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까지 회사에 머물러 있어야 할까.
'모두가 세상을 변화시키려고 하지만 정작 자신이 변하겠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라고 말한 톨스토이의 말을 빌려 보면 변화의 시작은 나 자신이 되어야 한다.
내가 대학을 다니고 있을 때 우리나라에는 IMF 외환위기가 왔다. 유학을 꿈꾸었던 나는 더 이상의 다른 생각을 하지 못하고 취업을 준비했고 운 좋게 대기업에 입사할 수 있었다. 그때는 지금처럼 취업이 힘들지 않았다. 조금만 노력하면 원하는 회사에 입사할 수 있었고, 그렇게 나는 그 회사에서 입사해서 10년 넘게 머물렀다.
20대의 나의 꿈은 이 회사에서 임원이 되는 것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나와 같은 희망을 품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이유는 지금 내가 몸 담고 있는 이 회사가 나를 평생 책임져 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10년이 훌쩍 넘어가면서 나의 머릿속에는 물음표가 생기기 시작했다. 그 물음표의 중심에는 과연 내가 이 회사에서 임원은 당연히 어렵고 그렇다면 얼마나 더 많은 기량을 쌓을 수 있고, 나의 재능은 얼마나 계발할 수 있을까였다. 그리고 나는 이 곳에서 무엇을 얻었고, 또 무엇을 포기해야 했는가..?
나는 회사에 입사해서 27살에 결혼생활을 시작했다. 친구들보다 조금 일찍 시작된 결혼이지만 나는 아직까지 아이를 가지지 못했다. 처음부터 아이를 갖지 않을 계획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아이를 갖기 힘든 것도 아니었다. 치열한 사회생활에서 직장상사와 선배의 눈치를 보면서 미뤄진 아이 계획이 지금까지가 되었다. 지금부터 18년 전 내가 결혼한 시기에는 지금처럼 육아휴직이 없었고, 60일간의 출산휴가만 가능했다. 그러나, 그 출산휴가를 신청하게 되면 그 일은 남아 있는 직원들의 몫이 되는 시스템이라 일을 지시하는 상사뿐 아니라, 선배와 동료들의 눈치를 봐야 했다. 그리고 돌아오면 승진에서의 불리함 또한 당연한 것이었기에 나는 1년, 2년 그렇게 미루게 되었다. 어떻게 보면 내 가슴속에 일과 성취에 대한 욕심이 아이를 갖지 못한 가장 큰 이유라고 생각한다.
나는 대학교 시절에 남편을 만나 8년 연예를 하고 결혼을 했다. 결혼은 남편이 회사에 입사하고 3년이 되는 해에 할 수 있었다. 지금처럼 신혼집을 장만하는데 많은 전셋값이 필요하지 않았고, 살림살이 또한 서로 직장생활 2~3년 열심히 하면 장만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결혼생활은 늘 회사 업무로 정신이 없었다. 남편의 일은 대부분 미국에서 진행되었고, 한국에 있는 날보다 미국에 있는 날이 더 많았다. 가끔은 그 당시에 남편을 따라 미국에 가서 아이를 낳고 살았다면 나의 인생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곤 한다. 하지만, 나는 나의 회사가 좋았고, 상사와 선배들에게 인정받는 현실이 좋았다. 일에 대한 성취감도 있었기에 이 것들을 포기하고 아무것도 모르는 낯선 미국에서 아이를 낳고 살고 싶지는 않았다. 그런 마음으로 열심히 회사생활을 한 덕분에 직장 동료들에게 '에이스'라는 호칭도 듣고, 알 수 없는 따가운 시선도 감당해야 했다. 그러면서 나는 점점 더 회사에 머무는 시간이 많아졌고 회사가 나의 인생에 전부를 차지하게 되었고, 쉬는 날에도 언제든지 일이 생기면 회사에 가야 했다. 물론, 누군가가 강제적으로 시켜서 한 것은 아니었다. 내 성격이 그러했고, 일이 힘들지 않고 즐거웠기 때문이다. 지금도 그 시절에 열심히 일한 나에 대해서는 아무런 후회가 없다. 그만큼 많이 배웠고, 인정받을 수 있었고, 그래서 나는 계속 성장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나는 이 곳에서 내가 올라갈 수 있는 한계가 느껴졌다. 