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에 대한 작은 소고 (2)
내게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자각한 순간을 똑똑히 기억한다.
혈기 왕성했던 초등학교 2학년의 어느 날, 그때까지 한 순간도 내 가족에 대해서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여느때와 같이 교실에서 친구들과 만화나 게임 따위를 이야기하며 시간을 보내던 조회시간 전, 담임 선생님이 교실에 들어왔다. 뭘까, 또 어떤 따분한 말을 하려고 이러시려나. 담임 선생님은 교단에 서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우리에게 아주 쉬운 숙제를 하나 내 주셨다.
"각자 부모님의 나이와 직업에 대해 써오세요."
그리고 나에게 조사용 서식이 전달되었다. 그 서식에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생년월일과 직업 따위를 쓰는 표가 있었다. 쉽게 말해 호구조사였다.
그 서식을 보곤 나의 눈은 '아버지'라는 단어를 한동안 응시했다. 아버지라는 단어는 나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걸까.
물론 내가 아버지라는 단어 자체의 의미를 모르는 건 아니었다. 내가 다른 아이들과 다른 점이 있었다면 아버지라는 단어를 매칭시킬 실제적 인물이 내 주변에 없었다는 것일 뿐.
하교 후 집에 돌아가서 어머니에게 그 서식을 보여주었다. 어머니는 아주 예쁘고 바른 펜글씨로 서식을 작성해 주었다. 아버지의 인적사항 란에 '사망'이란 단어가 내 눈에 무척 띄었다.
다음날 나는 오전 조회시간에 서식을 제출하려고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그러던 중 옆에 앉은 짝꿍이 내 서식을 힐끗 보는것이 아니던가. 텅 비어있는 아버지의 인적사항 부분을 보고선 상당히 놀란 목소리로,
"너, 아빠가 없다고?"
내 앞, 뒤로 앉은 아이들이 다 들을 수 있을 만큼 큰 목소리였다. 나는 이내 숨을 죽이고 책상 아래만 바라보았다. 그때까지 나는 두려웠던 것 같다. 아버지가 없다는 사실을 친구들이 알면 어떻게 반응할 지. 90년대만 하더라도 한부모 가정이라는 것이 흔치 않았었고 자랑도 아니었으니까.
아니나다를까, 순식간에 친구들의 이목은 나에게 집중되었다. 이러쿵 저러쿵 내 가족에 대해 여러가지를 묻는 친구도 있었지만, 동정적인 눈빛과 함께 나의 손을 잡아준 친구도 있었다. 다행이 나를 놀리거나 조롱하는 그런 못된 친구는 내 주위에는 없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매우 놀랍도록 성숙했던 친구들이었다.
하지만 친구들의 그러한 동정과 관심도 내 눈에서 눈물이 흐르는 건 멈출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날 오전에는 책상에 앉아 참 많이도 흐느끼고 울었다.
그리고 그게 시작이었던 것 같다. 내가 알지 못했던 아버지와 친가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 것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