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서 정보는 그 사람의 실력이다. 좋은 소식 또는 나쁜 소식에 제한이 없었다. 소식을 빠르게 전달해주는 사람, 그런 소식을 늘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회사에서의 정보란 업무에 대한 정보뿐 아니라 주위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을 말하고, 그러한 정보는 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했다. 왜 그런 것인지 사람들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생각해보면 항상 똑같은 회사생활에서 무언가의 새로운 이슈가 목마른 건 아니었는지 하는 생각이 든다. 나 역시 그러한 이야기가 회사 업무 이야기만큼 듣고 싶었다. 그 이야기 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퇴사 소식이었다.
첫 번째 직장은 일단 한번 입사하면 자의적으로 퇴사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가끔씩 신입사원으로 들어와서 본인이 생각했던 회사가 아닌 것 같다는 빠른 판단을 하는 사람, 아니면 나이 들고 계속되는 승진 누락으로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떠나야 하는 사람들이 전부였다.
회사 게시판에는 많은 정보들이 있다. 직원들이 입사를 하거나 퇴사를 할 때에도 사내 공고를 게시판에 올린다. 그중에서 사내 게시판에 '면직'이라는 제목이 뜨고, 공고를 열어보면 이런 내용이 있었다. "OO부서 OOO 면직, 일자 OOOO" 이 공고가 나면 많은 직원들이 각자의 생각을 한다. 그리고 퇴사한 직원과 가까웠던 사람들을 수소문해서 퇴사 사유를 듣고야 궁금증을 해소하곤 했다. 대부분 궁금한 내용은 이러했다. "왜 그만두는 거야? 그만두고 모 한다고 해?"... 나 또한 예외는 아니었다. 좋은 대학에 젊은 신입사원이 퇴사한다고 하면 나는 "그래, 더 좋은 데 갈 수 있으니까"라고 스스로 결론을 낸다. 그리고 어느 정도 나이가 있어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나가게 된 분이라면 "어쩔 수 없었구나. 아이들이 아직 어리다고 들었는데 이제 어디를 가서 무엇을 하실까.. 회사가 전부인 것처럼 열심히 일하셨는데"하는 생각을 하면서 깊은 나만의 상상을 한다. 그리고 얼마 후 우연히 듣게 되는 퇴사한 사람들의 새로운 삶에 대한 결과만 가지고 '잘됐네, 안됐어'를 남아있는 직원들
끼리 판단한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말도 안 되는 일이던가.. 감히 누군가의 삶을 나의 짧은 시각으로 판단한다는 것이 말이다. 하지만, 이렇게 퇴사하는 사람들에게 관심이 가져지는 것은 많은 사람들 또한 언젠가는 이 회사를 떠나 저렇게 회사 사내 게시판에 자신의 이름이 뜰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내가 첫 번째 직장을 퇴사할 때, 나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관심의 대상이 되었다. 왜 그만두는 것인지, 그만두고는 무엇을 할 것인지가 그들의 궁금한 내용의 전부였다. 그리고 나에게는 한마디가 더 붙었다. 그 이야기는 "나도 그만두고 싶은데... 너는 그래도 아이가 없으니까 괜찮지. 그래도 너는 남편이 대기업에 다니니 괜찮지.."의 말들이었다. 나는 왜 이런 이야기를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지만, 어떤 이유로 회사를 그만두고 싶지만 그만둘 수 없는 사람들의 자신에 대한 작은 위로라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반대로 아이가 없어서 특별하게 집에서 할 일이 없다. 꼭 경제적으로 많이 힘들지 않더라도 내가 집에만 있는 것은 나 스스로의 성격에도 맞지 않지만, 우리나라의 국민으로서도 아까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집에서 육아를 하는 것도 아닌데 남편은 남자라는 이유로 돈을 벌어야 하고, 나는 여자라는 이유로 돈을 벌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는 것도 이해되지 않았다. 내가 특히 좋아하지 않는 변명은 "여자라는 이유로.."이다.
난 첫 번째 직장을 나와 나의 삶과 직장에 대한 생각을 다시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인 것 같다. 나의 숨어 있던 성격과 가치관이 조금씩 수면 위로 올라오는 것이 말이다.
그리고 나는 나의 선택이 잘한 것이라고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싶었고 전혀 다른 내가 될 수는 없지만 새롭게 시작하고 싶었다. 그래서 회사에서 친했지만, 나보다 1년 먼저 퇴사한 선배를 찾았다. 회사생활을 하면서 그래도 회사를 떠나서도 연락하고 싶은 사람을 이야기하라고 하면 이 선배였다. 이유는 나와 걷고 있는 길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선배도 일찍 결혼했지만 아이는 갖지 못했다. 나처럼 아이를 미룬 것은 아니었고, 노력했지만 아이가 생기지 않았다. 힘든 시기를 겪고 지금은 아이가 없는 삶을 즐기고 있는 모습이 참 좋아 보인다. 선배는 회사에서 나와 1년 뒤 작은 회사에 취업했고 올 해로 10년 차가 된다고 한다. 선배 또한 많은 걱정을 하면서 첫 번째 직장을 나왔지만, 지금은 다른 환경에서 잘 적응하고 살아가고 있다. 오히려 지금은 그때 첫 번째 직장을 나온 것을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큰 회사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나와 작지만 신뢰를 받고 직원들이 오래오래 남아주길 바라는 작은 회사에 있는 것이 즐겁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의 회사에서 받는 신뢰는 그만큼 첫 번째 직장에서 쌓은 실력과 내공이 함께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나에 대한 선배의 조언은 간단했다. 우리가 회사생활에서 길들여진 몸이 회사를 그만두면서 많아진 시간에 생각이 많아지고 기분이 놀이동산 자이로드롭처럼 아침, 점심, 저녁 기분이 다르다는 이유에서 이다. 그리고 남편에게 왠지 모를 자격지심도 생긴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선배가 시키는 데로 치열한 계획을 짜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에 관심 갖지 않고 오로지 나만을 위해 계획을 짜 본 것이 참 오랜만이었다.
퇴사와 죽음의 공통점과 차이점은 무엇일까.
퇴사와 죽음은 모두 대부분의 사람들이 한 번은 경험하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진다. 언젠가는 나도 퇴사를 하고, 언젠가는 나도 죽는다는 것을... 그 퇴사와 죽음이 내 앞에 놓일 때 어떻게 의연해질 수 있을까?.. 퇴사하는 것이 마치 죽음처럼 인생이 끝나는 것도 아닌데 모가 이리 두려운 것일까... 모가 그리 두려워서 힘들어도, 싫어도 버티는 것일까..
죽음은 내 힘으로 더 이상의 미래를 계획할 수 없지만, 퇴사는 다음을 기약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생각한다. 퇴사하면 인생이 끝나는 것처럼 말하는 사람들 중 그 회사에 있을 때 보다 더 잘 먹고 잘 사는 사람들이 더 많다. 큰 병에 걸리면 나의 의지에도 죽음을 맞이해야 하지만, 퇴사는 내가 잘 준비할수록, 더 좋은 인생을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실제로 회사에서 나와 새로운 분야에서 성공한 사람들이 많다. 그 들은 말한다. "내가 그때 회사를 나온 것이 정말 훌륭한 생각이었다고.." , 월급은 우리에게 안정감을 주지만, 나태함도 함께 가져다준다. 퇴사를 하면서 매월 아무렇지 않게 받아온 월급이 소중해지면, 안일하게 살아온 스스로를 더 채찍질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는 것 또한 월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