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NJ Dec 17. 2020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어느 하루

외로움에 대한 작은 소고 (1)

파키스탄에서 체류하던 3년차 어느 날이었다. 집에 먹을 것이라곤 하나 없던 그 날 저녁, 단골이었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 가기로 했다. 이 레스토랑은 시내 중심가의 대형 호텔 내에 위치해 있는데, 운전해서 가는 길만 해도 경찰 검문을 3차례나 통과해야 한다. 파키스탄은 대중교통 인프라가 좋지 않아 어디를 가던 자가용차 없이는 움직이기가 어려운 편이다.


그럼에도 내가 이 레스토랑을 좋아하는 이유가 있다. 나와 비슷하게도 혈혈단신으로 파키스탄이라는 외딴 이슬람 국가에 와서 파스타와 피자를 만들고 있는 이탈리안 쉐프의 손맛이 괜찮기도 하거니와, 폭탄 테러나 표적 살인, 강도 등이 빈번히 발생하는 현지 치안 사정으로 외부 활동이 곤란한 와중에 그나마 경찰들의 보호 등 안전이 나름대로 보장된 대형 호텔의 레스토랑인지라 마음의 안정을 주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메리어트 호텔 이슬라마바드

레스토랑에 도착한 시간은 8시 경, 저녁식사로 조금은 늦은 시간이었지만 그날따라 손님들이 꽤나 와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창가 쪽 테이블에는 파키스탄 여성 두 명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고, 중앙의 원형 테이블에 앉은 백인 남성 두 명은 메뉴를 열심히 뒤적이고 있었다.

호텔 내부에 있는 Zigolini's 이탈리안 레스토랑

나는 벽 쪽의 테이블에 자리를 잡자마자 직원에게 곧바로 자주 먹던 샐러드와 피자를 주문했다. 그리고 요리가 나오기까지 기다리는 동안, 내 바로 옆 테이블에 백인 여성과 파키스탄인 남성이 앉았다.


순간 나는 왠지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시선을 마땅히 둘 데도 없고, 그렇다고 두리번거리자니 간단한 게임도 하고, 웹서핑이나 하는게 더 이로울 것이리라. 하지만 인터넷 속도가 어찌나 느린지 이윽고 핸드폰을 내팽개치곤 주방 위쪽 칠판에 써져있는 쉐프 스페셜 메뉴를 읽어보았다.


페투치니 파스타, 특제 스프, 특제 샐러드..... 나는 페투치니 파스타를 상당히 좋아한다. 납작한 면발이 꼭 칼국수 면발을 연상시킨 달까. 일반 스파게티 면과 다르기도 하고. 나는 다시 직원을 불러 페투치니 파스타를 추가로 주문했다.


“Packing?”

“No no... Dine in.”


샐러드에 피자, 그리고 파스타까지 추가로 시키자 직원은 ‘너 지금 혼자인건 알고 있는거지?’ 라고 하는 듯 묘한 웃음을 지었다.


바게트에 잘게 자른 토마토를 얹은 스타터를 시작으로 샐러드가 뒤이어 나왔다. 이곳의 샐러드는 견과류와 염소 치즈를 섞어 둥글게 만든 치즈볼이 곁들여 나오는데, 쌉싸름하면서도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쉐프에게 상을 주고 싶을 정도.


샐러드를 다 먹은 즈음에 페투치니 파스타가 나왔다. 그 즈음 파키스탄 여성 두 명은 메뉴를 고른 건지 만 건지 여전히 수다에 열중이고, 옆의 백인 여성과 파키스탄 남성은 업무 차 식사인 건지 몇 마디 나누다가 서로 멋쩍게 핸드폰만 들여다보고 있었다. 백인 남성 두 명은 음식이 마음에 들지 않는 지 파스타 접시를 깨작깨작 뒤적이고 있었다.


페투치니 파스타를 음미해 보았다. 처음엔 스푼과 포크를 들고서 교양을 따지기도 했다. 냅킨으로 입을 닦기도 하고, 입에 묻지 않게 면을 입에 천천히 집어넣기도 했다. 하지만 그 뿐이었다. 식욕 앞에 장사 있으랴, 파스타는 이내 접시 바닥을 보이기 시작했다. 피자가 나오기도 전인데 슬슬 배가 불러왔다. 피자를 취소해야 할까, 아니다, 먹고 싶다. 남으면 집에 가져가면 되지.

혼자 다 먹은 피자

곧이어 직원이 피자를 가지고 왔다. 피자를 내 테이블에 내려주면서 날 바라보는 표정이 마치 ‘어디 다 먹어보시지!’ 하는 것 같았다. 나는 피자 조각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렇게 한 입이 두 입이 되고, 두 입이 한 조각, 두 조각, 그리고 세 조각, 네 조각이 되었다. 내 배는 점점 한계치에 다다랐다. 이제 남은 걸 포장해 달라고 말할까 고민하던 중, 한 조각을 더 먹기로 했다. 그렇게 다섯 조각, 그리고 여섯 조각. 남은 두 조각이 날 보고 웃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나는 그 두 조각을 토핑이 서로 보게 겹치게 한 다음 한 번에 씹어 먹기 시작했다. 이제 교양 따위는 저 멀리 사라진 뒤다.


겹친 피자를 한 입 베어 물곤 나는 주위를 다시 둘러보았다. 옆 테이블은 아직 메인은 커녕 이제 샐러드를 뒤적거리고 있고, 현지 여성 2명의 수다는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쯤에서야 나는 내 바지에 떨어진 피자 도우의 가루들을 훌훌 털기도 했고, 입에 묻은 파스타 소스를 닦기도 했다. 입가는 민망한 미소를 머금은 채.


계산서에는 한국 원화로 환전하면 약 3만 7천 원 정도가 적혀있었다. 나는 팁까지 두둑이 챙겨주며 레스토랑 문을 나섰다. 그 순간에도 레스토랑에는 내가 처음에 봤었던 그 손님들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아쉬운 점이라면 그 두 여성이 결국엔 뭘 먹는지, 식사는 하긴 하는건지 알 수 없었던 것이랄까.


난 호텔을 거쳐 대통령궁 쪽의 큰 길로 운전대를 향했다. 무슨 일이 있는 건지 삼엄한 경비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경찰은 외교차량으로 등록된 내 차량 번호와 얼굴을 보더니 대충 손짓하며 날 통과시켜 주었다.

일반적인 검문소 모습

신호를 기다리던 중 내 앞에 서 있던 경찰 호송 트럭의 뒷좌석을 우연히 보았다. 그 곳에는 소총으로 무장한 경찰들이 아닌, 꽃과 화분이 가득 실려있는 게 아닌가. 그 광경을 보곤 내 입가에는 다시 미소가 지어졌다.


내게 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