 되지 않은 신입사원보다도 모르는 정보가 많다는 것을.. 물론, 나도 담배를 하지 않아도 담배 타임에 함께 하면 된다. 하지만, 상무님도 동료들도 담배를 안 피우면서 옆에 있는 것은 서로에게 불편한 것이라 생각했고, 특히 나 같은 여직원이 옆에 있으면 왠지 더 미안해했다. 이야기가 즐겁고 나를 배려하는 것이 느껴짐에도 나는 그곳에서 자주 함께 하고 싶지는 않았다.
나는 어느 순간 코로나 19와 함께 4차 산업혁명이 가속화되면서 다시 한번 새로운 세상에 도전하고 싶어 졌다. 이미 나는 40대 중반을 향해 가고 있었고 무엇인가 새로운 도전을 하기에 적지 않은 나이였다. 하지만, 다시 한번 새로운 곳으로 움직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을 때에는 첫 직장을 나올 때보다 나이가 많았음에도 두려움은 덜 했다. 회사에 다니면서 꾸준히 취득해 놓은 회사 밖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자격증 덕분이었다. 내가 평소에 관심이 있었던 바리스타, 제빵기능사, 공인중개사 자격증이 새로운 직업을 찾는 데 도움을 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2020년 4월 두 번째 회사에서 나올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