회사생활 10차가 넘어가면서 아직도 우리나라에서 여자가 설 곳은 많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아직까지도 회사에 높은 중역들은 대부분 남성이고, 그런 남성들은 여성보다 남성을 편하게 생각했다. 일을 잘하고 못하는 것보다는 상사들이 필요할 때 언제든지 가려운 곳을 긁어 줄 수 있는 사람이 더 우선이 되었고, 아무래도 그런 일들은 같은 동성인 남성이 더 편한 것은 맞는 것이었다. 나와 선배들이 회사생활을 하면서 가장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상사들은 회사에 오래 남아 있는 사람들이 일을 더 열심히 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남직원들은 일보다 상사들의 담배 타임을 더 중요하게 생각했고, 빠짐없이 담배 타임에 참여하려고 노력했다. 그러다 보니 일은 늦어지고, 자연스럽게 늦게 남아 있다 보니 상사들하고 저녁까지 같이 하면서 신임이 생기는 것 같다.
어느덧 나는 30대 중반을 넘어서고 있었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고 기술이 좋아지면서 차츰 사람의 수명이 길어지고 많은 사람들이 60세를 넘어 80세는 넘게 살 수 있다고 말했다. 내가 입사할 때에만 해도 나의 꿈은 이 회사의 임원이 되는 것이었고, 회사가 나의 인생을 책임져 줄 것이라 믿었기에 나는 회사 일 말고는 할 줄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사회생활을 하면서 알게 된 사람들도 모두 이 회사와 관련된 사람들뿐이었다. 비슷한 학벌과 비슷한 환경에서 살아온 사람들뿐이었다. 앞이 깜깜했다.
회사가 대기업이라는 것이 장점인지 직원들 스스로 퇴사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았다. 이런저런 이유로 나이 들고 승진에서 밀리는 힘없는 분들만 어쩔 수 없이 회사를 떠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그때 나는 알았다. 지금 힘없이 회사를 나가시는 분들도 한때는 나처럼 이 회사가 전부라고 생각했고, 이 회사가 나를 책임져 줄 것이라고 믿었을 것이라는 것을...
나는 앞으로의 10년을 생각해 보았다. 점점 더 훌륭하고 멋진 후배들이 회사에 들어오고, 스펙은 내가 입사할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하다. 그럼 나도 멀지 않아 저렇게 힘없고 준비되지 않은 채로 회사를 떠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끔찍했다. 하지만, 내가 가지고 있는 총알은 아무것도 없었다. 고작 내가 가지고 있는 것은 이 회사와 관련된 것이 전부였고, 회사 밖으로 나가면 아무것도 쓸 수 없는 것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마흔이 되기 전에 새로운 세상으로 나가고 싶었다. 지금처럼 열심히 일한다면 어디서든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나는 남편의 동의를 얻어 인사과에 사직서를 제출했다. 많은 사람들이 다시 생각해보라고 이야기했지만, 나는 이 회사에서 내가 설 수 있는 곳에 한계를 알았고, 나를 평생 책임져 줄 것이라고 생각했던 내 믿음이 틀렸다는 것을 알았기에 회사를 나올 수 있었다.
회사를 나와 내게 남아 있는 것을 확인했다. 생각보다 내가 회사에서 번 돈에 비해 많은 돈을 모으지는 못했다. 아이 없이 남편과 둘이서 회사생활을 했기에 다른 곳에 들어가는 돈이 많지 않았음에도 나는 많은 직장상사와 동료들 속에서 조금이라도 더 잘 보이기 위해 나를 치장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결국 매월 들어오는 월급은 카드값으로 나가고 나니 10년 넘게 다닌 회사에서 모아 놓은 은행 잔고는 빨리 나를 다시 어딘가의 회사에 머물러야 한다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