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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민주 Jul 23. 2023

1. 과정을 겪어 내는 힘

『아케이드 프로젝트 Ⅰ』 발터 벤야민, 새물결


통과의례 - 죽음, 탄생, 결혼, 성인 되기 등과 관련된 의식을 민속학에서는 이렇게 부른다. 현대의 삶에서 이러한 이행들은 점점 퇴색해가고, 체험할 수 없는 것이 되어가고 있다. 다른 세계로 향한 문턱을 넘는 경험은 좀체 찾아보기 힘들게 되었다.

『아케이드 프로젝트 Ⅰ』 [O 2a 1]


요즘 제일 재밌는 건 공부를 하면서 나에 대해 알아가는 거다. 특히 주로 스스로 어떤 태도로 세상과 관계 맺고 있는지를 관찰하고 있다.


그동안은 어떤 문제를 맞닥뜨렸을 때 무엇이 문제고그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 방법을 찾는 것 을 어려워했다. 마치 이런 느낌이다. 강을 건너려면 배가 필요한데 나는 배가 없다. 그러면 배를 빌리든 얻어 타든 아니면 시간이 걸리더라도 나무를 잘라서 조각배라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아무런 행동을 취하지 않고 강 앞에서 발만 동동 거리고 있었다. 우연히 배가 내 눈 앞에 있거나 누군가 같이 배를 타고 가자고 제안해주기를 바랬던 것이다.


다른 차원으로 건너가는 일은 공동체적 차원에서 개인의 차원으로 넘어왔다. 하지만 벤야민의 말대로 지금 우리의 통과의례에 대한 경험은 생의 리듬을 통과하는 우주적 동참보다 자본 시장으로의 진입을 위한 문턱일 뿐이다.

우리가 문턱을 넘었다는 건 졸업장, 월급 명세서와 같은 서류 한장으로 충분히 증명된다. 때문에 과정을 어떻게 겪느냐에 대한 관심은 중심에서 밀려난다. 우리가 보는 건 화려한 결과들의 나열일 뿐. 차곡차곡 쌓이는 시간의 머묾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망각하게 된다.


나 역시도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무언가 대가를 치러야 함을 알지 못했다. 지금 돌아보면 어떻게 그랬을까 싶지만 무지한 상태에서 꾸는 꿈은 깨기 힘들다.

돈을 벌기는 싫지만 돈은 많고 싶고, 노래는 잘 하고 싶지만 노래는 잘 부르고 싶은 그런 도둑놈 심보는 그게 정말 가능하다고 상상한다. 한탕을 원하는 마음으로 삶 전체를 배팅하는 최악의 관념이다.


그러면서 이 세상에 내가 설 자리가 없다고 속으로 외쳤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진다. 지금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도 내 몫을 누군가가 대신 해주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인생은 살만한 것, 편한 것이라고 생각해왔다. 하지만 지금의 이 편하다는 감각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다시 되짚어 보게 된다.

편하다는 감각은 내 힘을 쓰고 있지 않은 데서 느껴지는 것이다. 사람이든 기술이든 뭐가 됬든 내가 해야 할 일을 대신 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근력으로 과정을 통과한다는 느낌이 별로 없었다는 게 반증이다. 하지만 그 대가는 어마어마하다. 혼자서의 힘으로 삶을 이끌어 나갈 때가 오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감이 온 감각을 지배한다.


연구실에서 1학기 때 내내 장난스레 던졌던 말이 있다. 그동안 살아왔던 삶과는 너무도 다른 밀도와 리듬의 삶 속에서 나는 피곤함을 많이 느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나의 동력으로 가지 않을 수 없었다. 누가 나를 대신해서 글을 써주거나 활동을 해준다거나 나의 스케줄을 대신 짜줄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힘이 부칠 때마다 ‘차라리 죽음을!’이라는 말을 장난스럽게, 하지만 쉽게 내뱉었다. 그런데 이제 와서 돌이켜보니 그 말이 과정 속에서 느끼는 작은 고통도 차라리 죽는 것이 나을 만큼 견디기 귀찮다는 뜻이 아닌가. 스스로에 대한 모욕의 말들을 유희처럼 던지고 다닌 자신이 한 번 더 민망해진다.


나는 더 이상 '차라리 죽음을!'이란 말을 장난스럽게도 쓰지 않는다. 단지 계속해서 과정을 겪어 냄으로써 내 삶의 근력을 기르고 기술을 배워야 함을 알게 되었다. 나는 이제 결과만을 얻고 싶어 하는 심보에서 눈길을 돌려 과정을 겪어 내야 함을 받아들이고 있다. 그 과정 없이는 결과를 얻지 못할 뿐더러 운이 좋게 결과를 얻게 되었다고 해도 부실 공사한 건물처럼 금방 무너져 내릴 것이라는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지금 이곳에서 마주하는 어려움과 힘듦이 있다. 이곳에서 통과의례를 경험하고 있다. 다른 차원으로  건너가는 것만큼 내 몸과 마음이 소용돌이다.

내 마음대로만 할 수 없고 공동체의 비전이 무엇인지 나 스스로 이해해야하며 리듬에 동의해야한다. 도반들이 주는 피드백으로 내 실상을 인지하게 되며기존의 습에서 스스로를 해방해야한다. 남에게 무관심할 수 없고 활동을 할 때 주인의 마음으로 해야 한다. 다른 몸과 마음의 리듬으로 다른 세상으로 가기 문턱을 넘고 있다.


가장 초반에는 기존의 습들이 미친듯이 이 훈련을 거부한다. 마치 생명을 가지고 있는 것 마냥 온 몸으로 거부한다. 하지만 일련의 과정을 통해서 삶과 스스로에 대한 해상도가 높아졌고 이제 아픈 것을 넘어 시원하다고 느껴진다. 문턱 하나를 넘은 것.  힘들다는 이유로 이곳을 벗어나려고 했다. 하지만 통과의례를 체험함으로써 계속해서 새로운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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